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절반 세금… 영국 고소득층 증세, MB정부는 '부자 감세' 고수
[제정임칼럼]

"우리들이 일자리를 위협받으며 어느 때보다 허리띠를 더 조여야 하는 이 때, 부끄러움을 모르는 축구선수 웨인 루니는 5000만 파운드(약 900억 원)짜리 보수 계약을 따냈다."

▲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영국 신문 데일리메일이 지난달 23일자 1면 머리로 올린 '탐욕의 승리(A victory for greed)'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이다. 영국 정부가 재정위기 타개책으로 공무원 대량 감원 등 긴축계획을 내놓은 와중에 루니가 5년간 매주 20만 파운드(약 3억6000만 원)씩을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부터 받게 된 것을 비난했다. 아내 몰래 외도하다 발각되고,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비난공방을 벌이는 등 스캔들 범벅인 '말썽꾼'에게 이런 '돈벼락'은 더욱 가당찮다는 논조였다. 독자들도 1000여 명이나 온라인으로 몰려와 분노의 댓글을 남겼다. "축구선수들은 탐욕스러운 은행가와 동급이다" "쪼들리면서도 루니의 방탕에 뒷돈을 대주는 축구팬들, 제발 정신 차려라." 그런데 짧은 댓글 하나가 '폭발 직전의 증기'를 살살 빼내고 있었다. "그래도 그중 50%는 세금으로 나간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영국은 올해부터 연봉 15만 파운드(약 2억7000만 원) 이상 최고소득계층의 소득세율을 종전 40%에서 50%로 올렸다. 경제위기로 재정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으니 능력 있는 계층으로부터 더 걷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루니가 받는 연봉의 절반은 국고로 들어가 저소득층의 복지재원 등으로 쓰일 것이다. 축구선수의 한 주 수입이 대다수 월급쟁이의 연봉보다 많은 '미친' 소득구조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재분배 기능이 작동하기에 영국인들은 흥분을 가라앉혔는지도 모른다. 루니의 엄청난 소득은 재능과 노력의 결과이긴 하지만 영국이 아닌 아프리카라면 꿈도 꿀 수 없었을 거라는 점,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을수록 많이 갚아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나라당이 며칠 전 '부자 감세 철회'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정두언 최고위원 등 일부 의원들이 2012년으로 예정된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안을 철회하자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소득세 최고세율을 35%에서 33%로, 법인세 높은 세율을 22%에서 20%로 낮추는 계획을 강행할 경우 '부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공격을 당해낼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영국 미국 등은 고소득층의 세 부담을 올리는데 우리는 더 깎아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하는 야당에 동조한 셈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도부가 청와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은 후 이 얘기는 '없었던 일'이 돼간다고 한다. 청와대의 감세론자들은 부유층과 대기업의 세부담을 줄이면 투자와 소비가 늘어 저소득층도 혜택을 입는다는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를 내세워 'MB노믹스'의 핵심인 '감세'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종합부동산세를 유명무실화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이후 5년간 90조 원이 넘는 세수를 감소시켰다. 그런데 나라 빚이 눈덩이처럼 늘고 급증하는 복지수요를 감당할 재원 마련이 막막한 상황에서 또 추가 감세를 추진하는 것이다. 문제는 감세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그동안의 대대적 감세가 이렇다 할 투자 증가와 일자리 창출 효과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가 최근 펴낸 책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서 강조한 것처럼 감세로 인한 낙수효과는 지금까지 어느 나라에서도 실제로 입증된 적이 없다는 게 여러 실증분석의 결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만수 청와대 경제특보는 "감세정책은 IMF가 권고할 뿐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실증된 사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장하준, 폴 크루그먼, 진 스펄링 등의 저서를 보면 실증결과가 반대로 나왔다는 것을, IMF가 아시아위기·서브프라임위기와 관련해 낸 반성문을 보면 그들의 정책 권고 중 엉터리가 많았다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는데 답답한 일이다.

신자유주의의 발상지인 영국과 미국이 '이 길이 아닌가벼~'하고 방향을 틀었는데도 우리 정부는 '부자 감세'의 교리를 붙들고 있고 그중 가장 목청 센 이가 1997년 국가부도 위기 당시 주무부처 차관이었다는 사실이 참 불길하고 착잡하다. '부자 감세'가 아니라 오히려 '부자 증세'를 해야 탄탄하고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역사가 보여주고 있는데 말이다.

 


이 칼럼은 11월 2일자 국제신문 <시론>으로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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