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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소위 시절 집단폭행을 당한 사연
[이봉수의 미디어 속 이야기]
2014년 08월 28일 (목) 23:35:56 이봉수 hibongsoo@hotmail.com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창피한 고백이지만 1980년 서해 백령도에 이어 백아도 레이더기지에 부장(부기지장)으로 부임했을 때 부사관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 이른바 ‘신임 소위 군기잡기’였다. 해군은 ‘기술군’이어서 부사관이 많은데, 특히 섬에 있는 작은 부대에는 장교가 적어 하극상을 당하는 일이 잦았다. 장교는 대위인 기지장과 나밖에 없었는데 회식이 있어 만취한 밤에 기지장이 귀가한 뒤 당한 봉변이었다.

밤이 되면 중사·하사들이 장교 몰래 수병들을 집합시켜놓고 구타한다는 사실을 알고 질책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고깝게 여긴 것이다. 너무나 심한 집단폭행으로 중상을 입고 기절한 뒤 수병들에 의해 사관실로 옮겨졌지만 의식이 조금 살아나자 불같은 성격에 내 권총부터 찾았다. 그러나 부사관들은 치밀하게 총과 무기고 열쇠까지 빼돌려 놓았다. 만약 총이 있었더라면 대량살상극이 벌어졌을 공산이 컸고 나는 아마 사형에 처해졌으리라. 군부대 폭력이나 총기 난사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내 일처럼 섬뜩해지는 이유다.

문제는 사고 후 처리과정이었다. 해사 출신인 기지장은 거칠 것 없는 단기 장교가 사령부에 보고할까 봐 전전긍긍했다. 레이더기지장은 섬에서 살림을 할 수 없고 영내에 거주하게 돼있는데 기지를 비운 것부터 징계감이었다. 직업군인인 부사관들도 상관폭행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되면 중형이 내려질 사건이었다. 결국 많은 사람들 밥줄을 빼앗을 수는 없었고 가혹한 훈련으로 군기만 다잡은 뒤 사건이 유야무야됐다. 얻은 것이라곤 약점이 잡힌 부사관들을 통솔하는 데 도움이 된 정도였다.

이 사례는 왜 아직도 군대 폭력과 총기 사고가 빈발하고 그것이 은폐되는지를 다 보여준다. 27일 보도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 추진과제를 보면 87년 이후로도 9번이나 추진됐던 병영문화혁신이 왜 아직도 겉도는지 알 수 있다. 핵심 과제를 군이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군 개혁은 군에 ‘문민 요소’를 획기적으로 도입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군은 특수한 조직이고 그 특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쿠데타 정권이 여러 번 들어선 이래 군의 특수성이 너무 강조돼 각종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민·관·군’이 당시에는 ‘군·관·민’으로 불리며 국민이 말석으로 밀렸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군에 문민 요소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방장관부터 민간인 출신으로 임명해야 한다. 무슨 뚱딴지 같은 주장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미국이 왜 ‘국방장관은 과거 10년간 병역에 있지 않았던 사람으로 임용한다’는 현역 출신 배제 규정까지 두고 있는지 음미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문민 우위의 전통이 확고한 나라로 군의 정치개입 차단을 국방장관 임명에서도 고려한다. 국방장관은 군부의 대변자라기보다 대통령을 보좌해 군을 통제하는 사람이다. 군 출신이 맡아서는 거의 불가능한 임무다. 

우리는 어떤가? 대통령이 우선 군 출신이어서 군을 정치에 이용하거나 사실상 병역기피자여서 통수권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았다. 정상적으로 군에 입대해 제대한 대통령이 한 사람밖에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장성 출신 3인은 군대를 이끌고 탈영한 이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병역의무가 없었지만 집권 뒤 국방장관 말고도 육군대장 3인을 국정원장·안보실장·경호실장에 임명할 정도로 군 출신을 선호한다. 국방은 물론이고 통일과 외교 업무까지 관할하는 국가안보실장에 매파 군 출신 김장수와 김관진을 차례로 앉힌 것은 통일과 외교를 대하는 박 대통령의 시각을 엿보게 한다. 통일과 외교가 국방에 종속되는 체제이고 ‘문민 통제’가 아니라 군이 민을 통제하는 구조이다. 국방부가 툭하면 불필요한 대북 막말로 통일과 외교정책에 찬물을 끼얹으니 남북 대화가 트일 겨를이 없다.

외교력과 군사력을 적절히 구사해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 총리 겸 전쟁장관 클레망소는 “전쟁은 너무나 중요해 장군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했다. 문민 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인데 현 집권세력은 거꾸로 가고 있다. 국군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 등이 대통령 선거 때 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편 것도 정치적 중립에 대한 개념 자체가 서있지 않기 때문이다.

임 병장 총기난사와 윤 일병 구타 사건으로 병영문화혁신의 일대 기회를 맞았지만 언론도 이런 근본대책을 제시한 데는 없었다. 이번에 ‘장기과제’로 돌려진 군 사법제도 개편에도 ‘문민 요소’가 대거 도입돼야 한다. 군에서 ‘장기과제’란 용어는 ‘하지 않겠다’는 말을 돌려 하는 것이다. 육군 법무실장이 말한 대로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거다.

 

   
▲ 일러스트 | 경향신문 김상민 기자

▲ “군대 폭력과 총기 사고가 은폐되는 이유는
 군의 특수성만 강조한 때문
“전쟁은 너무나 중요해 장군들에게 맡길 수 없다”

▲ ‘문민 통제’를 위해 국방장관에 민간인 임명
 군 수사·재판권도 넘겨야
 보수신문 치고 나온 모병제, 진보신문은 왜 방관하나

 
군 사법제도 개편은 평시의 수사권과 재판 관할을 민간으로 넘기는 게 포함되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 사고에 책임을 져야 할 사단장과 군단장이 수사와 재판을 ‘지휘’하는 것은 수령방백이 행정은 물론 사법권까지 휘두르던 왕조시대 사법체계와 다를 바 없다. 1·2차 세계대전에서 맞붙은 프랑스나 독일 같은 선진국은 평시에는 군사법원을 두지 않고 민간 검찰과 법원이 수사권과 재판권을 갖는다. 영국처럼 1심만 군사법원에서 담당하는 나라도 많다.

진급에 목을 매는 각급 지휘관들이 쉬쉬하며 폭행 사건 등을 덮어버리거나 축소하는 사례가 워낙 많다. 그나마 사건이 불거져 형사처벌을 받은 가해자는 지난해 558명이지만 실형 선고자는 13명뿐이다. 죽은 이는 말이 없으니 자살자로 처리된 사례도 많았을 터인데 군 수사기관에 재조사를 맡긴들 진상규명이 될까?

지휘관은 폭력행위를 적발한 경우 문책이 아니라 포상해야 한다. 그러나 은폐했을 때는 징계뿐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해야 폭력을 줄일 수 있다. 군은 ‘은폐’를 전투교리로 배우는 조직이다. 인권침해와 폭행 사건 등이 외부로 알려지면 내부고발자 색출부터 시작한다. 군 사법체계를 바꾸고 은폐를 강력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일사불란한 은폐 시도는 반복될 것이다. 제대 후에 고소·고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한 방편이다.

중앙·조선일보 등 보수신문이 모병제를 들고나온 데 대해 진보신문이 침묵하는 건 무슨 영문인가? 심지어 진보논객 중에도 모병제를 지지하는 이들이 꽤 있다. 물론 모병제는 징병제에 따른 인권침해를 줄이고 일자리 창출에 ‘프로 전사’를 확보하는 등 이점도 많다.

그러나 그런 이점 뒤에 숨어있는 기득권층의 이해 관철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기득권층은 툭하면 특혜를 제도화하려 한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평등의 관점에서 한국사회를 하나로 묶는 끈이 사라진다는 거다. 우리만큼 기득권층의 병역기피가 심한 나라도 드물지만, 그래도 병역의무 덕분에 기득권층 자제 상당수가 같은 또래들과 함께 먹고 자고 훈련하는 체험을 하는 것은 보통 소중한 경험이 아니다.

미국을 예로 들면 프린스턴대 출신들은 징병제였던 1956년에 750명 중 450명이 입대했으나 모병제인 2006년에는 1108명 중 단 9명만 입대했다. 병역이 결국 가난하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계층 자녀들만의 ‘의무’가 되고 그들만이 전장에서 죽어가는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자발적 지원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가난한 청년들에게 대안이 없으니 ‘굶어 죽으나 총 맞아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입대한다. 미군의 학력저하 현상은 심각해 세계 도처의 주둔지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유일하게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 찰스 랭글 미 하원의원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부상까지 입었는데 징병제 부활을 주장해왔다. 그는 “정책입안자 자녀들이 참전 부담을 나눠 져야 했다면 이라크전이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의 전쟁들은 대개 왕이나 부시 정부 최고위 정책결정자들처럼 병역기피자들이 일으킨다. 마이클 샌델이 말한 것처럼 같이 나눠야 할 희생을 면제해주면 정치적 책임의식이 약해진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 ‘공공서비스가 시민의 최고 관심사에서 멀어지는 순간, 그것을 사람이 아닌 돈으로 해결하려는 순간, 국가의 몰락이 가까워온다’고 썼다.

징병제의 문제점을 보완할 방안은 많다. 우선 징집되는 이들에게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복무연한을 줄이고 휴가일수를 대폭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병력은 전시에 대비한 것이기에 평화 시에는 그렇게 많은 병력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이스라엘처럼 훈련을 제대로 시킨 예비병력을 확보해두면 전력 손실도 크지 않다. 레이더기지에 근무할 때도 휴가를 많이 보냈더니 대원들 사기가 치솟았다.

모병제의 장점을 일부 도입하는 방안도 있다. 우선 부사관 처우를 개선하고 수를 늘리는 거다. 미국처럼 병장 중에서 부사관을 뽑을 수도 있다. 우리 군의 대학 재학 이상 학력은 사병이 51%인데 부사관은 4%밖에 안 된다. 이래서는 사병들이 믿고 따르는 부사관이 되기 힘들다. 부사관 중에서 장교를 발탁하는 통로도 대폭 넓혀야 한다. 우리는 장교와 부사관·사병이 원래 씨가 다른 것처럼 벽을 높이 쌓는데 귀족들이 장교로 입대하던 시절의 유습이다. 예전에도 세계 최강 칭기즈칸 부대는 사병이 전공을 많이 쌓으면 장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기득권층의 병역기피 풍조는 의무를 다하는 이들의 자부심을 손상하는 결정적 요인이다. 우리는 힘있는 신분일수록 병역 기피율이 높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만 하더라도 무슨 편법을 쓴 건지 대학 재학 중에 집과 동사무소를 오가는 방위로 병역을 때웠다. 그는 국방장관을 불러놓고 “젊은 청년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려 군에 갔다가 천인공노할 일을 당했는데, 내가 치가 떨려서 말이 안 나온다”고 책상을 치며 분노했다. 호통 한 방으로 그의 인기가 급상승한 걸 보면 역시 군에 가는 사람만 바보인가? 한국 남자는 병역 의무가 있고 한국 언론은 그들의 생명과 자부심을 지켜줄 의무가 있다.


* 이 기사는 <경향신문>과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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