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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기’하는 것마다 죽이는 ‘정권의 말장난’
[이봉수의 미디어 속 이야기]
2014년 10월 09일 (목) 23:06:22 이봉수 hibongsoo@hotmail.com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선전선동의 기법 중 ‘불온 딱지 붙이기’는 극우파가 상대 진영을 싸잡아 궁지로 몰아넣을 때 자주 쓰는 전래 수법이다. 선전선동가들은 툭하면 편을 가르고 자기 진영을 미화할 때는 역으로 ‘좋은 이름 붙이기’ 수법을 동원한다.

1981년 봄 백령도에서도 산꼭대기 레이더기지에서 해군 장교로 복무하던 나에게 난데없이 훈장처럼 생긴 ‘국난극복기장’이란 것이 수여됐다. 신군부는 자기네가 정권을 잡을 때 저항한 사람은 ‘국난을 야기한’ 자들이지만 나머지 군인·경찰은 모두 국난극복에 동참했다는 취지였다. 70만 병력이 졸지에 ‘쿠데타군’ 편에 선 셈이다.

국난은 신군부의 범죄에서 비롯됐는데도 범죄행위를 ‘국난극복’으로 반전시켰다는 점에서 수양대군이 자기 패거리에게 내린 ‘정난공신’ 훈호와 다를 바 없다. ‘정난(靖難)’은 ‘어려움을 평안하게 했다’는 뜻이지만 애초 불안한 쪽은 역모를 꿈꾼 자기들이었을 따름이다. 그런 전통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집권한 이방원 일당의 ‘정사공신’ 책봉에 뿌리가 닿아 있다. ‘정사(定社)’란 ‘사직을 바로잡았다’는 뜻이니 역시 자기중심적 ‘이름 붙이기’ 수법이다.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라고들 하지만, 현실정치에서 자기중심적 편가르기와 견강부회식 ‘이름 붙이기’ 또는 ‘딱지 붙이기’가 횡행하면 실질적 민주주의는 구현될 수 없다. 정당이 선거 때마다 정체성을 감추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신장개업’하는 식이라면 선거는 민의를 참칭하는 한갓 수단이 되고 만다. 새누리당은 그럴듯한 작명과 함께 세계 진보정당들의 상징인 붉은색으로 로고까지 바꾸는 ‘혁신’을 했지만 결국 ‘이름 붙이기’ 수법에 불과했다.

도대체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정권이 내세운 구호와 공약은 ‘명실상부’, 곧 이름과 실제가 서로 부합하는 것을 찾기 힘들 정도가 됐다. 오히려 거꾸로 가는 정책에 이름만 그럴듯하게 붙인 것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두 정권이 ‘살리기’를 하겠다고 나선 것 중에 ‘죽이기’가 되어버린 게 많은 이유도 거기 있다. ‘4대강 살리기’가 대표적이다. 그것은 ‘4대강 죽이기’로 판명 났고, 살판이 난 것은 녹조와 큰빗이끼벌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입만 열면 하는 소리인 ‘경제 살리기’와 ‘민생’은 어떤가?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정책방향이 잘못 잡히면 역시 ‘이름 붙이기’에 머물고 만다. 대선 당시 ‘줄푸세’ 대신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공약을 내세웠지만, 오히려 서민증세와 규제 완화 등이 ‘경제 살리기’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빈부격차가 극심한 사회에서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을 높여줄 생각은 하지 않고, 강남의 재건축과 재정지출에 기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많이 먹어온 우리 경제의 ‘독약’이 아닌가? 지금이라도 우리 경제를 진정으로 살리려면 경제민주화와 함께 복지지출을 늘리기 위한 증세를 해야 하고 국민을 설득하려면 엉뚱한 데 지출해온 재정운용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 등 ‘4대강 살리기’ 주역들에 대한 단죄는 그 첫걸음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경제 살리기에 도움 된다면 잘못한 기업인도 선처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런 발언이야말로 ‘총수 리스크’를 가중시키고 건전한 기업인들을 싸잡아 욕 먹이는 짓이다. 경제부처 장관이 그런 발언을 하더라도 견제하는 게 법무부 장관의 책무일 터이다. 법무부의 영어 명칭은 ‘Ministry of Justice’, 곧 ‘정의부’다. 그런데도 법무부 산하 검찰청은 정권을 위해 정의를 훼손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았다.

   
▲ 일러스트 | 경향신문 김상민 기자

▲ 이방원, 수양대군, 전두환의 공통점은?
‘4대강 살리기’와 ‘경제 살리기’ 비극도 아전인수 작명으로 출발
 
▲ 법무부 환경부 노동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름 욕보이는 활동
‘바른 이름’(正名) ‘바른 말’(正言)로 민주주의 숨쉴 공간 터줘야

박근혜 정권 들어 정부기관 중에서 ‘정명(正名)’, 곧 ‘바른 이름’을 지키지 못하고 ‘오명’을 뒤집어쓴 곳도 많다. 규제를 수단으로 하는 부처인 환경부는 ‘4대강 죽이기’ 사업에 손을 들어준 데 이어 청와대 규제개혁회의에서도 아무 소리 못하고 있다.

노동부는 살인적인 거액 손해배상 청구 등을 부추겨 노동자를 탄압하고, 교육부는 교원노조를 불법화하는가 하면 학부모들 지지로 당선된 교육감들의 작은 교육개혁 노력마저 제동을 건다. KBS와 MBC는 ‘공영방송’의 가치를 저버리고 ‘정권방송’을 만들기로 작심을 했나? 박 대통령은 ‘방송 장악 않겠다’던 후보 시절 약속과 달리,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찬양한 박효종·이인호씨를 방송통신심의위원장과 KBS 이사장에 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제 구실 못하는 공영방송과 ‘막말 방송’을 일삼는 종합편성채널은 거의 방치해둔 채 그런대로 잘하고 있는 JTBC <뉴스9>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칼을 들이댔다. 이쯤 되면 ‘방송통신왜곡위원회’가 역할에 걸맞은 이름이다.

떳떳하지 못한 정권일수록 명실상부하지 못한 가짜 기구를 많이 만든다. 유신 때 만든 통일주체국민회의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로 전통이 이어졌는데, 국민들은 그 기구가 통일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고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은 기구라는 오명으로만 기억한다. 유신헌법을 만들 때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구호를 내세웠는데 무슨 수식어가 붙는 민주주의는 독재의 다른 이름인 경우가 후진국 정치사에 많이 등장한다.

‘민생’은 말 그대로 ‘사람을 살리는’ 일인데 세월호 침몰 진상을 밝히려는 유족들마저 궁지로 몰아넣는 정부는 도대체 어떤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를 추구하나? 박 대통령 스스로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말해놓고 만나주지도 않는 건 무슨 경우인가?

극우단체의 ‘폭식투쟁’에 이어 ‘서북청년단’이 활동을 개시한 것도 박 대통령의 본심이 확인되고 뉴라이트 출신 인물들을 중용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박 대통령은 국민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조직의 기관장에 뉴라이트들을 유독 많이 기용했다. 앞서 박효종·이인호씨 말고도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권희영 한국학대학원장 등이 그들이다.

‘뉴라이트’라는 말도 실은 바른 작명이 아니다. 서구에서 ‘New Right’는 보통 우파성향의 민중주의자들을 일컫는데, 일본 제국주의와 독재체제를 경험한 한국에서 ‘뉴라이트’는 친일과 독재를 옹호하는 지식인들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퇴영적 증상이라 할 수 있다. 추종세력은 극우파이고 인륜에 반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톨레랑스’, 곧 ‘관용’을 자랑하는 프랑스에서도 ‘게소(Gayssot)법’에 따라 처벌하는데 우리 집권세력은 극우를 우군이라 생각하는 걸까, 수수방관 또는 조장해온 증거까지 드러났다.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와 정의구현사제단에도 ‘종북’ 올가미를 씌웠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유신 시절부터 가장 치열하게 독재에 맞서온 민주주의 단체가 아닌가?

‘비정상의 정상화’는 박근혜 정권이 내놓은 ‘말장난’의 결정판이다. 정상적인 것들을 수없이 비정상으로 바꾸면서 반대로 말한 것이다. 예를 들어 국정원 등 국가기관들이 선거에 개입하고 법원이 선거법 무죄 판결을 내리는 나라가 정상이면 서구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은 비정상인 나라들이다. 오죽하면 ‘비정상회담’이 웃기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등장할까?

사회 한구석의 불평분자에 불과했던 극우파의 주장을 퍼뜨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게 종편방송에 대거 출연하는 극우 논객들이다. 이들에게 야단을 쳐야 진정한 보수이고 이들을 방송에서 배제해야 진정한 보수언론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극우파와 극우언론에도 ‘보수’라는 이름을 붙여 관용을 베푸는 문제가 있다.

보수당도 보수·진보정당이 양립한 유럽 국가들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이다. 새누리당 안에도 합리적인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이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지키는 데 목소리를 모을 것을 기대한다.

진보매체들도 직무유기 혐의가 있다. 일부 논객들은 박 대통령 집권 초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 운운하며 공약 실현 가능성을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극우파가 말이라고 내뱉는 것들의 허구성과 위험성도 제대로 지적하지 못해왔다. 진보매체들이 선거 때마다 새누리당을 구제해준 조동원씨를 크게 부각시킨 것도 의아했다. 그는 지켜지지 않을 공약을 설득력 있게 포장해 결과적으로 선거를 무의미하게 만든 선전선동가다. 새누리당이 표방한 ‘100% 대한민국’과 ‘국민행복시대’는 모두 거짓말이었고, 선거 때 조동원씨가 이준석씨를 내세워 띄운 ‘새바위’는 선거가 끝나자 해체됐다.

언론은 끊임없이 거짓을 기획하는 세력들을 응징해야 한다. 언론이 조직과 정책에 ‘바른 이름’(正名)을 붙여주고, ‘바른 말’(正言)을 해야 민주주의가 숨쉴 수 있다. 정언은 조선시대 사간원에서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기도 했으니 오늘날의 언론인이다. 우리말이 정치판에서 이토록 오용돼 민주주의를 망치고 있으니 해마다 오는 한글날이지만 더욱 우울해진다.


 * 이 기사는 <경향신문>과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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