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TV] 세월호100일 밀착다큐 '2반의 빠삐용들' 3부

도보행진 이튿 날(지난 7월 24일).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습니다. 서울 가는 길이 순탄치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유족은 힘을 내야만 합니다. 아이들에게 닿는 백 리 길의 마지막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전 8시. 아침부터 소정이 아빠는 허리에 파스를 붙입니다.

<INT>
허리 많이 편찮으세요?”
소정이 아빠 “좀 뻑뻑하네요.”

“오늘 걷는 거 괜찮으시겠어요?”
소정이 아빠 “발바닥에 물집 생겨 따끔따끔한데… 일단 밀어 붙여야지.” 

끝없이 이어지는 박수를 받으며 힘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표지판은 서울에 가까워졌음을 알려줍니다.

작업복입은 노동자, 교복입은 학생과 어머니, 점심시간을 쪼개 나온 회사원

첫 날 보다 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나왔습니다.

<INT>
“이렇게 지나가다가 시민들이 응원해주는 거 보면 어떤 생각이드세요?”
서우 엄마 “너무 뿌듯하고 고맙고 국민들이 같이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하죠.”

시민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대열의 끝이 보이지 않게 됐습니다.

결코 유가족만의 외로운 여정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해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습니다.

유가족의 발걸음은 어느덧 서울 시가지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하영이 엄마는 새로운 습관이 생겼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딸아이가 생전에 흔적을 남겼던 페이스북을 보는 겁니다.

<INT>
“어머니 뭘 그렇게 보시는거예요?”
하영이 엄마 “애들 페이스북.”

“시간날 때마다 자주 아이들 페이스북 보고..”
하영이 엄마
“하영이는 매일 봐요. 하루에도 몇 번씩 봐요. 보는 데 제가 페이스북 친구가 안 돼있어서 글은 못 쓰고 그냥 올라오는 글만 보고… 사진들만 보고…”

“참사 이후에 박근혜 대통령이 눈물 흘리는 거 보셨죠? 그때는 어떻게 (특별법이) 이루어 질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혜선이 엄마 “초창기 때만 해도 믿었죠. 알아서 해주리라고. 우리가 이러리라고는 생각 못했죠. 우리가 이렇게 까지 해야하냐고요. 자식 잃은 것도 추스르기 힘든 상황인데. 우리가 이 짓까지 해야하냐고요.”

 임용현 (35·서울 영등포구) “이 문제를 올바로 풀기 위해서는 유가족이 참여해야 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그리고 충분한 수사기간이 보장되는 특별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에서 광화문까지  3보 1배하는 시민들. 온 몸이 땀범벅입니다.

희생자 가족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INT>
“어머니, 저렇게 3보1배하는 분들 보니까 어떠세요?”
지나 엄마 “가슴이 뭉클해요.”

“가슴 뭉클하세요? 땀 뻘뻘 흘리면서 하시더라고요.”
지나 엄마 “내 새끼들처럼 생각해주는 거잖아요. 우리는 걷기라도 하지. 저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힘들잖아요. 자기 일 아닌데도…”

서울역에는 수많은 인파가 유가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루 빨리 돌아오라는 뜻의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

유족들에게 이들은 큰 위로가 됩니다.

<INT>
서우 아빠 “가슴 뭉클합니다, 아주.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데 다들 동참이신 거죠.”

어느새 저녁 어스름이 깔렸습니다.

묵묵히 걸었던 지난 이틀 간의 기억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틀 간의 도보행진, 아이들을 위한 백 리의 발걸음은 드디어 서울 시청광장에 닿았습니다.

<3부 끝>

(촬영: 박동국 박진우 계희수, 편집: 박동국)


지난 7월 23일부터 24일까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안산합동분향소에서 서울까지 50km 정도 도보행진을 했습니다. 그 여정을 따라간 세월호참사100일 가족다큐멘터리 '2반의 빠삐용들'을 총 4부에 걸쳐서 보여줄 예정입니다. (기자 말)

세월호참사100일 가족다큐멘터리 '2반의 빠삐용들' 출판 차례

1부.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그곳까지<끝>

2부. 티셔츠에 적힌 이름

3부. 아이들에게 닿은 백 리 길 걸음

4부. 팽목항에 남은 마지막 빠삐용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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