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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전사고 난 후에야 절연장갑 구입
위험한 실험실 ① 인색한 예산, 버려진 안전
2014년 09월 18일 (목) 10:34:36 이청초 박정헌 배상철 기자 doublecho24@gmail.com

내일의 과학자와 엔지니어 등을 키우는 대학 실험실이 ‘안전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인원이 위험한 기기와 유해물질 등을 다뤄 사고 가능성이 높지만, 대학의 안전 의식이 낮고 예산도 인색해 학생들이 ‘살얼음판’ 위로 내몰리고 있다. 대학실험실에서 안전을 소홀히 하는 관행이 산업현장의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청년기자들이 대학 실험실의 실태를 취재하고 대책을 모색했다.(편집자)

지난달 6일 서울의 한 사립대 공과대학 환경공학과 학부생 실험실. 평균적인 고등학교 화학실험실 보다 작은 60평방미터(㎡) 가량의 공간에 책상 4개, 의자 18개가 있어 한 눈에 비좁다는 느낌을 주었다. 책상들 위에는 황산 등이 든 시약병 69개가 뚜껑이 열리거나 먼지가 쌓인 채 놓여 있었다. 이 시약 중 상당수는 잘못 다룰 경우 인체에 해를 끼치거나 화재 등 사고를 일으킬 우려가 있어 캐비닛에 별도 보관해야 하지만, 외부인도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오후 내내 개방된 실험실 책상에 방치돼 있는 상태였다.

책상 위 유해 시약병 누가 가져가도 모를 정도

시약병 47개가 몰려 있는 한 책상을 살펴보니 페놀 종류와 아세톤 종류가 23개였다. 소화기와 피부를 통해 인체에 흡수되는 페놀은 심각한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맹독 물질이다. 아세톤은 장기간 접촉했을 때 피부가 벗겨지는 등의 부작용이 있다. 페놀이 든 한 시약병의 경우 ‘가스 흡입 시 치명적이며 유전적인 결함이 발생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으나 뚜껑이 활짝 열려있었다. 깨진 유리 비커(실험용기)가 책상 위에 그대로 놓여있기도 했다.

   
▲ 위험시약을 보관하는 캐비닛이 있지만 인체에 유해한 시약병들이 먼지가 쌓인 채 책상 위에 계속 놓여 있다. ⓒ 박정헌

환경공학기사 자격증 시험을 위해 개인적으로 실습중이라는 김우식(24․가명․환경공학과4)씨는 실험실 안전을 위해 설치된 기기도 고장이 났다고 말했다.

“사실 여기 몸에 좋은 시약은 없어요. 그래서 후드(공기배출장치) 안에서 작업해야 해요. 후드는 고기집 가면 냄새 빠지라고 테이블 마다 있는 굴뚝 같은 거 있죠? 그거랑 원리가 같아요. 근데 그마저도 고장 났어요.”

   
▲ 김씨가 고장 난 후드에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녹이 슨 후드 안에는 버려진 시약병들이 뒹굴고 있었다. ⓒ 박정헌

단체 실험을 할 때는 이 공간에 35명에서 40명 정도가 한꺼번에 들어오기도 한다고 김씨는 말했다. 책상과 의자, 기구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사람이 스무 명 이상 서 있기가 어려운데, 붐비는 상태에서 실험을 하다보면 기자재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검게 그을린 전기콘센트, 발화성 물질 사이 방치

해골 표시가 되어 있는 시약병들 옆에 까맣게 그을린 전기콘센트도 있었다. 김씨는 “무슨 이유로 터졌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고장 났다”며 “주변에 아무렇게나 놓인 시약병들이 많아 화재 위험이 커서 교체돼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의 시약들은 대부분 발화성으로, 콘센트가 고장 난 것을 모르는 누군가 콘센트를 사용하다가 자칫 불꽃이 주변 약품에 튀면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김씨는 그러나 실험실 예산이 적어 기자재 교체를 건의할 생각을 못한다고 말했다. 학부생 실험실 예산이 연간 1000만원 정도인데 저울 1개에 1백만원이나 될 정도로 기자재들이 비싸기 때문에, 구입비로도 빠듯해 실험실 환경 개선을 요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 시약병이 놓여있는 책상 주변에 검게 그을린 콘센트가 방치돼있다. ⓒ 박정헌

석·박사 실험실은 학부보다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안전에 들어가는 예산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사립대 공대 석사과정의 박수근(29‧가명)씨는 “학과 연구실에 배정된 안전예산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며 “실험을 할 때마다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6월 박씨의 연구실 동료가 자동차 회로를 제어하는데 필요한 전압 량을 측정하는 실험을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맨손으로 전압기와 발전기를 연결하다가 감전된 것이다. 700볼트(V)이상의 고전압 실험이 아니었고 감전 당시 즉각 손을 떼 큰 사고는 면했지만 박씨의 동료는 하루 종일 전신 근육이 마비되는 느낌에 시달렸다고 한다. 박씨 동료의 실험실에는 절연장갑과 절연신발 등이 필수적으로 비치돼 있어야 했지만, 사고 후에야 절연장갑 2개를 14만원에 구입했다고 한다.

“고전압 실험을 할 때는 20만원 정도 하는 절연신발도 신어야 하는데, 발이 감전이라도 돼야 사 줄 것 같아요. (지난 번 사고 후에도) 여전히 실험실 안전을 위해 책정하는 예산은 없고요.”

   
▲ 전기전자 실험을 할 때는 절연장갑과 절연신발을 착용해야 하지만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은 실험실이 많다. ⓒ 배상철

대학들 안전 투자 소홀해도 현실적 제재 없어

현행 ‘연구실 안전환경조성에 관한 법률(연구실안전법)’에 따르면 각 대학은 연구실 인건비 총액의 1~2%를 안전관리비로 책정해야 한다. 하지만 2012년 기준 인건비 총액의 0.6%만이 안전관리비로 책정되고 있고, 기준을 따르지 않는 대학에 대해서는 당국의 ‘권고’ 외에 실질적인 제재가 없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세월호 참사로 사회 전반의 안전불감증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진 후에야 대책 마련에 착수, 안전 예산을 기준 이하로 쓰는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에 과태료를 물리는 내용의 연구실안전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지난 3일 발표했다.

미래부 연구환경안전과 전영희 서기관는 “1% 이상의 안전관리비를 확보하지 않거나 목적 외로 사용하는 행위를 철저히 감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위험성연구팀 이근원 팀장은 “열악한 실험실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대학에서 반, 정부에서 반씩 지원하는 등 점진적으로 늘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이청초 기자]
단비뉴스 전 편집부장, 청년팀
한 번 문 건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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