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국내 언론인 최초 공인노무사, 경향 강진구 기자

‘강진구 노동전문기자(공인노무사)’. <경향신문> 강진구(47) 기자의 기사에는 이런 바이라인(필자표시)이 달린다. 강 기자는 지난 2012년 10월 시험에 합격, 국내 언론사 기자 중 최초로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가진 노동담당기자가 됐다. 이후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 ‘간접고용의 눈물’, ‘헌법에만 있는 노동3권’ 등 열악한 노동현실에 대한 심층기획물을 잇달아 내놓아 뜨거운 독자 반응과 함께 각종 언론상을 받았다.

▲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 시리즈는 노동의 관점에서 500대 기업을 바라봤다. ⓒ 경향신문 홈페이지 검색화면 갈무리

강 기자가 노동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1년 회사 노조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경향신문>에 입사한 강 기자는 사회부 법조출입기자 시절 성수대교붕괴(1994), 삼풍백화점붕괴(1995),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5.18 내란죄 구속(1996) 등 굵직한 사건 수사를 취재했고 경제부, 국제부, 미디어팀 등에서도 일했다. 그러다 공채기자들이 기수별로 내려가며 노조위원장을 맡는 관행에 따라 일단 책임을 떠안았는데, 노동관련 법과 관행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엄청난 벽에 부닥쳤다고 한다. 취임 두 달 만에 단체교섭을 시작했는데 평균임금, 통상임금의 개념도 잘 몰랐으니 조합원들의 궁금증에 답하기 어려웠다. 또 시간외수당을 부장급 이상에게 지급하지 않는 이유 등에 대해 회사 측이 그냥 ‘관행’이라고 답해도 반박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

'준비 안 된' 노조위원장 경험이 각성의 계기  

부랴부랴 공부를 해가면서 단체교섭에 집중했다. 당시 부장급 이상의 관리자들은 노조 가입 대상에서 제외됐고, 휴일․연장 근로수당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강 기자는 교섭을 통해 ‘사용자를 대리하는 관리자’의 범위를 축소시켰다. 그 결과 일부 보직 부장을 제외한 부장급 간부들도 조합원 활동을 할 수 있게 됐고 그들에게 휴일․연장 근로수당을 50% 지급할 수 있게 됐다.  

▲ 국내 언론사 기자로서는 최초로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획득한 강진구 노동담당기자. ⓒ 김다솜
“조합원 내부에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를 조율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노조위원장으로 일했던 2년을 돌아보면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노조 대표면서도 경영상 어려움을 무시할 수 없었고, 양쪽의 입장을 조율하다 보면 공교롭게 양쪽 모두로부터 볼멘소리를 듣기도 하고…. 늘 외줄 타는 기분이었죠.”

그는 어렵게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노동법 공부를 많이 했고 자신의 진로와 관련한 결정적 전환점도 맞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노동전문주간지 <노동과 세계>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자인데도 노동섹션이 없다는 건 언론이 노동에 관심이 없다는 의미’라는 내용의 글을 읽고 노동전문기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그는 노동담당기자로서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무사자격증에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회사 내외에서는 그의 이런 결심에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입사 20년이 넘었고, 이제는 현장취재보다 데스크(관리자)로서 자리를 잡는 것이 자연스런 시점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나이 들어가면서 ‘앉은뱅이’가 되기보다 현장에서 뛸 수 있는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노동섹션 만들어 지속적 인식 개선 이뤘으면

“뭐 잘 아시겠지만….”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가진 강 기자가 취재에 나서면 상대방은 이런 얘기로 말문을 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전에는 전문가인 취재원이 가진 정보와 지식이 기자보다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출입처에서 만들어낸 ‘프레임(틀)’에 갇히거나 속임을 당할 것 같은 불안감과 심리적 위축감이 있었다. 그러나 노무사 자격증을 갖춘 후에는 상대도 기자를 인정하고, 스스로도 불안감이나 위축감을 별로 느끼지 않게 됐다고 한다.

▲ 노무사 연수과정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고용노동부장관상을 수상한 뒤 환하게 웃는 강진구 기자. ⓒ 강진구

강 기자는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현장을 누볐다. 그가 다섯명의 현직노무사와 함께 쓴 ‘간접고용의 눈물: 노무사들과 함께하는 현장보고서’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014년 1월)을 받았다. 기업들이 용역업체 등을 통해 간접 고용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고발한 기획시리즈였다. 노동의 관점에서 국내 500대 기업의 순위를 매긴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은 45회 한국기자상 기획보도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그래도 강 기자에게는 여전히 갈증이 있다. 우선은 신문에 노동섹션(특집면)을 만들고 싶다. 대부분의 일간지들이 일주일 단위로 금융, 여행, 건강 등 다양한 섹션을 내는데 국민 대다수가 당사자인 노동문제를 지속적이고 심층적으로 다루는 고정면이 없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내 언론은 노동 기사를 사회뉴스의 일부로, 파업 등 사건이 났을 때만 크게 보도하는 경향이 짙다.

“아직도 노동문제는 평상시에 다루기보다 사건이 있어야 보도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노동자 스스로가 기본적인 권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런 섹션을 만들고 싶어요.”

강 기자가 이런 제안을 했고 회사도 관심을 갖고 있지만 노동섹션이 탄생하기까지 시간은 좀 더 걸릴 전망이라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드는 노동섹션에 어떤 콘텐츠를 얼마나 충실하게 채울 수 있을 것인지, 강 기자 스스로도 많은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 노사갈등 본질 짚도록 분발해야

그는 이렇게 노동섹션까지 만들지는 않더라도 국내의 다수 언론사, 특히 이른바 보수 언론사들이 노동에 대한 접근방식을 달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보였다. 지난해 12월 철도 파업 사태에서 보듯, 일부 언론은 노조의 파업에 대해 단순한 사실관계 보도에 그치거나 불법성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사안의 본질을 왜곡한 경우가 많았다. 갈등이 왜 시작되었으며 어떤 쟁점에서 어떤 주장들이 대립하고 있는지 알려주어야 공론이 형성될 수 있는데, 철도처럼 사회적 영향이 큰 사안에서조차 독자들이 최소한의 정보도 갖기 어려울 만큼 외면한 언론이 많았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몇몇 매체에 노동전문기자, 일자리전문기자, 고용노동선임기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노동을 전담하는 기자들이 있긴 하다. 강 기자는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기업이 살아야 근로자도 산다’는 패러다임을 갖고 노동문제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에 편향된 태도로 노동문제에 접근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불균형한 보도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 노무사 동기들과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왼쪽에서 세번째)와 함께 찍은 사진. 왼쪽에서 다섯번째가 강진구 기자다. ⓒ 강진구

그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야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는 사회로 볼 수 있다는 관점에서, 더 치열하게 노동현장을 누비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노조원에게 파업의 금전적 책임을 지운 쌍용차 손배소나 직업병 의심 사망자를 인정하지 않는 삼성백혈병 사건 등은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노동전문기자로서 꼭 ‘성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동문제를 파업 위주의 사건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라 노동자의 기본권 그리고 인권의 문제로 독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노동전문기자로 성공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제 기사를 통해 노동 문제가 해결되는 게 가장 좋겠죠. 하지만 그 전에 ‘노동을 가지고도 전문기자로 활동할 수 있네’, ‘노동도 저렇게 전문적이어야 기사를 쓸 수 있네’라는 인식을 언론사들이 갖게 하는 것이 성과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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