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노동자의 현실] <상> 일사병, 열실신 등 온열 피해자 증가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지난달 6일 오전 6시 40분쯤 울산시 남구 신정1동의 주유소 확장공사 현장. 인근 사설인력사무소에서 새벽 5시부터 기다리다 일거리를 소개받은 기자는 다른 일꾼들과 함께 주유소 바닥에 고인 기름 찌꺼기를 포대에 퍼 담는 일부터 시작했다. 고무장갑과 무릎까지 오는 장화가 현장에서 제공됐지만 수량이 부족해, 기자는 작업반장이 준 목장갑과 안전화를 착용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삽으로 기름 찌꺼기를 담는 과정에서 기름이 사방으로 튀었다. 오전 11시쯤, 기온은 섭씨 29도까지 올랐고 뜨거운 햇살이 온 몸에 느껴졌다. 입고 간 하얀 티셔츠는 검은 기름때로 얼룩졌고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땀 냄새와 역한 기름 냄새가 섞여 머리가 어지러웠다.
 
33.6도 무더위에 물과 그늘 없이 일하는 서러움

 

▲ 주유소 확장 공사현장에서 작업 중인 인부들. ⓒ 배상철

기름 찌꺼기 제거를 마치자 눈만 빼고 마스크로 얼굴전체를 가린 작업반장이 다가와 주유소 입구 길목을 확장한다며 삽을 쥐어줬다. 사흘 전부터 여기서 일했다는 류모(19·고등학교 중퇴)군은 “다른 곳은 10시에 새참도 주고 쉬는 시간도 줬는데 여기는 물도 주지 않는다”며 투덜거렸다. 주유소 작업장 주변은 그늘이 전혀 없어 땡볕에 그대로 노출된 채 삽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용접일이 없어 일당을 벌러 나왔다는 경력 10년차 용접공 윤모(53)씨는 “이 날씨에 흙먼지 마시며 삽질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며 무더운 날씨를 원망했다. 

정해진 점심시간은 낮 12시였지만 30분이 지나서야 식당으로 갈 수 있었다. 해장국을 한 그릇씩 먹자마자 작업반장은 다시 일을 재촉했다. 윤씨는 “소규모 공사 현장은 공사기간 단축이 비용과 직결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끝내려고 독촉한다”고 얼굴을 찡그렸다. 점심시간은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오후에는 흙과 시멘트를 물과 섞어 주유소 외벽 사이에 바르는 작업을 했다. 오후 2시쯤  스마트폰을 보니 기온이 33.6도였지만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일해서인지 체감 온도는 훨씬 더 높게 느껴졌다. 바다가 가까운 울산은 다른 곳보다 더 습한 편인데, 이날 습도는 특히 76%(쾌적한 날씨엔 50~60%)나 돼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도, 심지어 물과 소금도 제공되지 않는 공사장에서 오후 작업을 한 지 1시간 정도 지나자 현기증이 몰려왔다. 얼굴과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뜨거운 햇볕에 집중 노출된 뒷목이 몹시 따가웠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기자도 오후 2시가 넘어가자 삽을 드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졌다. 그런 상태에서 오후 5시까지 일하는 동안 ‘이런 게 지옥의 뜨거운 불구덩이가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작업현장 바로 옆에서 굴삭기로 땅을 파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작업감독관으로 와 있던 I주식회사 김모 차장은 “지난 주 이 근처 쓰레기매립장에서 20대 인부가 일을 하다가 일사병으로 쓰러진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차장과 함께 벽돌을 싣기 위해 트럭으로 15분 거리의 해당 쓰레기매립장에 가보니 수 미터 아래 작업장에서 인부들이 가스추출용 파이프를 나르고 설치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상에서 작업장으로 내려가는 길은 계단이나 사다리도 없이 절벽처럼 가파른 경사였고, 흙이 흐르지 않도록 사방을 검은 천으로 감싸고 있어 열기가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 가파른 비탈 아래 쓰레기 매립장에서 노동자들이 가스를 빼내기 위한 파이프를 운반하고 있다. ⓒ 배상철

매립장 인부들이 잠시라도 쉬려면 가파른 경사면을 걸어 올라야만 했는데, 그게 힘든지 그냥 땡볕에 누워 숨을 고르는 사람도 있었다. 김 차장은 “가파른 경사를 오르다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쓰레기 매립장은 일이 힘들어서 (젊은이들이 오지 않고) 보통 40대에서 50대 분들이 많은데, 날씨가 더워 현기증이 나기 쉽기 때문에 여름에 특히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주유소 확장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인부 이모(60)씨는 “파업이라도 하고 싶다”고 한탄했다. 무더운 날씨에 혹사당하면서도 수입이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이씨는 “하루 종일 일해서 번 돈의 10%이상을 인력사무소에서 수수료 명목으로 떼 간다”며 “일용직 노동자 대부분이 신용불량자이거나 마땅한 다른 벌이가 없기 때문에 불법(무허가) 인력사무소의 횡포에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와 이씨는 각종 수수료를 뗀 뒤 각각 7만 9천원을 받았다. 이씨는 일이 너무 힘들어 격일로 나오기 때문에 한달 평균 수입이 14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건설 안전장비 착용하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송골송골

 

▲ 거푸집 해체 작업을 하고 있는 한 건설노동자. ⓒ 김선기

같은 날 다른 기자는 울산시 울주군의 한 제련공장 건설현장으로 일용 노동을 나갔다. 건설현장에서는 긴팔 옷과 장갑, 두터운 안전화, 안전모 그리고 안전벨트가 필수였다. 오전 7시였지만 작업복장을 모두 갖추니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기자가 맡은 업무는 지상 3미터(m) 높이에서 콘크리트 벽을 짓는데 쓰인 거푸집을 해체하는 일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2시간이 채 흐르지 않아 온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됐다. 격한 갈증과 허기도 느껴졌다. 공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된 철제 난간은 열을 그대로 흡수해 기댈 수조차 없었다. 맨 손으로 난간을 잡았다면 화상을 입을 것 같았다.

 

▲ 한 건설노동자가 지상3m 높이에서 안전장치 없이 건설자재를 옮기고 있다. ⓒ 김선기

공기업에서 퇴직하고 올해 건설노동을 시작했다는 윤모(56)씨는 “오늘만 해도 작업하는 동안 현기증이 여러 번 났다”며 괴로워했다. 땀으로 세수한 것 마냥 얼굴 전체가 물기로 범벅이 돼 있었다. 그나마 이 건설현장에는 인부들이 틈틈이 섭취할 수 있도록 곳곳에 물과 소금을 비치해 놓아 갈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다.

낮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 겸 휴식시간이었다. 식사 후 근처 그늘에 마련된 의자에서 쉬거나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오후 3시쯤에는 10~20분의 ‘커피타임’이 주어져, 33.6도에 이르는 더위를 차가운 음료로 조금 식힐 수 있었다.

 

▲ 노동자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토막잠을 자기도 한다. 구내식당에 준비된 정수기 바로 옆에 식염정(소금)이 보인다(위쪽부터). ⓒ 김선기

그럼에도 이런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더위로 탈진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고 인부들은 말했다. 원모(49)씨는 “더운 곳에서 오랜 시간 일하면 혈액순환이 잘 안돼서 기절할 수도 있는데, 특히 높은 곳에서 기절하면 추락사 같은 큰 사고로 이어진다”며 “몇 년 전 여름에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학생이 배 외부에 페인트칠을 하다 열실신으로 바다에 빠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김형렬 소장은 “폭염 등에 그대로 노출된 노동자들의 경우 열사병의 위험이 항상 있다”면서 “열사병은 발병하면 치사율이 80%에 달하는데, 이 병으로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오랜 기간 숙련노동을 한 인부들은 고온에 적응하기 때문에 사고가 잘 나지 않는 반면, 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나 개인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주 위험군”이라고 말했다.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은 폭염 중 작업으로 부상을 입어도 제대로 보상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전국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지부 강호경 사무국장은 “폭염 등으로 개인이 쓰러져서 사고가 난 경우 사실상 산업재해처리를 받기 힘들다”며 “산재가 발생하면 회사에 손해가 가기 때문에 병원에 잘 보내지 않으려 하고, 구급차를 부르는 것까지 막으면서 회사가 지정한 병원에 가도록 유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 국장은 또 “건설현장이 원청과 하청, 재하청 식의 다단계 구조로 돼 있는데,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은 대부분 제일 아래에 있어 작업 전에 (근로조건관련) 계약서도 작성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늘과 휴식시간 제공 의무, 법적 강제 없어 잘 안 지켜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3년 온열질환자 발생 수는 1195명으로 2012년 대비 약 1.2배, 2011년 대비 약 2.7배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온열로 인한 사망자도 2011년 6명, 2012년 15명, 2013년 14명 발생했다. 온열질환은 열사병, 열탈진, 열경련, 열실신, 열부종 등을 의미한다. 2011년부터 3년 동안 발생장소별 온열질환 현황을 보면, 실외작업장, 길, 논밭 등 야외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가 2043명으로 실내작업장, 비닐하우스, 집 등 실내에서 발생한 579명의 3.5배 규모다. 지난해의 경우 실외에서 총 938명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는데, 이중 34%(322명)가 건설현장 등 작업장에서 일어났다.

 

▲ 2011년 이후 3년 동안의 질환별, 장소별 온열질환 발생현황. 온열질환은 실내보다 실외에서 3.5배 더 많이 발생했다. ⓒ 질병관리본부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 여름의 경우 6월 1일부터 7월 26일까지 총 345명의 온열질환자가 신고됐다. 환자 발생 장소를 보면, 실외가 285명(82.6%)으로 대부분인데 특히 제철공장, 시멘트공장 등 작업장에서 97명(28.1%), 논밭 65명(18.8%), 길가 38명(11.0%) 순으로 나타났다.

 

▲ 올 여름 6월 1일부터 7월 26일까지 질환별, 장소별 온열질환 현황. 열탈진이 52.5%로 가장 많았고, 발생 장소는 실외가 82.6%로 대부분이었다. ⓒ 질병관리본부

폭염에 따른 취약노동계층의 피해가 늘자 고용노동부는 ‘온열질환 예방 3대조치’를 만들어 관리에 나섰다. 깨끗하고 시원한 물, 근로자들이 쉴 수 있는 그늘,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 무더위 휴식시간 제공 등이 대책의 주 내용이다. 하지만 기자들이 직접 다녀온 울산, 대구 등 일부 중소 건설현장에서는 이런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었다. 이는 노동부 지침이 법으로 의무화된 것이 아니어서 사업주들이 따르지 않아도 제재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산업복지과 최성필 주무관은 “그늘과 휴식시간 제공이 강제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아 이를 지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향후 이 부분을 안전보건규칙 등에 법적으로 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깨끗한 물과 소금을 제공하는 것’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571조)으로 의무화되어 있음에도 이행되지 않는 작업장이 있어 당국이 의지를 갖고 철저한 근로감독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이 기사는 삼성언론재단의 제1회 대학생 탐사보도 공모전에서 노력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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