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일러스트레이터 꿈꿨던 '빈하용군 전시회' 열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반년이 지났다. 유가족들과 시민활동가들은 여전히 광화문광장에서 진상조사를 위해 수사권, 기소권을 요구하며 단식농성과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세종대로 사거리 맞은편에서는 '종북주의 세력 척결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말마다 집회를 연다. 광화문 광장에서 1.5킬로미터(km) 떨어진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는 유가족들의 농성장이 있다. 유가족들은 박근혜 대통령 진상조사 약속이행을 요구하는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시간이 멈춰있는 이 곳 농성장에서 경복궁 가는 방향으로 300미터(m) 남짓 떨어진 서촌갤러리에서는 지난 11일부터 아주 특별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단원고 2학년 4반 18번 ‘빈하용 전시회’, 지난 7월부터 약 5개월간 이곳에서 계속됐던 ‘박예슬 전시회’를 잇는 소박한 세월호 특별전시회다. ‘박예슬 전시회’는 안산으로 자리를 옮겨 전시회를 이어간다.

▲갤러리에는 액자로 만든 일러스트 작품과 스티커로 만든 낙서들이 있다. ⓒ 김봉기

보랏빛 얼굴에 굳게 다문 입, 생전 그의 모습 보듯

지난 18일 오후 2시 기자가 찾은 서촌갤러리에는 시민 서넛이 관람 중이었다. 60제곱미터(㎡) 남짓한 전시공간에는 빈하용 군의 그림 액자 17점과 연습장, 성적표 등에 그린 습작들이 전시돼 있고 갤러리 내부 벽면 곳곳에는 낙서를 스티커로 만들어 붙여 놓았다. 빈하용 학생의 꿈은 일러스트레이터였다.

▲ 빈하용 전시회 포스터. ⓒ 서촌갤러리 제공

포스터로도 사용된 보랏빛 얼굴 그림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검고 넓은 가슴과 어깨는 또래보다 큰 체격이었던 소년을 닮았다. 보라색 얼굴에 굳게 다문 입술은 그림에 대한 의지를, 검게 칠한 눈은 무엇이든 눈에 담아내려는 마음으로 읽힌다. 머릿속에서 상상력의 씨앗을 피워내는 일러스트레이터처럼 그림 나무와 풀이 머리에서 자라고 있다.

크레용으로 그린 소년의 두 얼굴은 색감의 대비가 이채롭다.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닮은 두 얼굴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바깥을 보고 있다. 왼쪽의 얼굴은 노란 피부색에 주황빛이 도드라졌다. 초록빛 앞머리 조금과 파란 머리카락이 빗으로 빗은 듯 가지런하다. 하얀 바탕위에서 선명한 좌측과 달리 오른쪽 얼굴은 무채색이다. 어두운 얼굴을 둘러싼 분홍빛 바탕은 자신의 빛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던 소년의 꿈이었을까?

▲ 연습장, 스케치북, 가정통신문, 수업자료 등에 그린 습작들이 전시되고 있다. ⓒ 김봉기

소년이 얼마나 그림을 좋아 했는지 유리벽에 전시된 습작들이 말해준다. 연습장, 성적표, 가정통신, 학습지, 스케치북 등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어디에든 그렸다. 펜으로 곰, 코끼리, 물고기를 그리고 기하학적인 무늬를 채워 넣는가 하면 ㅠ, ㅁ, ㅍ 구도를 그린 스케치북 아랫부분에는 각 구도가 줄 수 있는 안정, 강조 따위의 느낌을 꼼꼼하게 적어 놓았다. 어느 종이건 그림으로 그려내고 끊임없이 상상하던 소년의 꿈과 창작세계는 작품과 습작들로 굳은 물감처럼 남아 있다.

갤러리 한 켠에는 작업하던 책상이 재현되어 있다. 그가 쓰던 하얀 파레트에는 세상을 2가지로 구분하듯 어두운 색과 밝은 색의 물감들이 뚜렷하게 나뉘어 굳어있다. 납작한 붓, 뾰족한 붓, 미처 칠하지 못한 물감을 조금씩 머금은 붓들이 바싹 마른 채 돌아오지 않는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네모난 상자에 담긴 물감 튜브들은 34가지 색깔마다 뿜어낸 양만큼 홀쭉하다. 상자위에 놓인 작품은 ‘하용별’로 불리는 그림을 도면으로 해 시민이 실제 평면퀼트(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을 넣어 누빈 것)로 제작한 것이다. 소년이 꿈꾸었던 세계는 그가 그린 그림처럼 곰 같이 푸근한 동물이 살아가는 파랑색, 주황색, 초록색으로 이뤄진 작은 별로 남았다.

▲빈하용 학생의 책걸상과 화구들이 사용하던 모습대로 설치되어 있다. ⓒ 김봉기

줄어드는 관심, 세월호는 잊혀지나

1시간 정도 갤러리에 머무는 동안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은 20명 남짓이었다.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찾아주었던 박예슬 전시회에 비해 줄어든 관람객의 수가 세월호 문제에 대해 줄어든 사회의 관심을 보여주는 듯 했다. 지킴이 2기로 9월 초부터 갤러리에서 관람객을 맞는 김현재(17. 고등학생)양은 줄어든 관람객 수에 아쉬워했다. 그녀는 “박예슬 전시회에 비해 찾는 분들이 줄었다”며 “아직 전시회 초반이라 실망하긴 이르지만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서촌갤러리에는 갤러리 지킴이들이 있다. 서울과 안산에서 전시와 세월호 가족 지원활동에 바쁜 장영승 대표를 대신해 갤러리를 지킨다. 지킴이 신청은 페이스북 페이지 ‘세월호가족 지원 네트워크’를 통해 지원할 수 있다. 지킴이들은 오전/오후 각각 1명씩 맡아서 갤러리를 지키며 전시회 안내를 한다.

▲삼삼오오 전시회를 찾은 이들. ⓒ 김봉기

박예슬 전시회 때와 달리 빈하용 전시회가 조용한 분위기인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번 전시회는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박예슬 전시회’를 찾아준 많은 시민들과 격려용 선물과 화분들은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응원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들 부모가 자녀를 잃은 현실을 새삼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는 부작용을 염려해서다.

지난 7월 25일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파송(파견)되어 유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윤상 목사는 “하용이의 작품이 전시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전시회는 또 부모님들의 상처를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며 전시회의 또 다른 고충을 밝히면서도 “하용이가 직접 전시회를 열었다면 얼마나 좋았겠나”라며 참사의 아픔을 되새겼다.

인천에 사는 자원봉사자 유성혜(38)씨는 전시회에 대해 희망적이다. “아직 전시회 초기라 예슬이 전시회와 비교는 어렵다”며 “하용이 전시회에도 멀리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으시고 학교 선생님들이 단체로 학생들과 같이 오는 경우도 많다. 특히 전문적인 화가 분들이 많이 오시는데 앞으로 입소문을 타고 많은 분들이 오실 것 같다”고 전망했다.

빈하용 전시회는 무기한으로 열리며 서촌갤러리는 평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 주말은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관람객은 누구나 무료로 전시회 포스터를 가져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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