[단비인터뷰] 대안언론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씨

▲ 민노씨 이미지 사진. ⓒ 민노씨 트위터

슬로우푸드는 빨리 만들어 먹는 패스트푸드에 대항하는 음식이다. 효율을 위해 건강을 희생하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선한 식재료를 골라 제대로 조리해 먹자는 정신을 담고 있다. 뉴스산업에서도 분초를 다투는 ‘속보’에 목숨 걸지 않고 다른 시선, 곱씹은 생각을 느리게 전달하겠다는 대안매체가 나왔다. 이름 자체가 <슬로우뉴스>(slownews.kr)다. 자극적인 글과 영상이 없는데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주목받고 있다. 

<슬로유뉴스>에는 편집위원 20여명이 정치·사회·문화·테크·미디어·문화 분야 등의 글을 올린다. 대부분 현직 기자, 학자, 변호사, 한의사 등 해당분야의 전문가들이다. 하루에 적게는 2건, 많게는 5건 이상의 기사가 올라온다. 

이 매체는 네이버 등에 뉴스를 걸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다른 신생언론사와 달리 포털사이트와 기사제휴를 맺지 않았다. 그래서 검색도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2012년 3월 창간이래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 5월 28일 서울 왕십리의 한 카페에서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씨(본명 강성모)를 만났다. ‘민주노동’에서 활동명을 따왔다는 그는 개인 신상에 관한 질문에는 답을 아꼈지만 한국의 언론현실과 미디어산업 전망 등에 대해서는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블로그들 수평 협업으로 '건강한 뉴스' 생산

<슬로우뉴스>는 블로그와 저널리즘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개별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던 필자들이 뭉쳐서 뉴스사이트를 만든 것이다. 민노씨의 경우 2005년부터 인기블로그 ‘민노씨네’(http://www.minoci.net)를 운영해왔다. 

“온라인 미디어가 2005년부터 급격하게 변하는 게 느껴졌어요. 블로그 문화의 폭발기라고 할까요. ‘새로운 자아’가 확장되는 느낌이었어요. 저도 한겨레블로그 ‘필벗’에서는 하루에 12시간씩 블로깅을 하던 때가 있었죠.”

▲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씨는 '민주노동'에서 본인의 이름을 따왔다고 말했다. ⓒ 조창훈

민노씨는 이렇게 활동하면서 만난 다른 블로거들과 2010년 무렵 ‘인터넷 주인찾기’라는 이름의 컨퍼런스를 네 번 잇달아 열면서 의기투합하게 됐다고 한다. 현재 <슬로우뉴스>에서 상근하는 써머즈(필명)씨, 김낙호 미디어연구가, <ㅍㅍㅅㅅ>(프프스스)로 분가해 나간 이승환 플럭스미디어 대표,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 한국일보 최진주 온라인뉴스팀장,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강정수 박사, 게임물관리위원 이병찬 변호사, 서울신문 강국진 기자 등이 뜻을 함께 했다. 

시스템 뒤쳐진 한국언론, '8차선 도로의 경운기'

<슬로우뉴스>는 상근 편집자 둘에 20명의 필진이 각자의 일터에서 참여하는 수평적이고 느슨한 조직이다. 페이스북의 비공개그룹과 클라우드(인터넷저장) 문서편집시스템인 ‘구글더큐먼트’를 통해 웹상에서 공동으로 작업한다. 쓰고 싶은 기사가 있는 편집위원은 페이스북 그룹이나 구글더큐먼트에 알리고 초고를 올린다. 여기에 다른 편집위원들이 코멘트를 달면 필요한 보완을 거쳐 예정된 시간에 편집하는 방식이다. 질적으로 비교적 균질한 글이 나오는 것은 보통 10명 정도의 의견을 받아 글이 수정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들 글을 잘 보시는 분들이라 편집과정에서 공동작업의 역할이 큽니다. 서로 편집담당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자발적인 형태로 이뤄지죠.”

▲ 11월 5일 <슬로우뉴스> 누리집 갈무리.

<슬로우뉴스>에는 특히 미디어 관련 기사가 눈에 띈다. <슬로우뉴스>의 출범 자체가 현재의 미디어생태계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고, 필진 역시 미디어혁신의 최전선에 있는 전문가들이 많기 때문이다. 인터뷰 당일 아침 <슬로우뉴스>는 <뉴욕타임스>의 혁신보고서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전 세계 종이신문 중 온라인화를 가장 성공적으로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내부 혁신보고서를 통해 ‘너무 미흡하다’고 반성한 <뉴욕타임스>의 이야기는 우리 언론계에 의미 있는 화두를 던졌다. 기사를 쓴 강정수 편집위원은 “(한국 언론은) 디지털 상황에 맞게 조직을 개편하는 등 시스템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노씨도 “현재 한국 (종이)신문들은 문화적, 기술적 차원에서 디지털화가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이신문에선 아직도 ‘종이가 왕’이에요. 온라인 기사는 ‘애들이 읽는 것’으로 생각해요. 비정규직, 계약직, 인턴 뽑아서 ‘종이에 낸 기사 포장 잘해서 트래픽이나 높여 달라’는 식이죠.  종이신문 기자는 성골, 온라인 기자는 6두품입니다. 디지털 콘텐츠를 천시하는 문화라 해도 좋습니다. 이런 관습적이고 시대조류에 맞지 않는 문화가 언론사에 만연해있어요. 또 기술적으로는 시스템과 인력이 없어요. 언론사의 기사전송시스템은 십 수 년 전에 쓰던 포맷이 그대로예요. 미디어를 잘 아는 디자이너나 엔지니어가 없어요. 지금 종이언론들의 디지털화를 위해서는 숙련된 기자 한 명보다 디자이너 한 명, 엔지니어 한 명이 더 필요합니다.” 

온라인을 넘어 모바일이 주축이 되고 있는 흐름에서도 아직 종이(신문사)와 메인뉴스(방송)를 위주로 운영되는 국내 언론사들을 꼬집는 얘기다. 이와 관련 강정수 편집위원은 국내 언론사들의 낙후된 콘텐츠관리시스템(CMS)을 겨냥, ‘콘텐츠관리시스템의 혁신 없는 디지털저널리즘은 왕복 8차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경운기와 같다’고 비판한 일이 있다. 

네이버 권력도 곧 메시징서비스로 넘어갈 것

민노씨는 우리 언론들이 대형포털인 네이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네이버가 ‘가두리양식장’처럼 사용자들을 자사의 서비스에 가두려는 속성이 강한 반면 검색을 통해 사이트간의 ‘연결’을 제공하는 기능은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언론사들은 네이버가 제공하는 트래픽(방문자)에 눈이 어두워 ‘실시간 키워드 경쟁’ 등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 민노씨는 "앞으로도 <슬로우뉴스>가 포털 등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매체로 운영될 것"이라 말했다. ⓒ 조창훈

“네이버는 비즈니스모델로는 훌륭하지만 미디어 철학의 관점에서는 ‘악의 축’입니다. 유럽 입자물리소의 엔지니어였던 팀 버너스리가 인터넷을 만든 건 좋은 정보를 ‘연결’하고 싶어서였죠. 하지만 네이버는 그냥 네이버 안에서 놀도록 만들었어요.” 

민노씨는 이런 네이버의 권력도 영원하지 않으며, 곧 카카오톡 같은 메시징서비스로 옮겨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포털의 권력을 페이스북이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지만 그는 메시징서비스의 개인화가 더 강하기 때문에 게임과 쇼핑, 미디어 등을 끌어당길 것이란 의견을 보였다. 

그는 이렇게 미디어생태계가 달라져도 <슬로우뉴스>는 현재의 방향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원과 트래픽광고에 의존하는 현재의 구조 상 수익이 획기적으로 나아질 전망은 안 보이지만,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슬로우푸드 같은 뉴스를 공급하는 역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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