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TV를 보니: 11. 1~7]
상업성 짙어지고 시사교양 홀대하는 편성 유감

‘욕망의 대리 만족’은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콘텐츠의 중요한 흥행 코드 중 하나다. 멀게는 조선 후기 고전 소설들이 권선징악이나 사필귀정의 이야기 구조를 바탕으로 당대 민중의 심금을 울렸고, 60~70년대 한국 영화들도 젊은이들의 연애 욕망을 대리만족시키면서 크게 흥행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 시대를 사는 수용자들의 욕망을 간파하고 이에 부응하는 일은 콘텐츠 생산자들의 숙명일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요즘 TV드라마들이 이런 전통에 충실한 것을 당연하다고 봐야할까?
 

▲ KBS 2TV 주말드라마 ‘결혼해주세요’ ⓒKBS

KBS 2TV 주말극 ‘결혼해주세요’가 드디어 시청률 30%를 넘었다.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결혼해주세요’는 지난 7일 42회 방영분이 전국 시청률 30.4%, 수도권에서는 이보다 높은 32.4%를 각각 기록했다. 이날 방송은 청소 일을 하다 기회를 얻어 가수가 된 남정임(김지영 분)이 인기를 얻게 되는 과정을 보여줬다. 남정임이 부른 노래가 점점 인기를 얻고, 그녀가 목에서 피를 토할 정도로 연습에 매진하는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첫 무대에서 했던 실수를 만회하려고 출연한 라디오 방송에서 그녀는 노래 실력을 유감없이 과시하고, 이 방송이 화제가 되면서 인터뷰 요청이 줄줄이 이어지는 등 주가가 치솟는다.

성공에서 복수까지, 너무 비슷한 한국 드라마

가족밖에 몰랐던 순진한 아줌마가 남편의 배신을 겪고 집을 나선 뒤 당당하게 일어서는 모습은 이미 여러 드라마에서 다양한 변형을 보여 주었다.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구은재(장서희)는 전남편인 정교빈(변우민)에게 복수하기 위해 철저히 변신한 뒤 결국 목표를 이룬다. 후속작인 SBS ‘두 아내’에서도 주인공 윤영희(김지영)는 바람피운 남편 강철수(김호진)와 헤어진 뒤 보험 일을 하며 자신을 찾는 모습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많은 드라마들이 이런 비슷비슷한 스토리 구조를 지겹게 우려먹고 있다. 결혼한 여자 주인공들이 남편의 배신에 고통 받다 홀로서기를 감행하고, 결국 성공한 뒤 잘 생기고 능력 있는 총각을 만난다. 이런 스토리는 현실에서는 결코 쉽게 일어나지 않는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드라마에서 매력적인 소재가 되고 있는 셈이다.

▲ KBS 2TV 주말드라마 ‘결혼해주세요’ 남정임(김지영)의 변신 ⓒKBS

‘결혼해주세요’에서도 여자 주인공인 남정임은 배신한 남편 김태호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의 주된 시청자인 중년 여성들은 이런 여주인공을 지켜보며 통쾌함을 느낀다. 시청자들은 특히 아주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탤런트 김지영의 ‘보통스러움(?)’에 더욱 동질감을 갖는 지도 모른다.

이런 드라마들이 여전히 흥행에 성공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불행히도 대부분의 한국 주부들이 자기실현의 가능성으로부터 멀어진 채 남편과 자식에게 종속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TV 드라마들은 이를 ‘대리 만족’ 코드를 통해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우리 여성들의 삶의 부조리와 TV 드라마의 ‘부적절한 만남’이 지속되는 것은 씁쓸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특별한 다큐 <그날> 편성이 아쉬워

대조적으로 드라마의 ‘판타지(환상)’가 아닌 ‘리얼리티(현실)’를 보여주는 새 다큐가 등장했다. 보통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맞는 특별한 하루를 카메라에 담아내겠다는 MBC 시츄에이션 휴먼다큐 <그날>이 지난 6일 첫 선을 보인 것이다.  
 
다큐멘타리는 기록의 장르이고, 기록은 시간의 문제와 연결된다. 이 시간을 제한해서 눈길을 모았던 프로그램이 KBS의 <다큐멘터리 3일>이었다. MBC의 <그날>은 주인공의 시간 중 중요한 이벤트가 있는 하루의 전후 상황에 집중하겠다고 나섰다.

▲ MBC 시츄에이션 휴먼다큐 <그날> 이승윤 편. ⓒMBC

지난 6일 첫 방송에서는 ‘몸짱 개그맨’으로 유명한 이승윤이 프로 격투기 선수로 데뷔하는 ‘그날’을 보여줬다. 방송에서는 이승윤이 프로 격투기 경기에 나서게 된 이유와 트레이닝 과정 등을 보여줬다. 격투기 데뷔전이라는 ‘그날’ 뿐 아니라, 그날이 있기까지의 과정과 역경을 함께 담았다. 데뷔전에서 지고 난 후 링 위에서는 개그맨 특유의 위트 있는 대응을 했지만, 무대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진솔한 모습도 그려졌다. 한편 이승윤의 상대선수였던 박종우도 ‘그날’이 프로 격투기 데뷔전이었다. ‘그날’에 대한 그의 준비과정도 함께 엮으면서 이승윤 뿐 아니라 박종우에게도 특별한 ‘그날’이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날>은 유명하거나 특별한 삶을 살지 않는 보통 사람들에게도 어느 순간 특별함이 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휴먼 다큐멘터리의 차별화를 시도해 기대를 모은다. 그런데 편성 시간대를 보니 참 어이가 없다. 토요일 아침 8시 45분이라니! 물론 KBS 다큐 미니시리즈 <인간극장>도 이른 아침 시간대에 편성되어 있긴 하지만 평일 아침이라 출근하지 않는 노년층과 여성층이 보는데 무리가 없다. 반면 사람들이 TV 앞에 앉게 될 가능성이 뚝 떨어지는 주말 아침에 이 프로그램을 편성한 것은 다큐물을 소홀히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번 MBC의 가을 개편을 두고 ‘시사 교양 찬밥’이라는 언론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김혜수의 W>를 폐지하는 등 시사 교양 프로그램들을 홀대하는 MBC의 편성 정책이 방송사의 위상과 시청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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