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받던 나라 ‘개도국지원 주도’ 뿌듯
[세계와 나] G20 서울정상회의 관전기

▲  오종남 서울대 교수(전 IMF 상임이사)
지난 11월 11일부터 이틀간에 걸쳐 세계 20개 주요국 정상회의(G20)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 에서 열렸다.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만 브라더스(Lehman Brothers)의 파산으로 가속화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그 해 11월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시작된 G20 정상회의가 영국의 런던, 미국의 피츠버그, 캐나다의 토론토를 거쳐 선진국 아닌 나라로서는 처음으로, 특히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열렸다. 다섯 번째 G20 정상회의를 우리나라에서 개최하고 의장국을 맡은 의미는 무엇이며, 무엇을 얻었고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가?

선진국과 신흥경제국간의 가교 역할 수행 기대

인간은 대체로 남에게 무엇인가 도움이 되는 일을 했을 때 보람과 함께 자긍심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민족이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으로 해방이 된 후 3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건국한 지 60여년 만에 세계적인 국제회의를 개최하고 또 의장국을 맡게 된 것은 가슴 뿌듯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먼저 G20 회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자. 1974년 석유파동에 따른 경제위기에 공동으로 대처할 목적으로 주요 선진국들은 G7 회의를 탄생시켰다. 참고로 러시아가 포함된 G8 은 경제 문제는 논의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신흥경제국들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G7 국가의 비중은 차츰 줄어들고 있던 시점에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계기로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가 시작되었다.

G20 출범 당시는 정상들이 모이는 회의가 아니었다. 리만 브라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나아가 세계경제 침체가 닥치자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들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상 차원에서 논의하자고 격상시켜 2008년 11월 제 1차 G20 서밋(Summit)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주요 20개국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나? 이는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가에 따라 선진 7개국에 신흥경제국 12개국, 그리고 유럽연합(EU)을 합쳐서 20개국으로 구성되었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는 세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85%, 사람 수로는 세계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모임이 된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EU를 제외한 19개국 선정 과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선진경제 7개국(G7)에다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네 나라, 그리고 석유강국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시키고 나면 7개국이 남는다. 고심 끝에 오세아니아를 대표해서 호주, 아프리카를 대표해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메리카를 대표해서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유럽과 아시아 중간에 낀 터키, 인구가 2억이 넘는 인도네시아를 넣고 6개국을 선정하고 나면 끝으로 한 나라가 남는다. 거기에 우리 한국이 끼게 된 것이다. 한국은 어떤 이유로 포함되었을까? 한국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비중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하고 선진국 문턱까지 온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에 선진국과 신흥경제국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높이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그동안 한국이 걸어온 발자취를 한번 회고해보자. 1961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할 당시만 해도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은 불과 80달러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10여년의 경제개발 덕분에 1973년 400달러가 됨으로써 하루 1달러 시대가 도래 했다. 아마 단군 건국 이래 하루 세 끼 밥을 꼬박꼬박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계속해서 1977년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가 되고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 4,500달러가 되었다.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세계로부터 제대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참고로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했고 올해 1인당 국민소득 4,000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세계경제질서 수립하는 규칙 제정자 (rule-setter) 그룹에 참여

이어서 1995년 드디어 1인당 국민소득이 10,000달러를 넘어서게 되었다. 그러자 인간답게(?) 자만에 빠졌다. 그 결과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위기를 맞았고 이듬해 1998년 1인당 소득이 7,000달러 대로 떨어지는 아픔도 겪었다. 돌이켜보면 경제발전을 이룩하는데 30여 년이 걸렸고, 망해 먹는 데는 불과 3년 밖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것을 잘 알지만 ‘성공은 실패의 아버지’라는 것은 잘 모른다. 어쩌면 우리도 그 함정에 빠져서 겪은 고통이었는지 모른다. 다행히 위대한 우리 국민은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전 국민이 금모으기 운동까지 하면서 외국 빚 갚자고 나서서 불과 3년 만에 위기를 극복했다. 2007년 1인당 국민소득 20,000달러가 되고, 총생산 1조 달러 시대를 맞았다. 이 해 우리나라 국민총생산은 세계 11위가 되었다. 그러다가 환율이 올라가 우리나라 돈 값이 떨어지면서 작년에는 15위까지 떨어졌다. 

▲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 회의장 모습 ⓒ G20준비위원회 제공


만약 한국이 G20에 포함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G20에 끼지 못했다면, 남들이 짜놓은 세계경제질서를 따라가야 하는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가 G20에 포함됨으로써 세계경제질서를 수립하는 규칙 제정자 (rule-setter) 그룹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는 G20 정상회의 주최국이자 의장국인 한국에게 무엇을 기대했을까? 한 마디로 간단히 말하긴 어렵지만 대체로 선진경제국들은 이해관계의 중재자, 신흥경제국들은 자기들의 입장의 대변자를 기대했을 것이다. 현재 중국과 일본의 연간 국민총생산 규모는 5조 달러 수준, 우리나라는 1조 달러 수준이다. 아시아에서 만일 중국이나 일본이 주최국 내지 의장국을 맡는다고 했다면 서로 견제하느라 반대했을 수 있다. 한국이기 때문에 그 두 나라도 반대하지 않고 찬성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상들이 논의할 의제와 관련해서는 크게 이제까지 논의되어 온 기존 의제와 새롭게 추가해야 할 새로운 의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존 의제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곳에서 충분히 논의된 만큼 여기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다만, 기존 의제 가운데 한 가지만 든다면 IMF 출자 지분, 즉 쿼터 개혁을 주요한 성과로 내세우고 싶다. IMF는 ‘1국 1표 주의’의 UN과 달리 각 회원국이 출자한 지분만큼 목소리를 내는 지배구조로 되어 있다. 1946년 설립 당시 유럽중심으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아시아는 상대적으로 출자지분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캐나다 토론토 회의에서는 상대적으로 출자 지분이 적었던 아시아를 위해 2012년까지 5%이상을 유럽에서 떼 내 신흥개도국에게 이전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를 이번 서울 G20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게 된 것이다. 한국인 최초의 IMF 상임이사를 역임한 필자로서 이것이 갖는 의미를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다.

개발도상국 경제개발을 돕자는 의제 채택

한편, 신규 의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제로 개발도상국 경제개발을 돕자는 의제를 채택한 점을 들고 싶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을 원조만으로 도와주는 것은 장기적으로 그 나라에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경제를 개발하여 가난을 극복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로 이 신규 개발 의제 제안자로서 가장 적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이 의제를 제안해준 한국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번 회의를 주최하고 의장직을 수행함으로써 한국은 아시아 이웃 나라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친근하게 느껴지는 나라’, ‘작지만 강한 나라(강소국)’ 의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이것이 이번 G20 회의 주최국으로서 얻은 최대의 소득이 아닐까?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야 외국인들이 한국 상품과 경쟁국 상품을 놓고 비교할 때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상품을 많이 사줄 것이고 그 덕에 우리 수출도 늘어날 것이다. 또 한국에 오는 관광객 수도 늘어나리라 믿는다. 

우리나라는 건국한 지 2년도 채 안되던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3년 동안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었다. 6.25 전쟁 당시 UN 결의를 통해 16개국이 우리 남한을 위해 참전을 하였고, 67개국이 도움을 주었다. 당시 UN 회원국이 50개국이었으니 유엔 회원국 아닌 나라도 많은 도움을 준 셈이다. 인류 역사상 한 전쟁에 이렇게 많은 나라가 도움을 준 것은 전례가 없는 신기록으로 지난 9월 3일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6.25전쟁이 끝난 후에 우리는 외국 원조로 먹고 살았다. 전쟁이 끝난 후 우리 부모세대는 자녀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선진국의 자본을 잘 활용해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2009년 11월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함으로써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 대열에 끼게 되었고, 이제 세계의 주목을 받는 G20 정상회의의 개최국이자 의장국으로 성공적인 역할 마친 셈이다.

우리 부모 세대의 헌신과 희생으로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왔다면 우리 세대의 책무는 이제 우리의 경험을 신흥경제국들과 나누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함으로써 우리 대한민국을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나라로 만드는 일이다. G20의 성과를 지나치게 침소봉대해서 자만에 빠져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룩한 성과를 지나치게 비하하거나 과소평가할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가 성숙한 나라로 발전해 가는 길목에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다는 사실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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