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줄임말’

▲ 김효경

“오늘 약속 안 잊었지? 학교 앞 버정에서 보자.” 막 잠에서 깨어나 확인한 문자메시지는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주위사람에게 ‘말귀 좀 알아들어’라는 타박을 받아왔던 나는 의기소침한 마음에 ‘무슨 말이야’라는 질문을 차마 보내지 못했다.

씻고 화장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계속 생각했다. 단 두 글자 ‘버정’. 약속이 오늘인 것도 알겠고, 잊지 말라는 것도 알아 들었다. 그런데 중요한 약속 장소 해독이 어려웠다. ‘학교 앞’이라는 수식어에 의존해 몇몇 장소를 떠올려 봤지만 도무지 왜 그곳이 ‘버정’으로 불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약속시간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친구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였다. 학교 앞에 나를 내려준 버스는 ‘자, 이제 약속장소를 찾아보렴’이라는 듯이 제 갈 길을 떠났다. 길가에 수없이 많은 간판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약속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도무지 찾을 길이 없어 타박깨나 들을 각오로 친구에게 전화했다. “나 지금 버스정류장인데, 어디로……”

친구가 말을 끊으며 말했다. “어딘 어디야, 바로 여기지. 너 보인다.” 만나자고 한 장소는 ‘버스정류장’이었다. 다섯 글자를 둘로 줄여 ‘버정’. 도대체 누가 만들어 내고, 누가 쓰는 건지, 이건 ‘언어의 사회성’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한 게 아닌가! 문자메시지의 제한된 분량과 속도를 위해 의미 전달이 희생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여태 들은 줄임말 중 가장 헛웃음이 났던 말은 ‘문상’이다. ‘문상’은 기성세대에게 ‘초상집 방문’을 뜻하지만, 젊은 층에게는 ‘문화 상품권’으로도 쓰인다. 문자메시지 시대에 줄임말은 이제 내가 쓰기 편하게 말을 줄여 쓰면 알아들을 책임은 상대방에게 있다는 식으로 남발된다. 소통의 수단인 언어가 스스로 소통의 장벽이 된 것이다. 불통의 시대에는 언어마저 병들 수밖에 없는 걸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4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장원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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