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경향신문 만평 ‘장도리’ 20년 연재 박순찬 화백

공상과학(SF: Science Fiction) 장르는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별로 없는 편이다. SF영화는 그나마 낫지만, SF소설이나 만화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쏠린다. <경향신문>에 네 컷짜리 시사만화 ‘장도리’를 그리는 박순찬(43) 화백은 원래 SF만화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사람들이 ‘상상할 여유’가 없어 SF 장르가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군부독재를 겪으며 언제 어디로 끌려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경제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정부가 만든 물질만능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상상’은 사람들에게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SF는 과학이론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이야기다. 반면 우리 사회에선 이론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들도 수없이 벌어진다. 장도리를 그리는 박순찬 화백이 현실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허구라고 믿고 싶은 현실’을 시사만화로 그리는 그가, ‘현실 같은 허구’인 SF만화를 그리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지난 5월 22일 서울 정동 성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 있는 카페 ‘산 다미아노’에서 박 화백을 만났다.

이한열 열사 거쳐간 동아리에서 시사만화 입문

▲ <경향신문>에 네 컷짜리 시사만화 ‘장도리’를 그리는 박순찬 화백. ⓒ 남건우

“다른 직업을 갖더라도 만화는 계속 그리지 않겠나, 이런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지난 1994년 12월 경향신문사에 들어간 박 화백은 95년 2월부터 장도리를 그렸다. 그렇게 시작한 연재가 어느새 20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당시 유행하던 명랑만화를 흉내 낸 그림을 모아 만화책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의 만화책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과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 전공으로 천문대기학과를 선택했다. 그림과 과학을 모두 좋아했던 그가 SF 만화에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대학 입학 전에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질 계기가 없었어요. 입학 후에 만화동아리에서 사회 참여적인 작업들을 하면서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가졌죠.”

1988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동아리 ‘만화사랑’에 들어가면서부터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에 주목했다. 1987년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하던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86학번)도 만화사랑 출신이다. 박 화백은 벽보에 붙일 한 컷짜리 그림을 그리고, 동아리 선배들과 사회현안에 관해 토론하며 시사만화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마침 경향신문사에서 시사만화가를 공모했다. 시험은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소재로 한 네 컷 만화와 정치상황 관련 한 컷 만화 그리기였다. 당시 2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그는 유일한 전속 만화가로서 <경향신문>에 만평을 그리고 있다. 

자본권력 폐해, '장도리'로 고치고 싶어

“장도리는 망치잖아요. 못을 박고 뺄 수 있는 도구. 뭔가 쓸모 있는 도구.”

장도리는 사람이 맨손으로 못 하는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박 화백은 ‘세상을 바꾸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도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만평 이름에 담았다고 한다.  그는 세상의 어떤 부분을 바꾸고 싶은 것일까. 

“예전에는 내가 빵집을 해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맛있는 빵을 만들어주는 꿈을 가질 수 있었어요. 지금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빵집에 종업원으로 들어가죠.”

그는 무엇보다 자본권력이 만드는 사회논리가 소비를 부추기고 개인의 자유를 앗아가는 현실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이 꿈꿀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자유는 박탈된다. 박 화백은 장도리를 통해 ‘개인이 좀 더 자유로워질 방법은 뭔가’를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강조하는 대안 중 하나는 소비의 변화다. 박 화백은 2010년 6월 10일자 만평에서 스마트폰이 소통의 도구로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이면에 스마트폰 생산과정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있음을 드러냈다. 

▲ 박 화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소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변화는 결국 소비의 변화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소비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게 많이 모이면 큰 변화를 이뤄낼 수가 있는 거죠.”

대중매체가 사람들의 기호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상업광고가 가리키는 대상에 무비판적으로 관심을 쏟는 이들이 많아졌다. 박 화백은 소비자들이 매 순간 ‘내가 왜 (저것에) 관심을 갖는가’를 고민하면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소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기업의 매출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사회변화까지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단 네 컷 위해 온종일 뉴스 모니터링

“만화의 시작은 네 컷이라고 생각해요. 기승전결을 짧게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게 네 컷이죠.”

네 컷 만화는 얼핏 보면 간단한 작업 같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제한된 공간이 주는 어려움이 크다고 박 화백은 말했다. 짧은 분량은 독자들에게 효율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재미가 없어질 확률이 높다고 한다. 네 컷을 실제 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하지만 내용을 구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잠깐 일 수도 있고 하루 종일일 수도 있다고 박 화백은 말했다. 그는 그날의 주제선정을 위해 편집회의에 참석하거나 기자들과 의견교환을 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 박 화백이 네 컷 만화에 담긴 기승전결을 몸으로 직접 표현하고 있다. ⓒ 남건우

“신문사에서 정하는 1면의 내용이, 톱기사가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거든요. 그건 신문사의 판단이고, 뭐가 중요하냐의 판단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마감시간인 오후 8시까지 쏟아지는 뉴스 중 핵심적인 내용을 그리기 위해 그는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뉴스 모니터링에 할애한다. 독자들의 의견과 생각을 반영하기 위해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의 인기 게시물도 살펴본다. 자주 가는 스포츠 커뮤니티인 엠엘비파크(MLBPARK)에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새해인사 게시물을 올렸다. 

“지금 당장 화제가 되는 이슈도 좋지만 모두의 삶에 영향을 주는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 고민한다”는 박 화백은 지금까지 작품 중 대표작의 하나로 2008년 3월 15일자 만평을 꼽았다. 한국 학생이 밤낮 없이 공부를 하니 외국 기자가 ‘도대체 잠은 언제 자느냐’고 묻는다. 만화는 ‘졸업하면’이라는 설명 아래 실업자가 되어 잠자고 있는 청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나치게 경쟁적인 교육과 심화하는 청년실업의 개탄스러운 현실을 함께 조명한 것이다. 

▲ 박 화백은 최고의 장도리 일화 중 하나로 이 작품을 꼽았다. ⓒ <경향신문>

신문 영향력 줄어도 SNS 등으로 만평 독자 증가

“꼭 신문에 실리는 만화가 아니더라도 시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 시사만화예요. 시사만화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예전보다 늘어났어요.”

신문만화의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종이신문의 수요가 줄어서일 뿐, 시사만화자체의 폭은 오히려 넓어졌다고 박 화백은 말했다. 표현의 자유가 어느 정도 확보된 지금,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다양한 형태의 만화가 인터넷을 통해 활발하게 보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 화백의 만평도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으며 독자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엠엘비파크의 경우 자유게시판 격인 ‘불펜’에 매일 장도리가 게시되며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장도리에는 유난히 ‘탈’을 소재로 한 일화가 많았다. 2012년 11월 16일자에서 그는 종교의 탈, 정의의 탈, 첨단의 탈을 등장시키며 각각 탈 뒤에 숨겨진 욕망을 표현했다. 권력이 진실을 은폐하고 거기에 탈을 씌우고 있는 한국사회를 꼬집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진실을 밝히는 게 언론의 역할인데, 오히려 언론이 진실을 감추고 탈을 만드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고 박 화백은 안타까워했다. 장도리는 때때로 권력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데, 아직까지 내·외부의 압력에 시달린 일은 없다고 한다. 

▲ 박 화백은 청년이 꿈을 꾸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 <경향신문>

지난 4일자 장도리는 다시 한 번 청춘의 우울한 현실을 다뤘다. 경제적 이익이 인간의 존엄성과 안전이라는 가치를 압도하면서 젊은이들이 꿈을 좇기 어려워진 우리 사회를, 땅이 꺼져 생긴 ‘싱크홀’에 비유했다. 2008년에도, 2014년에도 이 땅의 청년은 행복과 거리가 먼 모습이다. 현실이 SF보다 더 기가 막히니 시사만화를 그리지 않을 수 없다는 박 화백이 어린 시절 꿈꾸던 SF만화를 그리게 되는 날 역시 쉽게 올 것 같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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