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실험실 ② 부실한 안전교육

“앗!”

외마디 비명과 함께 한 연구원(29)이 눈을 감싸 쥐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경남의 한 국립대학 생명과학대학원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이정우(29·가명·석사과정)씨는 지난 6월 일어났던 사고를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이씨의 동료가 암환자의 혈액에서 디엔에이(DNA)를 추출하던 중 혈액이 눈에 튄 것이다. 실험할 때는 보호안경을 써야 하는데 무더위로 눈가가 뿌옇게 되는 등 불편하다는 이유로 착용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그 연구원은 눈의 통증을 호소하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별 후유증은 없었지만, 만일 간염이나 에이즈 등에 감염된 혈액이었다면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이씨는 전했다.

필수 보호안경 불편하다고 벗은 채 실험 다반사

이씨는 이처럼 실험실에서 필수적인 보호안경 등을 쓰지 않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연구자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보호장구의 중요성에 대해 교육이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가 석사과정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었지만 안전교육이라곤 실험실 벽에 붙은 안전수칙을 한 번 읽은 게 전부였다고 한다.

▲ 각 대학 실험실에는 대부분 안전수칙이 게시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 박지은

"학부 실험실도 처음 들어갈 때 안전교육은 받아요. 보호안경, 마스크, 실험복 착용도 첫 학기에는 실험실 조교가 엄격하게 단속하죠. 하지만 2학기부턴 학생 자율에 맡겨요. 한 번 교육도 했고, 학부 과정에선 취급하는 약품 수도 적으니 조교도 크게 강요하지 않아요."

경기도 수원의 한 사립대 화학공학과에 다니는 박세윤(25·가명)씨는 학부 실험 참여자들의 안전 의식이 대체로 낮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를 졸업한 조아영(28·여·가명)씨도 “학부 때 진행한 실험은 기초적인 것이 많다보니 사고 위험성이 낮다고 생각해 안전에 대해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며 “보호안경이나 마스크도 귀찮아서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안이한 태도는 곧잘 사고로 이어진다.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이 지난해 10월 미래창조과학부 국정감사에서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 6월까지 발생한 연구실 사고 556건 중 94%인 522건이 대학에서 일어났다. 또 사고 원인 중 88%인 491건이 기계·기구 사용부주의, 위험물 취급 부주의, 불안전한 자세 등 연구자의 부주의로 분류됐다.

▲ 연구실사고 발생률과 사고원인. ⓒ 최민희 의원실 보도자료

대학 절반 이상 안전 교육 제대로 안 해 
 
연구실 안전환경조성에 관한 법률 18조에 따르면 대학 등의 연구활동종사자는 연간 12시간의 법정 정기안전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대학총장이나 연구기관 대표 교수가 대학 내 안전교육센터나 지역거점별로 마련된 안전교육 지원센터 등에 교육을 신청하도록 돼 있다. 최민희 의원은 2013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대상 대학의 49.3%만이 이 같은 법정 교육을 이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교육을 실시하는 경우도 내용이 미흡한 경우가 많다고 경험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박세윤씨는 “매년 안전교육은 진행되지만 이공계 학생 전체를 대강당에 모아놓고 실시해 구색 맞추기에 그치거나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아영씨는 “(안전교육에서) 강의 출석만 한 뒤 졸거나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환경공학과 정은민(29·가명·석사과정)씨는 “원래 안전교육은 안전교육센터 같은 곳에서 담당자가 직접 방문해야 하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계속 연락이 안 돼 조교들이 대신 진행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2013년 연구실 안전관리현황 지도·점검 분석’에서도 연구실 안전사고에 영향을 주는 지적사항(1520건) 중 ‘안전교육 실시 미흡’이 전체의 28%(417건)를 차지해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혔다. 다음으로 안전조직체계 미흡(24%, 368건), 보험가입․건강검진․안전예산 확보 미흡(21%, 322건), 안전점검 미실시(20%, 305건), 긴급대처방안 미흡(7%, 108건) 등의 순이었다.

법정 안전관리 전담인력 없는 대학도 30%나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김우식(24․가명․환경공학)씨는 “안전교육만 제대로 받았어도 구멍 뚫린 슬리퍼 대신 약품이 튈 때 발을 보호해주는 운동화를 신는 학생이 지금보다 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험을 지도하는 석사와 박사의 안전교육이 더 시급하다고 본다"며 “실험을 주도하는 석사와 박사 연구원들의 미비한 안전 의식이 학부생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실험실 안에선 반드시 실험복을 입어야 하지만 평상복차림 그대로 실험에 참여하는 학생도 있다. ⓒ 박정헌

연구실 안전법에 따르면 상근 연구자나 학부생 등 연구에 참여하는 총인원이 1000명 이상인 기관은 의무적으로 2명 이상의 안전관리자를 지정해야 한다. 그러나 매경안전환경연구원이 실시한 ‘2012 연구실 안전관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상 대학 206곳 중 72%인 149곳만이 2명 이상의 관리자를 선임한 상태였다.
  
충북대 안전공학과 임현교 교수는 “안전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고 일상생활부터 몸에 배어 있어야 하는데 대학 실험실 안전교육은 대부분 웹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현장 위주의 안전교육을 실시해야 하고, 실험 수업 첫째주는 완전히 안전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학생은 물론 연구실 교수들도 안전교육을 반드시 받도록 해 안전의 생활화를 실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세명대 전자공학과 권오근 교수는 "매학기마다 있어야 할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학교가 많다"며 "조교는 물론 학생들이 정기적으로 안전관련 교육을 받는 것이 실험실 안전을 지키는 첫 번째 길“이라고 말했다.


내일의 과학자와 엔지니어 등을 키우는 대학 실험실이 ‘안전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인원이 위험한 기기와 유해물질 등을 다뤄 사고 가능성이 높지만, 대학의 안전 의식이 낮고 예산도 인색해 학생들이 ‘살얼음판’ 위로 내몰리고 있다. 대학실험실에서 안전을 소홀히 하는 관행이 산업현장의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청년기자들이 대학 실험실의 실태를 취재하고 대책을 모색했다.(편집자)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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