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영화 '제보자'를 보고

'올인'과 '모든 것을 버리기'

'올인(all-in)'은 포커게임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돈을 밀어 넣는 것을 뜻한다. 지면 모든 걸 잃지만 이기면 건 만큼의 보상이 뒤따른다. 올인은 소유욕을 자극해 인간을 유혹한다. 더 많이 가지려는 마음이 올인하게 만든다.

반면 '모든 것을 버리기'도 있다. 평생 타인을 위해 헌신했던 테레사 수녀나 '무소유'를 온몸으로 실천했던 법정 스님의 삶이 그러하다. 이 행위의 목적은 물질이 아닌 진리와 양심이다. 지난 2일 개봉한 영화 <제보자>에서 윤민철(박해일 분) PD는 줄기세포 조작사건 취재에 모든 걸 걸었다며 제보자인 심민호(유연석 분)에게 증거를 내놓으라고 다그친다. 심민호는 대답한다. "당신은 모든 걸 걸고 여기까지 왔지만, 나는 모든 걸 버리고 여기까지 왔어." '올인'한 자와 '모든 것을 버린 자'의 대면이다.

▲ 윤민철이 줄기세포 조작의 증거를 내놓으라며 심민호를 다그치는 모습. 올인한 자와 모든 것을 버린 자의 대면이다. ⓒ <제보자> 공식 페이스북

<제보자>의 진짜 영웅은 심민호다

심민호는 이장환(이경영 분) 박사와 함께 줄기세포 연구를 하던 중 조작 사실을 알게 돼 내부 고발을 한다. 대가는 가혹하다. 직장과 동료를 잃고 가정마저 깨질 위기에 처한다. 그의 아내는 아픈 딸의 병원 치료를 도와준다는 이 박사의 제안을 거부하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민호는 윤민철에게 줄기세포 조작 사실을 제보한다. 언론에 얼굴까지 공개되며 '배신자'라는 사회적 비난까지 감수한 심민호는 진실을 위해 모든 걸 버린다.

윤민철이 직업상 위험부담을 안고 줄기세포 조작사건을 취재한 것을 깎아내릴 의도는 없다. 하지만 이는 올인이다. 성공 시 뒤따르는 보상이 존재한다. 윤민철은 사람들의 비난을 버티고 사장 앞에서 읍소까지 해가며 노력한다. 결국 방송은 나가고 윤민철과 그의 동료들은 직장을 잃지 않는다. 회사와 사회로부터 인정도 받는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 진실을 위해 대한민국에 맞선 건 윤민철 PD만이 아니다. ⓒ <제보자> 공식 페이스북

<제보자>에서 심민호가 보상을 받는 장면은 없다. 심민호의 실제 인물인 류영준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보 이후 7년여간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지난 해 9월에야 강원대에 임용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영화 후반부로 가면 심민호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제보자의 행위는 '제보'로만 축소됐고, 제보자가 치른 희생은 잊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윤민철은 새로운 제보를 받고 카메라를 응시한 채 걸어간다. 이 장면을 보면 제보자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언론의 곁다리인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에서 제보자는 철저히 홀대받았다. 현실에선 어떨까.

내부 고발자가 영웅 대접 받지 못하는 한국사회

한국사회에서 내부 고발자는 '배신자'로 인식된다. 조직과 동료의 신의를 저버린 '의리 없는' 파렴치범이 된다. 이러한 인식은 업무상 편의와 인간관계가 원칙보다 앞서는 한국사회의 분위기에서 기인한다. 불법과 편법에 눈 감고 '서로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자신을 위안하는 자기 합리화 앞에서 진실과 양심은 망각된다. 심지어 불의에 눈감고 세상과 타협하는 세태에 익숙해지는 것이 진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라 여기며 모두 공범자가 된다. 죄책감은 공범의식으로 씻어낸다.

내부 고발자를 곱게 보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공범의식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범자라고 생각했는데 혼자만 착한 척하는 게 곱게 보일 리 없다. 내가 외면했던 양심이 들춰지면 자신을 반성하지도 않고 문제의 당사자가 아닌 내부 고발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한국사회는 내부 고발의 내용보다 내부 고발자의 개인 신상과 고발 동기에 주목한다.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고문 계약이 만료돼 삼성으로부터 받던 금전적 혜택이 끊기자 폭로한 것 아니냐며 비난받았고, 군대 납품비리를 고발한 김영수 전 해군 소령은 진급에 불만을 품고 저지른 일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생각해보자. 이들이 내부 고발을 통해 얻은 '개인적 이익'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들은 삼성과 해군이라는 거대한 권력단체 앞에 한낱 연약한 개인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직장도 잃고 가족들에게 닥칠 불이익까지 감수하며 지키고자 했던 건 진실과 양심, 그리고 공익이었다.

▲ 영화 후반부엔 오로지 윤민철 PD의 활약만 부각된다. ⓒ <제보자> 공식 페이스북

사회를 바꾸는 건 내부 고발자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한국 언론의 민낯을 마주했다. 유족들 마음에 상처를 주고 정부기관의 발표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 적는 모습에서 언론 본연의 진실과 양심은 찾을 수 없었다. 영화 <제보자>의 윤민철은 분명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언론의 모습을 보여준다. 진실이라는 '진짜' 공익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언론의 참역할을 <제보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제보자>에서 우리 사회가 내부 고발자를 대하는 이상적인 태도는 발견할 수 없었다. <제보자>란 제목이 무색하게 영화에선 오로지 윤민철만이 주인공인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의 언론이 다 망가졌으니 영화 속 윤민철의 외로운 싸움이 그를 독보적인 영웅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엄연히 따져보면 윤민철이 한 일은 본래 언론이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일 뿐이다. 내부 고발자는 다르다. 의무가 아님에도 자신이 속한 단체를 넘어 더 큰 공동체의 전체 이익을 위해 진실과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 윤민철의 행동이 칭찬받아 마땅한 건 사실이지만 심민호의 행동이 과소평가되거나 잊혀선 안 된다.

내부 고발자가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한다

김영수 전 해군 소령은 2009년 군납 비리 폭로 후 한국의 내부 고발자들이 흔히 겪는 '조직의 쓴맛'을 봤다. 특기와 관련 없는 보직을 받았고, 허가받지 않고 방송에 출연했단 이유로 징계조치도 받았다. 결국 스스로 군을 떠난 그는 이후 국민권익위원회 조사관이 됐다. 채용과정에서 고발경력을 인정받아 '10% 가산점'을 받았다. 그는 자신을 '내부 고발자로서 유일하게 잘 풀린 사례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 자료를 보면, 2002~2013년 내부 고발자의 보호 요청 건수는 총 180건이었지만 이 가운데 실제 보호조치가 이루어진 것은 62뿐이었다. 내부 고발자 신분을 공개한 데 따른 징계 요청도 13건 중 4건만 이뤄졌다.

▲ 사회를 바꾸는 건 용기와 양심을 가진 내부 고발자다. ⓒ <제보자> 공식 페이스북

영화 속 영웅은 화려하다. 초인적인 능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구하고 세상을 지킨다. 현실의 영웅은 화려하지 않다. 법과 제도는 당장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엔 기민성이 떨어진다. 내부 고발자들의 용기와 양심은 우리 사회를 부정부패로부터 지킬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수단이다. 내부 고발자들이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진짜 영웅 대접을 받아야 하는 이유다. 고발 이후 고단한 삶을 살아가야하는 현실의 내부 고발자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영화 속에서라도 이들을 영웅으로 만들자, 아이들이 우러러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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