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한국탈핵’ 책 내고 전국서 강연 김익중 교수

“설마…하는 생각이 만연한 게 가장 심각한 안전 불감증입니다. 세월호 사건도 ‘설마 사고가 나겠어?’ 생각하면서 과적하고, 설마 하면서 낡은 배에 증축도 하고, 그러다 그 설마 하던 사고가 난거죠. 원자력은 더 심각합니다. 원자력 사고가 난다는 상상 자체를 금기시 하죠.”

지난해 11월 ‘대한민국도 원자력발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내용의 저서 <한국탈핵>을 낸 뒤 전국을 돌며 강연 중인 김익중(55) 동국대 의대 교수는 ‘원전업계의 대표적 안전불감증이 뭐냐’는 질문에 조용하지만 힘 있는 어조로 이렇게 답했다. 지난 5월 20일 협동조합 ‘우리동네’가 운영하는 충남 천안시 두정동의 ‘공간사이’에서 만난 그는 이대로 갈 경우 국내 원전에서 세월호 이상의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 <한국탈핵> 저자 김익중 교수. 지난 2011년에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자신의 활동 목표를 ‘한국탈핵’으로 바꾼 결정적 계기였다고 한다. ⓒ 김선기

좁은 국토에 후쿠시마급 사고 나면 아무 대책 없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 교수 역시 원전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그리 심각하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79년 미국에서 발생한 스리마일 원전사고는 ‘옛날이야기’로 여겼고, 1986년 구소련 치하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공산주의 시스템에 대한 막연한 불신 때문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난 2009년부터 경주에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건설반대 운동을 하면서도 방폐장 자체의 문제점에 주목했지 원전폐기, 즉 탈핵까지 고려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생각을 뒤엎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원전이 폭발한 것이다.

“저도 핵이 그렇게 위험한지 몰랐어요. 하지만 후쿠시마에서 핵사고가 나니까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이거 심각하구나, 일본에서 사고 나면 한국도 사고가 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후쿠시마가 아니었다면 내가 이러고 살진 않았을 거예요.”

김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자신의 활동 목표를 ‘한국탈핵’으로 수정했다. 후쿠시마 사고에서 ‘원전 사고에는 대책이 없다’는 절대적인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원자력사고 대응 체계는 매우 미흡해요. 설령 완벽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원자력사고가 발생하면 대책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아서 원전이 하나만 폭발해도 사실상 전 국토가 방사능 고농도 오염지역에 포함돼요. 그렇게 되면 국민 모두가 이민을 가야 하는데 이를 대책이라 부를 순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같이 좁은 나라는 원전을 하면 안 됩니다.”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따르면 후쿠시마 사고 직후 한달간 일본 국토에 퍼진 방사성 세슘을 측정한 결과 사고지점으로부터 약 300킬로미터(km) 떨어진 도쿄까지 고농도 오염지역에 포함됐다. 당시 일본의 고농도 오염지역 넓이는 남한 넓이와 엇비슷했다. PNAS가 홈페이지(www.pnas.org)에 공개한 지도를 보면 전체적으로 일본 국토의 70% 정도가 방사성 세슘에 오염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방사능 피폭은 인체에 암, 유전병, 심장병 등의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는데, 세슘이 정화되는 데 약 300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본 사람들은 앞으로 300년간 내·외부 피폭을 당하면서 수많은 질병에 시달려야한다는 얘기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나마 일본은 땅덩어리가 넓어 오염되지 않은 국토가 일부라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서울부터 부산까지 직선거리가 300km를 조금 넘는 정도이니 만약 사고가 난다면 전 국토가 방사능 고농도 오염지역에 포함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원전이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것은 사기”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전은 안전하다’고 맹신하게 된 건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노력한 결과입니다. 교과서에 원전이 안전하다고 나와 있을 정도예요.”

김 교수는 우리 국민들의 ‘원전 안전 불감증’이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의 대대적인 홍보 탓이라고 지적했다. 원전 안전 홍보가 원전 안전 ‘신화’를 만들었고 전 국민이 그 신화를 믿게 됐다는 것이다. 기자도 기억을 더듬어보니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원전은 녹색산업이라고 외워야 시험에서 틀리지 않는다”며 “원전이 녹색산업이 아니라는 반론도 많지만, 바로 그런 논란 때문에 시험에 자주 나오니 무조건 외우라”고 강조했던 게 떠올랐다. 이 이야기를 하자 김 교수가 목청을 더 높였다.

“바로 그 교육효과 때문에 사람들이 원전을 안전하다고 믿고 있어요. 이런 원전 안전 홍보를 당장 그만둬야 합니다. 그리고 원자력 안전 홍보를 완전 불법화해야 합니다. (사고 위험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정부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음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해야지, 정부가 나서서 사고가 안 난다고 가르치는 건 틀린 겁니다. 사기예요. 금지시켜야 합니다.”

김 교수와의 인터뷰 시점이 6․4지방선거를 앞둔 때여서 각 정당의 원전 관련 공약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공약집을 보면 새누리당의 경우 원전관련 언급이 아예 없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원전 비중 확대에 따른 국민 안전 강화 방안 마련’이라며 ‘관리’ 차원의 정책만 짧게 거론하고 있었다.  

“절망적입니다.”

그는 “새누리는 그러려니 해도 새정치 쪽은 의원들과도 꽤 얘기를 했기 때문에 원전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말 할 줄 알았는데 실망스럽다”고 토로했다. 그는 “할 말이 없어요, 내가 노력을 덜 한 거고....”라며 한참 동안 침묵했다. 

한국탈핵, 까마득해 보여도 30년이면 가능

김 교수는 그러나 정의당과 녹색당 얘기가 나오자 낯빛이 밝아졌다. 정의당은 창당 때부터 탈핵에 관심을 가졌고 2012년 대통령선거 때 탈핵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6·4 지방선거에서도 정의당은 ‘핵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하고 고리․월성 1호기 즉각 폐쇄와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요구했다. 녹색당은 탈핵을 제1공약으로 내세우고 ‘2030년까지 탈핵’ 이라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아주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아쉬운 건 탈핵을 외치는 정당들이 아직 비주류라는 점이죠. (현재로선 기대하기 어렵지만) 집권자가 의지만 있으면 탈핵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제 판단엔 집권자가 의지를 가지고 시작하기만 하면 30년 정도면 탈핵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30년 안에 탈핵(원전을 단계적으로 폐로하고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선결해야할 과제로 전기료 인상을 꼽았다. 특히 광업, 제조업 및 기타사업 기업에 적용되는 산업용 전기료를 100%는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너무 싸다보니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소비하는 ‘전기화’가 무분별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산업용)전기가 원가 이하로 공급되기 때문에 많이 쓰는 놈은 많이 이익을 보고 적게 쓰는 놈은 적게 이익을 보는 그런 형태로 되어 있어요. 그래서 기업들이 용광로를 전기로 달구기도 하고 전기로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뽑아내기도 해요. 엄청난 전력 낭비죠. 그럴수록 한전의 적자는 늘어갈 것이고, 이는 다시 국민의 세금부담으로 돌아옵니다. 기업이 내야할 전기료를 전 국민이 나눠 내는 셈이죠.”

실제 80년대에 원전 및 화력발전소가 많이 건설되면서 전기가 남아돌자 정부는 9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내리며 전기 수요 촉진 정책을 폈다. 이를 계기로 전기 수요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그런데 정부는 전기 수요 관리 정책, 즉 전기 절약을 유도하기보다 원전을 더 지어 비정상적인 전기 수요를 감당하려 하고 있다. 김 교수는 전기료 인상을 통해 기업들의 에너지 효율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현재의 전기요금 수준에서는 일반전구를 발광다이오드(LED)로 바꿨을 때 7년은 있어야 본전을 뽑지만, 전기료가 2배가 되면 3~4년 만에 본전을 뽑기 때문에 투자를 촉진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면 무분별한 전기화도 멈출 수 있고 빠른 시일 내로 전기 수요가 관리되면서 원전을 더 짓는 대신 차근히 신재생에너지로 전력원을 대체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  김익중 교수는 "탈핵 운동에 참여해 승리자가 되어 보라"고 말했다. ⓒ 김선기

탈핵 강의 500회···새누리당 의원 특강 꼭 하고파 

김 교수는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고 탈핵 시나리오를 전파하기 위한 강의를 최근 몇 년 사이 500회 이상 했다고 한다. 강연내용을 정리한 <한국탈핵>이 출판된 후에는 특강 요청이 더 많아졌다. ‘왜 탈핵을 해야 하나’,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를 집중적으로 다룬 이 책은 반년 만에 7천부 이상이 팔리는 등 사회과학 서적으로서는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고, 국내 탈핵 논의를 본격화하는 자극제가 됐다. 

김 교수는 앞으로도 강의 요청이 들어오는 한 계속 할 생각이며, 적어도 1000회까지는 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특히 새누리당 국회의원 100여명을 앉혀놓고 꼭 강의를 한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새누리 의원들과는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요. 결국 여당을 설득하지 못하면 탈핵은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하지만 집권세력이 탈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한국 탈핵은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보수 세력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연구하고 있어요. 아직 그 연구가 성과를 내진 못 했지만요.”

서울대 의대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동국대 의대 경주캠퍼스에서 가르치고 있는 김 교수는 경주환경운동연합에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공사중지 운동을 시작하면서 반핵운동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후 탈핵에너지교수모임 집행위원장, 반핵의사회 운영위원장,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 등을 맡으며 대표적인 탈핵전문가로 거듭났다. 한달 기름값이 1백만 원이 넘을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는 그의 강행군은 정부가 ‘원전 증설’을 고수하고 있는 현실에서 언제 끝날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원전은 반드시 없어져요. 그러니까 탈핵 운동에 한번만 참여하면 승리자가 되는 겁니다. 탈핵 운동에 참여해서 승리자가 되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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