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노동자의 현실] <하> 택배, 집배원 등의 안전망 없는 중노동

대부분 특수고용직이나 자영업 등으로 분류돼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배달직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한여름 폭염과 싸우면서도 호소할 곳조차 없다.  

서울시의 낮 최고기온이 34.7도까지 올랐던 지난달 1일 오후 2시. 서울 동대문 쇼핑센터 뒷골목에는 양손에 가득 짐을 들고 서둘러 오토바이로 다가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동대문시장 도매상에서 수도권 전역으로 의류 등을 배달하는 노동자들이다. 경력 8년차인 이모(42)씨는 자신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많은 짐을 오토바이에 실으며 목에 두른 수건으로 연신 땀을 훔쳤다.

▲ 동대문 의류배달 경력 8년차인 이모씨의 오토바이에 원자재 꾸러미가 가득 실려 있다. ⓒ 배상철

“한 봉지 배달 할 때마다 5천원 정도 받아요. 10개 실으면 5만원 쯤 되는데 기름값을 생각하면 최대한 많이 실을 수밖에 없어요. 왔다 갔다 하는 횟수는 한정적이잖아요.” 

이씨는 “반팔을 입으면 살이 익어버리는 탓에 긴팔을 입을 수밖에 없다”며 땀범벅이 된 얼굴로 오토바이에 올랐다. 이들은 아침 9시에 나와 저녁 7시까지 일하고, 일감만 있으면 주말에도 배달을 한다. 연령대는 대부분 40대에서 60대 후반의 중고령층인데, 젊은이들도 버티기 힘든 폭염에 과적 상태의 오토바이를 몰고 있어 자칫 대형사고를 낼 우려도 있다.

▲ 서울시의 낮 최고기온이 34.7도까지 올랐던 8월 1일, 한 배달노동자가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달리고 있다. ⓒ 배상철

하루 종일 걸어서 우편배달을 해야 하는 재택위탁집배원들도 폭염에 취약한 노동계층 중 하나다. 더위가 주춤했던 지난달 7일 경기도 시흥시의 낮 최고기온은 25도로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래도 유모(46·여)씨는 넓은 챙이 달린 썬캡에 긴팔차림으로 일을 시작했다. “더위에 살이 익어 반팔을 입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유씨는 현재 시흥시 정왕동 주공아파트, 신동아아파트, 고합아파트 등 총1900세대에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다. 이날은 고합아파트에 일반 우편을 배달하는 데 기자가 함께했다. 오후 3시부터 400세대에 우편물을 돌리는 동안 유씨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유씨는 더위도 고통이지만 우편물을 싣고 다니는 가로 45cm, 세로 63cm 크기의 수레 무게도 힘겹다고 말했다. 선거철이나 고지서가 나오는 매월 셋째 넷째 주는 우편물이 많이 들어가 수레를 끌고 다니기가 더욱 버겁다고 한다.

“요즘은 너무 더워서 오후 1~3시에 일을 하다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까지 해요. 지난 주처럼 30도가 넘는 날씨에 배달을 하면 날씨도 날씨지만 무거운 수레까지 끌어야 해서 더 더워요. 늘 옷이 땀에 절어있어서 빨래를 해도 땀 냄새가 빠지지 않아요.” 

▲ 유아씨는 현재 총1900세대를 담당하고 있다. 8시간 이상 햇빛에 노출된 채 일해야 하기 때문에 여름날에도 긴 팔을 입는다. ⓒ 유선희

우체국에 특수고용된 재택위탁집배원들은 시간개념이 아니라 세대개념으로 수당이 책정된다. 1시간 동안 250세대에 우편을 배달하면 5460원이 책정되는 시스템이다. 7년 전부터 재택위탁집배원으로 일해 온 유씨의 한달 수입은 수수료를 빼고 86만원이다. 

유씨는 땡볕을 피해 배달을 빨리 마치려고 요즘 새벽 5시부터 우편배달에 나선다. 그래야 오후 1시 전에 일을 마칠 수 있다. 하지만 우편물이 많을 때는 아무리 일찍 시작해도 오후 2~3시까지 다녀야 한다. 유씨는 “더운 날씨도, 힘겨운 배달도 어쩔 수 없지만 우체국측이 무거운 수레를 개선해주거나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때 산업재해 보상을 해 주는 등 배려를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씨는 수레를 오래 끌다가 오른쪽 어깨에 이상이 생겼는데, 도급계약형태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산재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우정사업본부의 입장이다. 

▲ 무거운 수레를 7년 가까이 끌어 어깨에 이상이 생겼지만 산재혜택을 받을 수 없는 유아씨는 최근 배달용으로 중고 자전거를 샀다. ⓒ 유선희

산재보험법 125조는 보험설계사, 레미콘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퀵 서비스 기사 등 6개 직종에 대해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가 ‘적용제외’를 신청하면 산재보험을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를 회사들이 악용하고 있어, 2012년 4월 기준으로 특수노동자 산재보험 가입률은 9.2%에 불과하다.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김동근 연구원은 “폭염 속에서 일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그로 인해 탈수가 발생해 사망에 이르거나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됐을 때 여기에 대응하지 못하도록 하는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직종과 업무내용, 고용형태를 막론하고 모든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인 산재보험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1999년부터 2011년까지 기간별 온열질환 사망자. ⓒ 한국기후변화대응전략연구소

선진국들은 고열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국가차원에서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 뉴질랜드의 경우 모든 근로자들이 정상적 심부(체내)온도인 37~38도를 초과하지 않는 작업환경에서 일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 미국은 작업이 끝난 후 측정한 구강 온도가 37.6도 이상일 경우, 측정한 심박수가 분당 110회 이상인 경우 다음 작업주기를 3분의1로 단축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또 온열질환 관리를 위해 감독자와 근로자 모두를 대상으로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 주는 지난 2006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무더위로 인한 질병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르면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물과 그늘, 충분한 휴식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또 온도가 화씨 95도(섭씨 35도)까지 올라갈 경우 농업, 건설, 조경, 석유 및 가스 추출, 농업운송 등 5개 산업 노동자들은 오후 1시까지 일을 끝내야 한다. 

기후변화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로 여름의 폭염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기간도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폭염 취약노동계층에 대한 대책도 체계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안전행정부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미래 안전 이슈’ 리포트에서 “2020년에는 폭염이 30일 넘게 지속돼 평소보다 1만 여 명이 더 사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정부도 폭염으로부터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종합적 대책을 법률 등 실효성 있는 수단을 통해 마련하고 근로 및 산업안전 감독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지역별 미래폭염일수. 앞으로 한반도 전 지역에서 폭염일수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 한국기후변화대응전략연구소

포스코건설 안전관리자 신명근 대리는 “폭염 속에서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으려면 법적으로 사업주가 이들에게 그늘과 휴식시간을 제공하는 것을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영자의 안전 마인드에 따라 작업환경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며 ”몇 도 이상일 경우 몇 시간 동안 근로자들이 근무하지 말라는 등 혹서기에 필요한 매뉴얼을 만들어 각 회사마다 그 매뉴얼을 따르게끔 고용노동부에서 고시를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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