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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한반도 역사 복원, 첫 걸음 떼다
[TV를 보니] KBS 스페셜 '카레이스키' 3부작
2014년 10월 28일 (화) 19:36:03 조은혜 기자 brj7998@naver.com

친구 A는 미대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집을 떠난 후 자신을 보살펴 준 아버지와 고모가 크게 반대했다. A는 고민 끝에 꿈을 꺾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얼굴조차 흐릿하던 어머니가 A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어머니는 친척들과 한 약속 때문에 지금까지 A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A는 가족 몰래 어머니를 만났다. 그리고 아버지와 고모가 자신의 미대 진학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 어머니는 삽화작가였다. 아버지와 고모는 A가 그녀를 닮아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A는 지금껏 떨어져 살아온 어머니와 '그림'이라는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 날 이후 A는 미대진학을 공개 선언했다. 쉬쉬해온 반 쪽짜리 가족사가 미래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역사는 미래를 만든다 

개인에게도 국가에게도 역사를 아는 것은 미래를 선택하는 원동력이 된다. 아픈 역사라도 마찬가지다. A는 어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확인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아픈 역사를 뒤돌아 볼 용기가 없는 듯하다. 지금까지 반쪽의 역사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한국전쟁 후 극심한 이념 갈등 속에 사회주의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인물에 대한 언급이 금기시됐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활동한 항일투사들도 소련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들은 빨갱이로 격하되었고, 김구·신채호로 대표되는 민족주의 계열 지도자들에게만 조명이 집중되었다. 역사가들은 그들을 제외한 반 쪽짜리 역사를 써내려 가야 했다.

   
▲ 다큐멘터리 `카레이스키 3부작`은 지난 8월 21, 28, 29일 방영됐다. ⓒ KBS 스페셜 <파노라마> 화면 갈무리

지난 8월 방송된 한국방송(KBS) <파노라마> ‘카레이스키 3부작’은 지금껏 다루지 못했던 나머지 반쪽의 우리나라 근대사를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함경도 국경이 닿아있는 러시아 연해주는 1937년 스탈린 정권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기 전까지 항일 운동의 중심거점이었다. 수탈과 박해를 피해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은 스스로를 ‘카레이스키’라고 불렀다. 러시아어로 고려인이라는 뜻이다. 다큐멘터리 ‘카레이스키’는 1864년부터 시작된 ‘한인들의 이주역사’, 일제 침략 후 연해주에서 펼쳐진 ‘항일 레지스탕스 운동’, 1937년 강제 이주 후 ‘혹독한 생존기’까지 총 3부작으로 나뉘어져 있다. 3부작 다큐멘터리에서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는 ‘카레이스키’ 후손들은 우리를 과거로 이끄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이들을 통해 PD가 시도하는 것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온전한 복원이다. 

조국 잃은 아픔에도 조국 위해 싸운 영웅들

‘카레이스키 1편 – 디아스포라’는 그리스어로 기원전 600년 경 예루살렘이 멸망하며 시작된 유대인의 ‘이산(離散)’을 의미한다. 1864년 관리의 수탈을 피해 국경을 넘으면서 이산의 역사는 시작된다. 1910년 한일합방 당시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은 10만 명에 육박했다. 수탈을 피해 연해주로 이주했으나 이들은 조국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항일을 위해 당시 재정러시아와 협력하는 길을 모색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3000명에 달하는 한인들이 러시아군에 지원해 곳곳의 전선에 배속되었다. PD는 대한제국군이자 의병장이었던 민근호, 재정러시아의 대령이 된 김인수, 러시아군에 지원했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된 한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역사를 그려낸다. 국가를 잃은 민족의 이산, 엄혹함 속에서 항일 독립 운동을 전개했던 디아스포라의 상황이었다.

   
▲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고려인들이 홍범도 장군 묘역에 인사를 올리고 있다. ⓒ KBS 스페셜 <파노라마> 화면 갈무리

2편의 부제는 ‘레지스탕스 항전’이다. 러시아 극동지역 연해주는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명령 전까지 일제의 탄압을 피해 독립투사들이 항일운동의 거점을 구축한 곳이었다. 1917년 공산국가 소련이 건국되자 사회주의 혁명을 반대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은 소련으로 반사회주의군을 파병했다. 일본의 반혁명군도 블라디보스톡에 진출했다. 이것은 독립투사들이 일본군과 구체적인 전투를 벌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921년에는 4000~5000명 가량의 독립군이 이곳 36개 부대에 포진해 있었다. 한창걸과 홍범도는 ‘카레이스키’들에게 존경 받는 독립군의 대표적인 지도자였고, ‘청산리 전투’등 항일독립운동의 혁혁한 성과가 대부분 이 시기에 거둔 것이었다.

‘카레이스키 3편 – 오딧세이’는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명령으로 소련 전역에 흩어진 ‘카레이스키’들의 고난을 담았다. 러시아 국영방송의 뉴스앵커인 고려인 5세 마리나 킴의 시각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95세 정상진을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핏줄에 스며있는 고려인의 역사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강제 이주 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시베리아의 황무지에 던져진 ‘카레이스키’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곳을 개척해 나갔다. 그런 와중에서도 조국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됐던 정상진은 일본군과 소련군의 전투가 있을 거란 이야기를 듣고 소련 해군을 찾아가 입대를 요청했다. 소련은 한인이 일본과 내통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일 전쟁에 참여를 허가하지 않았다. 여섯 번을 거절당하고 나서야 입대를 허가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소련군이 청진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한 순간을 목격한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참전용사가 된 그는 종전 후 북한에서 주요 간부가 되었다가 반김일성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56년 추방되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로 돌아갔다. 민족을 위해 싸웠지만 남과 북 어느 곳으로도 돌아갈 수 없었다.

   
▲ 참전용사 정상진씨와의 인터뷰 내용을 확인하는 고려인 5세 마리나 킴. ⓒ KBS 화면 갈무리

카레이스키 다큐멘터리, 과거 청산 계기 되길

한반도 남쪽만의 역사를 넘어 한반도 전체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과거 공산권 국가에 산재해 있는 숨어있는 자료들을 발굴해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생존 인물의 증언도 시급하다. 그들 대부분이 고연령층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후손들에게도 ‘카레이스키’라는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런 지난한 작업의 첫 걸음을 용기 있게 내디뎌 주었다.

우리나라는 과거 청산에 실패했다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반민특위’가 해산 됐을 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던 것이다. 친일파는 떵떵거리며 출세를 이어갔고 독립투사는 외면당했다. 부조리한 역사 위에 세워진 대한민국에 윤리와 정의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카레이스키 3부작’ 이후로 잘려진 역사가 계속 복원되길 바란다. 추운 러시아 땅에서 민족을 위해 헌신한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 역사의 페이지를 채워갈수록 우리 사회에 그들의 숭고한 정신이 되돌아 올 것이고, 우리 역사도 온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조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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