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청춘 ‘민달팽이족’ ② 아직은 너무 부족한 정부지원

“대학가에 전세주택은 거의 없어요. 계약조건에 맞는 집을 구하기 힘들고 학교에서 떨어진 곳에 사는 건 감수해야 해요.”

서울 동작구의 한 사립대 경영학과 4학년인 이세희(25·여·가명)씨는 정부의 대학생임대주택 지원 제도의 혜택을 보고 있지만 아쉬움이 많다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 출신인 이씨는 대학 입학 후 줄곧 기숙사생활을 했지만 휴학으로 기숙사에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면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대학생임대주택을 신청했다. 운 좋게 지원대상자로 선정돼 2011년 9월 서울 흑석동의 4층짜리 다가구 연립주택 9평(약 30㎡) 크기 방을 2년 전세로 계약했다. 7000만원의 전세금보증금은 LH에서 대신 내줬고, 이씨는 LH측에 보증금 100만원을 일시불로, 나머지 6900만원에 대한 연 2% 이자를 매달 약 12만원씩 내게 됐다. 그런데 막상 입주해보니 30년 넘은 낡은 건물이라 난방 등 생활에 불편한 점이 많았고 주변 환경도 좋지 않았다. 대학가 주변의 원룸과는 달리 기본적인 가전제품이 갖춰져 있지 않아 개인적으로 구입해야 하는 것도 예상외의 부담이었다.  

조건 맞는 집 찾아 1시간 넘는 등교 거리 감수   

이씨는 LH측에 주거환경이 좋지 않다는 사정을 설명하고 새로운 전셋집을 찾았다. 하지만 학교 가까운 곳에서는 ‘주택의 부채비율이 90% 이하이면서 전용면적 60㎡ 이하’라는 조건에 맞는 집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씨는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관악구 신림동에서 전세방을 찾아 2012년 12월 이사했다. 이 제도를 이용하는 대학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cafe.naver.com/lhuniv9)에도 ‘조건에 맞는 주택을 구하기 어렵다’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정부는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열악한 공간에서 살고 있는 청년이 20~34세 인구 중 약 15%(139만명)나 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공급물량이나 조건 등에서 이처럼 미흡한 점이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최저주거기준 및 주거빈곤 청년 현황. ⓒ 조용훈

'LH 대학생전세임대주택 지원제도'는 2011년 도입된 후 2013년까지 총 1만4169호가 공급됐고 올해 3000가구가 추가 공급될 예정이다. 입주대상자로 선정된 학생이 스스로 거주할 주택을 찾으면 LH에서 주인과 전세계약을 한 후 재임대하는 방식이다. 지원자격은 모집공고일 현재 사업지역 내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정, 아동복지시설 퇴소자, 월평균가구소득 50%이하 가정 등 경제상황을 감안해 선정한다. 2014년 상반기 평균 경쟁률은 4.5대 1이었다.  

“올해는 기존 입주자 재계약 1건만 진행했습니다. 물량이 전혀 확보되지 않아서 아예 포기한 상태입니다.”

서울 능동로 건국대학교 부근에서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는 현재혁 대표는 LH 지원대상자로 선정된 학생들과 함께 전셋집을 찾아봤지만 구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현 대표는 “(대학 주변에서)어렵게 주택을 구해도 (부채비율 등)자격요건을 통과하는 주택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맞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원대상자로 선정이 되고도 개강 전까지 계약 가능한 집을 찾지 못해 입주를 포기하는 경우가 매년 10~20%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한 대학생이 부동산중개소 유리창에 붙은 주택 가격표를 살펴보고 있다. ⓒ 조용훈

'LH 대학생임대주택'은 매년 2월 초에 대상자 선정을 시작하기 때문에 3월 개강 전까지 주택물색과 승인절차, 계약과 입주를 완료하기가 시간적으로 너무 빠듯하다는 문제도 있다. 일반적인 부동산계약보다 작성 서류가 많고 심사과정도 길어 부동산중개업자들이 꺼리는 경향도 있다고 현 대표는 털어 놓았다. 

2년 전 서울 월계동 근처에서 LH지원 대상 전셋집을 찾았던 대학생 김선명(22·가명)씨는 집주인으로부터 이면계약서를 요구받았다고 말했다. 주택이 아닌 근린생활시설을 주거용으로 개조한 경우 서류심사과정에서 부적합판정을 받기 때문에 건물주가 소유한 다른 적합 주택으로 계약서를 쓰고 실제 생활은 부적합건물에서 하는 것이다. 개강을 앞두고 집을 구하지 못한 학생의 경우 어쩔 수 없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이런 계약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 움직일 공간도 없는 대학가 (일반)원룸의 좁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남학생. ⓒ 조용훈

희망하우징 일부 관리부실, 행복주택은 사업 진행 난항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희망하우징은 서울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을 대상으로 보증금 100만원, 월 8~10만원에 주택을 임대한다. 청년주거협동조합 민달팽이유니온(대표 권지웅)이 조사한 서울 40개 대학가 주변 평균주거비(관리비 등 주거유지비 제외)가 월 41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싼 셈이다. 희망하우징은 일반주택과 다가구주택 재건축 등을 통해 지금까지 총 836실이 공급됐다. 

그러나 주거난을 겪는 대학생 수에 비해 공급물량이 워낙 제한돼 있고, 그나마 여러 학생이 함께 생활하는 주택에 대한 부실 관리로 계약해지 건수도 늘어나고 있다. 2010년 사업 시행 첫해의 계약해지 건수는 9건이었으나  2013년에는 180건 이상으로 늘어나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전문업체에 주택관리를 위탁한 정릉동 희망하우징 외에 나머지 일반주택은 명목상 에스에이치(SH)공사가 직접 관리하지만 사실상 관리주체가 없이 방치되고 있다고 입주자들은 말하고 있다.

▲ 서울 정릉동에 있는 희망하우징. 2012년 완공해 현재 원룸 54실을 공급하고 있다. ⓒ 조용훈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행복주택’ 건설 계획을 통해 2017년까지 총 14만호의 소형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공급물량의 80%는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대학생 등에게 우선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서울 목동 등 일부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사업지구가 축소 조정되는 등 난항을 겪고 있어 청년 주거난이 정부 공언대로 개선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상황이다. 


주거 문제는 대한민국 서민 모두의 고민이지만 비싼 등록금과 높은 생활물가에 시달리는 대학생 등 청년층 가운데는 당장 몸 누일 곳을 못 찾아 고통을 겪는 이들이 특히 많다. 껍데기집이 없는 달팽이처럼 주거 불안에 시달린다고 해서 ‘민달팽이족’이라 불리는 이들은 고시원, 하숙집, 지하셋방 등을 전전하거나 학교 동아리방과 도서관에서 ‘눈치잠’을 자기도 한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청년기자들이 같은 눈높이에서 불안한 청년 주거의 현실을 취재하고 대안을 모색했다. (편집자)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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