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 다방을 떠돌다 지하도로 가는 사람들
[기획취재]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 <2부> 빈곤층의 주거현실

하루 6천 원짜리 쪽방도 어떤 이들에겐 사치가 될 수 있다. 얼마 안 되는 보증금과 월세도 감당하기 벅찬 그들은 하룻밤 3천~5천 원짜리 찜질방, 만화방, PC방, 다방 등을 전전하다 그마저 여의치 않을 때 지하도로 내려간다. ‘길 위의 막장 인생’이 되는 것이다. 
 
만화책을 베개 삼아 잠을 청하다

지난 5월 29일 밤 11시, 서울 영등포역 교차로 인근의 B만화방. 입구에 들어서자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젊은 놈이 뭐야’하는 표정으로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이내 살가운 표정으로 ‘모드’를 전환했다. 
 
“주말 저녁인데 밤새도록 만화 즐기셔야죠?”
 
요금을 물으니 ‘야간 정액제’ 이용을 유도한다.
 
“한 시간 이용료는 1500원이지만 5000원짜리 정액을 끊으면 내일 아침 9시까지 이용할 수 있으니 훨씬 좋지 않습니까?”

그날 밤 틈틈이 카운터를 살펴봤지만 시간당 요금을 계산하고 중간에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인이 구석진 자리로 나를 이끌었다. 
 
“편안한 독서 시간 되세요.”

재떨이와 함께 빨대가 꽂힌 싸구려 요구르트도 한 병 건네준다. 고맙다고 하니 넉살 좋은 홍보가 이어진다.

“우리 가게는 손님이 왕입니다. 과자, 음료 등도 도매가격에 팔고 있으니 이용해주세요.”

▲ 만화방인데 만화책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각자 쓸 수 있는 2인용 소파가 너무 짧아 잠을 잘때 두 다리가 소파 밖으로 나온다. ⓒ김화영
과연 1200원짜리 버터링 쿠키를 1000원에, 계란을 풀어 넣어 먹음직스럽게 끓인 라면을 2천 원에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예전에 좋아하던 ‘21세기 소년’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개인별로 2인용 소파와 책이나 간식거리를 올려놓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제공됐다. 가게 안에는 이런 자리가 30여개 있었고 테이블 없이 반쯤 누워서 만화책을 볼 수 있는 의자도 10여개 있었다. 청소년용부터 성인만화까지, 유리창이 있는 벽면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만화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밤 11시 무렵에 3분의 1쯤 차있던 좌석이 새벽 1시가 가까워져오니 절반가량 채워졌다. 20여 명의 손님 중엔 이어폰을 귀에 꽂고 만화에 빠진 젊은이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은 40대 이상의 중년층이었다. 그들 중 ‘독서’에 열중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만화책은 베개로 쓰이고 있었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그 곳에서 배낭이나 만화책을 베고 잠을 청하는 모습은 꽤 불편해 보였다.

나도 잠을 자보기로 했다. 2인용 소파지만 두 다리를 뻗으면 통로로 발이 쑥 나갔다. 지나가던 사람이 발을 건드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한참을 누워 있으니 목덜미가 아프고 다리도 저려왔다. 매캐한 담배연기, 환한 형광등 조명 때문에 좀처럼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대다수 중년 고객들은 잠에 빠진 듯 했다.

새벽에 선잠을 깬 뒤 주위를 둘러보다가 2층 다락방을 발견했다.
  
“사장님, 저기는 뭐하는 공간인가요?”
“아, 만화 보다가 피곤하면 잠시 쉬는 곳입니다”

주인의 눈길을 피해 살짝 올라가 보았다. 10평정도 되는 공간인데, 벽면에 낡은 만화책이 가득한 책장이 있고, 남자 2명이 소파에 잠들어 있었다. 2인용이 아닌 긴 가죽 소파여서 조금은 덜 불편해보였다. 벽을 가로질러 연결한 빨래 줄에는 수건과 티셔츠 따위가 널려있었다. 담요와 베개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아 자주 오는 단골들이 쓰는 공간 같았다.

▲ 만화방 2층에는 장기거주자를 위한 공간이 있다. ⓒ김화영
커피향 대신 퀴퀴한 냄새로 그득한 다방

전날인 5월 28일엔 영등포동의 H다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노숙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곳이었다. 새벽 1시, 지하 1층 다방 문을 열자 뜨뜻한 공기와 퀴퀴한 냄새가 훅 하고 얼굴을 덮쳤다.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어서오세요. 주무시고 가실 거죠? 3천원 주시면 됩니다.”

주인인 듯한 남자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다방이라는 간판은 있지만 음악도, 여종업원도, 커피향도 없다. 얼핏 보기에 30평정도 되는 공간, 모든 소파가 입구 반대편의 TV를 향해 한 방향으로 배치돼 있다. 허름한 차림의 남자 20여 명이 TV화면에서 나오는 빛을 취침등 삼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벽 쪽에는 온갖 종이박스들이 쌓여있고, 누군가 놓고 간  짐인지 ‘치우지 않으면 폐기 처분하겠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 영등포역 부근의 한 다방,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편한 자세로 의자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김화영
3000원의 ‘숙박비’를 지불하니 커피와 콜라, 우유, 칡차 중 무엇을 마시겠냐고 주인이 물었다. 얼결에 건강을 챙기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칡차를 주문했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주인을 따라갔다. 주인은 ‘괜찮은 자리’라며 앞쪽에서 세 번째 열 오른쪽 구석자리로 안내했다. 어두워 잘 보이진 않았지만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바로 옆에 있었다. 그는 소파 두 개를 마주보도록 붙이고는 앉은 채 잠을 자고 있었다. 내 자리는 소파와 소파를 나무 널빤지가 연결하고 있어서 불편하게나마 누울 수 있었다. 신문지를 뭉친 뒤 헝겊으로 둘러싼 간이 베개도 있었다. 얼마 뒤 칡차가 나왔다. 너무 심하게 달았다. 게다가 어둠 속에 차 색깔도 보이지 않아 찜찜한
마음에 마시기를 포기했다.

좀 씻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화장실을 찾았다. 좁은 계단 통로를 따라 올라갔더니 1평도 안될 것 같은 작은 공간에 좌변기가 있는 문은 ‘사용금지’라며 잠겨 있었다. 소변기의 물 내리는 버튼도 고장이 났고, 지린내가 진동했다. 세면대는 없고 수도꼭지에 호스가 연결돼 있었는데 비누도 없고 해서 씻는 것을 포기하고 나왔다.

몸은 땀으로 끈적하고 담배와 발 냄새 등 퀴퀴한 냄새가 겹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신문 뭉치와 헝겊으로 된 베개도 축축하고 더러운 것 같아 밀쳐두고 대신 겉옷을 말아 베고 누웠다. 조금 있으니 나무널빤지가 허리를 압박하면서 통증이 느껴졌다. 처음엔 노트북과 디지털카메라가 들어있는 가방을 널빤지 밑에 내려두었는데, 도난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새도록 끌어안고 있었다.

낡은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는 텔레비전 화면은 계속 지지직 소리를 냈다. 잔인하면서도 선정적인 90년대 중국 무협영화를 틀어주고 있었다. 보는 사람은 없어도 영화 상영은 밤새 계속됐다.

새벽 6시 무렵, 매캐한 담배 연기에 콜록거리다 잠을 깼다. 온몸이 얻어맞은 듯 뻐근하고  쑤셨다. 지하 다방 내부는 아직 한밤중인 듯 캄캄했다. 둘러보니 5~6명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인력시장에 일찌감치 나간 것 같았다.

지린내가 진동하는 길바닥이 침대

▲ 지난 5월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부근의 노숙자들.  ⓒ김화영
하룻밤 3000원. 이 것도 여의치 않은 사람들은 서울역 등 지하도로 간다. 5월 6일 서울역 11번 출구, 동자동으로 향하는 어귀에서 김모(62)씨를 만났다. 그는 탄광촌(정선 사북)에서 청춘을 바쳤다고 했다. 탄광이 폐업한 후에는 안산 등으로 거처를 옮겨 다니며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었단다. 나이 든 지금도 기회가 닿는 대로 노동을 하지만 일이 없는 날이 더 많아 일정한 주거를 유지하기 힘들다.

“일당으로 5만원 쯤 받으면 여인숙 비용으로 만원을 내지. 밥도 사 먹고 담배도 사 피우는데 며칠 비가 오거나 일이 없으면 금방 수중에 돈이 떨어져. 그러면 만화방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그것도 안 되면 노숙을 하는 거지.”

같은 날 서울역 광장을 약간 벗어난 지하철 2번 출구 부근. 온 거리에 지린내가 진동했다. 빗물이 흐르도록 만들어 놓은 배수로로 누런 오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에는 이른 시간인 오후 4시인데도 길에는 잠을 청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행인들은 반팔차림이지만 노숙인들은 대부분 긴소매나 꾀죄죄한 점퍼 차림이다. 지하철 출구 옆과 역광장 화단, 인도 한 중간 어디든 눕기만 하면 그들의 침대가 된다. 더러운 이불 한 장, 혹은 길바닥의 한기를 막아 줄 스티로폼이나 신문지 한 장도 없이 맨바닥에 드러누운 사람도 많았다.

역 광장에서 3번 출구로 향하는 지하도. 인도 양쪽 중간에 십여 개의 기둥이 있다. 그 사이 사이마다 사람들이 누워있다. 눈을 뜬 채 멍하니 천장을 보는 사람, 온몸을 이불로 감싼 채 뒤척이는 사람 등 20여명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대다수가 노인이었다. 화장실을 찾아가서 용변을 보는 것이 그들에겐 어려운 일이었을까? 공기가 통하지 않는 지하라서 악취는 더 심하게 진동했다.

3번 출구 앞에서 만난 한 남자는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30대 후반으로 보였다. 담배꽁초는 꽁초대로 모으고, 캔 음료는 한번 흔들어본 뒤 내용물이 있으면 즉시 마셔버린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서 다가가다가 10미터 앞에서 눈이 마주쳤다. 검은색보다 흰자위가 더 많았다. 순간 섬뜩한 마음에 돌아서고 말았다. 

김재형(53·가명)씨는 노숙인이라고 하기엔 깔끔한 차림이었다. 얼마 전까지 안경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우여곡절 끝에 거리로 나오게 됐다고 한다. 그는 무료급식소에 가는 것이 제일 자존심 상한다고 말했다.

“노숙인과 일반인 구분 지을 거 없어. 누구든 상황에 따라 거리로 내 몰릴 수 있거든. 그런데 무료급식소에 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혐오감 준다고 벽을 보면서 밥을 먹게 해. 우리가 무슨 죄수야? 짐승이야? 밥 정도는 편안하게 먹고 싶은 게 사람의 기본적 욕구 아니야?”

그들도 우리처럼 존엄성을 가진 '인간'

▲ 11월 초 서울역 지하보도. ⓒ김화영
지난 6일 아침 8시, 날씨가 많이 쌀쌀해진 서울역 광장을 다시 찾았다. 추위가 닥친 탓인지 거리에 노숙인이 많이 줄었다. 열을 맞춰 역광장을 활보하는 헌병들, 경찰들의 수가 부쩍 늘어난 것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혹시 주요20개국(G20)정상회담 때문에 치안을 강화하면서 노숙인들이 어디론가 쫓겨 간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노숙인들이 밤이슬을 피해 가장 많이 모여드는 2번 출구 옆 지하도에 가 보았다. 역시 지난 5월과 달리 사람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대여섯 명 정도만이 두터운 담요 혹은 침낭에 의지해서 잠들어 있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벽에다 소변을 보는 모습만은 여전했다.

엄동설한이 되면 ‘길 위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사실은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시설들이 없지 않다.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운영하는 ‘햇살보금자리 상담보호센터’ 등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 숙박 및 응급 구호시설이 전국에 60여 곳, 서울에만 20여 곳이 있다. 노숙자들에게 재활의지가 없어질까 봐 한 달에 15일 이상 머물 수 없게 하는 것 외에는 따뜻한 잠자리와 목욕, 세탁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영리한 젊은이들은 이런 구호시설을 옮겨 다니며 생활한다고 한다. 반면 나이 들거나 정신장애가 있는 노숙인들은 이런 시설이 있는지, 어떻게 이용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쪽방 같은 열악한 시설에 사는 사람들이나 만화방 다방 찜질방 같은 비주거공간을 전전하는 사람들, 그리고 노숙인들을 위해 단신 거주자용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확충하고 이들의 자립을 위한 지원도 체계적으로 해 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민단체인 홈리스행동 이동현(35)대표는 “우선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짓고 임대료는 소득에 맞게 차등 부과해야 한다”며 “그들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은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존엄성을 가진 ‘인간’임을, 공동체로 복귀시켜야 할 ‘우리’ 중의 하나임을 깨닫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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