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실험실] ③ 선진국은 이렇게 한다

지난해 7월 19일 서울 군자동 세종대 식품공학과 연구실에서 실험 중 황산이 폭발해 7명이 크고 작은 화상을 입었다. 이 사고 두 달 전에도 이 학교에서는 유독 가스인 삼브롬화붕소가 누출돼 학생과 교직원 2000여 명이 대피하는 일이 있었다. 대학의 실험실 안전관리가 너무 허술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같은 해 8월에는 부산 부경대 공대의 한 실험실에서 실험기기가 터지는 바람에 해당 장비를 설치하던 납품업체 직원 한 명이 숨지고 학생 2명이 일시 기절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 6월까지 대학에서 발생한 실험실 사고는 총 522건으로, 매년 100여건 이상 사고가 난 것으로 집계됐다. 사고는 가벼운 부상에서 다리 절단이나 죽음까지 다양한 인명피해로 이어지고, 실험기계 훼손 등 적지 않은 재산피해도 낳는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일찌감치 실험실 안전에 대한 투자와 관리를 제도적으로 명확히 규정해 추진하고 있다.

미국 대학들, 총장 책임 아래 안전전담 부서 운영

지난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현 미래창조과학부)가 낸 연구실 안전정책 선진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산업안전보건법(OSHA)의 하위항목인 ‘연구실 기준’을 통해 실험실 안전을 규제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미국 대학에서 연구실 안전관리의 궁극적 책임은 대학총장에게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부총장 직속기구로 안전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를 운영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30대 연구중심대학들은 모두 안전보건 전담부서를 두고 실험실 안전을 철저히 점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미국 텍사스 대학교 실험실 사진. 실험에 참여하는 학생 모두 보호경, 장갑, 실험복 등을 착용하고 있다. ⓒ 텍사스 대학교 홈페이지

유럽 역시 안전관리자에게 명확한 권한을 주고, 동시에 책임도 철저히 묻는 시스템이다. 프랑스 파리6대학의 경우 대학 총안전관리자의 통제 아래 실험실 단위로 250여명의 안전관리자를 두고 있다. 이들은 법 규정에 따라 위험성 평가와 실험실 폐기물 불활성화 등을 수행한다. 독일은 안전관리 감독업무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한다. 예를 들어 독일 프리드리히 알렉산더 대학교의 안전관리담당자는 필요할 경우 연구실 폐쇄 조치도 내릴 수 있다. 독일 대학들은 안전교육 이수를 졸업요건으로 정해 이를 이수해야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정해놓거나 일정 시간 안전교육을 받지 않지 않으면 실험실습에 참여할 수 없도록 규정한 곳이 많다.

일본은 노동안전위생법과 노동안전위생규칙, 화학물질배출파악관리촉진법 등 관련법에 따라 대학의 실험실 안전도 통제한다. 예를 들어 오사카 대학은 환경안전연구관리센터에서 학내로 들어오는 모든 화학물질의 입출고량을 기록하고 감시한다.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실험실 환기 기준부터 독성 화학물질 노출 정도 등 실험자의 안전을 해치는 요인들을 규제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안전관리자가 명확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실행을 점검하며,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안전의식을 높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카이스트, 대형사고 후 ‘안전연극’ 등 예방 캠페인

국내에서는 지난 2003년 실험실 사망사고를 겪은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가 안전의식 강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 학교는 지난해부터 안전캠페인 주간인 5월에 교내 연극동아리 ‘이박터’의 <공동연구> 공연 등을 통해 학생들의 안전의식을 고취하고 있다. 당시 교내 풍동실험실 사고로 대학원생 한 명이 숨지고 다른 한 명은 다리를 잃었는데, 연극은 이 사고를 재연해 학생들의 경각심을 높이자는 의도로 제작됐다.

▲ 카이스트 연극동아리 ‘이박터’의 <공동연구> 공연장면. ⓒ 카이스트 연극 동아리 '이박터

카이스트 연극 동아리 '이박터 카이스트 안전팀의 황원 선임연구원은 “안전지식은 풍부해도 안전의식은 부족했던 학생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대기업에서 산재예방 목적으로 하는 ‘안전연극’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연극을 포함한 안전 캠페인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내 대부분의 대학들은 안전 예산이나 교육에 소홀해 사고를 겪으면서도 이렇다 할 노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이근원 위험성연구팀장은 “공대를 졸업한 학생들은 산업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을 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안전의 중요성을 체화해야 산업현장에서도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안전에 들이는 교육과 시설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팀장은 독일처럼 학생들이 최소 1학기는 체계적으로 안전교육을 받아야 졸업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대학의 안전관리 의무 강화를 위한 법 개정, 안전체험실습장 설치와 교육 교재 개발 등 대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미래부 장석영 미래인재정책국장은 “안전교육 이수 없이 사실상 연구 참여 자체가 불가능한 대다수 선진국 등을 볼 때, 연구실 안전교육 강화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제대로 추진할 경우) 세계 최고의 연구성과 도출을 위한 기본 인프라 조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내일의 과학자와 엔지니어 등을 키우는 대학 실험실이 ‘안전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인원이 위험한 기기와 유해물질 등을 다뤄 사고 가능성이 높지만, 대학의 안전 의식이 낮고 예산도 인색해 학생들이 ‘살얼음판’ 위로 내몰리고 있다. 대학실험실에서 안전을 소홀히 하는 관행이 산업현장의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청년기자들이 대학 실험실의 실태를 취재하고 대책을 모색했다.(편집자)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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