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원데이 페스티벌’ 무대와 관객의 벽, 그리고 국경을 허물다

지난 12일, 40여명 관객이 서울 도곡동에 있는 공연장 ‘율하우스’에 모였다. 혼자 온 사람, 초등학생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 다정하게 손을 잡고 들어오는 연인까지 다양한 관객들이 ‘원데이 페스티벌’을 찾았다. 공연장에는 의자도, 무대도 없다. 피아노와 고젱(가야금과 비슷한 중국 전통악기), 일렉트릭 고토(현대식으로 변형된 일본 전통악기)가 마루바닥에 덩그러니 놓여있고 관객들은 원하는 자리에 방석을 깔고 앉는다. 저녁 7시(중국은 6시)가 되자 ‘더하우스콘서트’ 대표이자 ‘원데이 페스티벌’ 기획자 박창수 예술감독(50)이 등장한다.

“제가 처음 하우스 콘서트를 하겠다고 했을 때, 어떻게 집에서 콘서트를 하냐며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로 12년째 하우스 콘서트를 해오고 있습니다. 올해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에서 원데이 페스티벌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아무도 안 믿었습니다. 내년에는 제가 뭘 할까요?(웃음) 지금 이 순간, 국경을 초월한 94개 공연장에서 동시에 저처럼 멘트를 하고 있을 겁니다.”

‘원데이 페스티벌’은 장소가 다른 여러 공연장에서 같은 시간에 하우스 콘서트를 여는 축제다. 2013년 7월 12일 294명 예술가들이 전국 65개 공연장에서 1만명 관객을 만나며 처음 열렸다. 올해는 지난해와 같은 날 오후 7시에 한국 47곳, 일본 29곳, 중국 18곳, 총 94곳에서 공연이 시작됐다. 소극장, 가정집, 교회, 군부대, 스튜디오, 카페, 학교까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모든 곳이 공연장이다. 예술가 400여명이 클래식부터 대중음악, 각국 전통음악, 연극까지 다양한 공연을 펼쳤다.

▲ 한국 시각 7시 한국, 중국, 일본에서 일제히 시작된 '원데이 페스티벌'. 주중한국문화원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이 이끄는 에라토 앙상블이 아름다운 연주를 하고 있다. ⓒ 더하우스콘서트

상대방 소리에 자기 소리를 더하는 즉흥과 소통의 음악

이 페스티벌은 ‘함께하는 순간’의 축제다. 박 감독은 “어떤 공간에 있든지 참가자 모두가 특정한 시간을 공유하고, 그 순간만큼은 하나가 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축제는 지난해 행사를 열기도 전부터 기획했다.

“한국, 중국, 일본은 미묘한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오랫동안 역사적으로 얽혀왔고, 분쟁했지만 공동 비전을 나누고 가꿀 기회는 흔치 않았죠. 문제를 문제로만 가지고 있을 게 아니라 소통을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싶었습니다. 정치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문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작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에 대해 의무를 느낍니다.”

‘2014 원데이 페스티벌’의 취지를 담은 상징적인 공연이 율하우스에서 펼쳐졌다. 피아노 박창수, 고젱 쉬 펑시아(51), 일렉트릭 코토 타케다 켄이치(68), 한∙중∙일을 대표하는 세 연주자가 모여 즉흥 공연을 선보였다. 음악을 어떻게 전개하자는 약속도 없었고, 음향 조정 시간만 짧게 가졌을 뿐 리허설도 없었다. 한 시간 동안 세 사람은 전위적인 연주를 이어나갔다.

그들의 연주에는 정해진 다음 음계가 없다. 상대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것에 자기 소리를 더해 음악이라는 집을 지어나간다. 소통을 통해 균형을 만들어 나가니 상대방 소리에 대한 존중이 느껴진다. 앙코르 연주는 공연의 정점이었다. 바닥에 앉아있던 모든 관객이 일어나 즉흥적으로 노래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세 사람이 연주를 더하자 30평 남짓한 공연장이 아름다운 화음으로 가득 찼다. 공연에 참여한 정보라(25∙서울 신림동)씨도 ‘아주 특별한 경험’을 즐겼다.

“이렇게 가까이서 음악을 접한 것이 처음이라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앙코르 할 때, 사람들이 내는 소리가 더해져 음악이 되었는데 그게 온 몸을 울리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어요. 거기에 저도 참여하고 있다는 게 감동이었습니다.”

관객과 연주자를 가로막던 벽이 허물어졌고, 한∙중∙일은 하나가 되었다. 서로 갈등하는 동북아시아, 그리고 우리 사회에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정해진 미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행동양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도 다른 이의 소리를 들으며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 서울 도곡동 율하우스에서 왼쪽부터 일본, 한국, 중국을 대표하는 세 연주자가 즉흥 연주를 하고 있다(위). 관객은 원하는 자리에 방석을 깔고 앉아 자유롭게 감상한다(아래). ⓒ 더하우스콘서트

12년을 이어온 예술 실험, “관객을 무대 위로 올리자”

박 감독은 1998년 24시간 12분을 연주한 작품 <에바다>를 포함해 끊임없는 예술적 실험을 보여주고 있다. 2002년 7월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열린 첫 하우스 콘서트 또한 그 연장선이었다. 하우스 콘서트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이고 도전이다. 하우스 콘서트에서 관객은 무대 위에 앉는다. 어떤 공연은 누워서 감상할 수도 있고, 관객이 공연 일부가 되기도 한다. 박 감독은 “연주자와 관객이 극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하면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관객과 연주자가 객석과 무대로 분리되지 않고, 한 공간에서 예술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공감한다는 것이다.

“일반 클래식 공연에 8세 미만 아동은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걸 허물었죠. 사람들이 ‘굉장히 소란스러울 텐데… 라고 걱정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박 감독은 아이들이 객석에 있을 때에는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듯이 공연을 대하지만 이들을 무대에 앉히면 공연에 몰입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면 안 된다는 것을 이론으로만 배웁니다. 그렇게 했을 때, 왜, 어떻게 좋은지에 대해서 감흥을 느끼기 어렵죠.”

▲ 하우스 콘서트는 관객과 연주자의 벽을 허물고 함께 공연을 만들어나간다. 하우스 콘서트가 공간 내 화합을 이루었다면, '원데이 페스티벌'은 화합의 의미를 국경 너머로 확장했다. ⓒ 더하우스콘서트

하우스 콘서트는 관객에게 아무런 제약도, 규칙도 적용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이 왜 좋은지’ 공연 자체를 통해 관객이 스스로 느끼길 바란다. 관객을 무대로 올리기까지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많은 공연장들이 관객을 무대 위로 올리는 것을 환영하지 않았다고 한다. ‘관객이 무대 위에서 관람하면 왜 좋은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하지만 연주자와 교감하며 몰입하고 소통하길 갈망하는 관객들이 있었고, 박 감독은 12년간 하우스 콘서트를 이어오며 이것을 증명했다.

지방 공연 활성화를 위해 시작된 단 한 시간의 축제

하우스 콘서트를 시작한 지 10주년 되는 시점에 박 감독은 새로운 도전을 했다. 2012년 ‘프리,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1주일 간 전국 100회 공연을 기획했다.

“그 전까지는 (하우스 콘서트가) 개인 활동이었습니다. 10년 정도 되자 공적인 차원까지 넓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우리나라 문화 의식수준을 1%라도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박 감독은 지방공연이 활발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3 공연예술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 부산, 인천 등 특별·광역시에 있는 공연장의 공연일수는 평균 153.2일인데 견주어 주요 도시 이외 광역도에 있는 공연장 공연일수는 평균 54.5일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지방에도 좋은 극장들이 많은데 연주자들은 지방으로 가지 않고 공연장은 비어있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좋은 연주자들과 좋은 극장을 이어주자는 취지로 전국 100회 공연을 기획했다.

“100회 공연을 성사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저희 제작진 한 명이 전국 130개 공연장을 직접 다니면서 일일이 설득했지만 듣지 않았죠. 공짜로 공연을 하겠다고 극장 문을 열어 달라 요청하면 ‘우리 지역에는 클래식 들을 주민이 없다’고 말합니다. 문화 수준을 높이겠다며 수백억 원을 들여 좋은 공연장을 지어 놓고도 어떻게 운영할지 모르는 게 지금 우리 수준입니다. 경제는 빠르게 발전해 물질적 여유가 생겼지만 ‘어떻게, 어디에 돈을 써야겠다’는 진지한 성찰이 부족하다고 봅니다. 그냥 극장 하나 짓는 것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12년간 이어온 하우스 콘서트, 중국과 일본까지 진출한 ‘원데이 페스티벌’에는 기업 스폰서가 없다. 새로운 가능성을 발굴하는 안목과 그 가능성을 육성하려는 의지를 가진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스폰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는 “그런 기업이 나타나는 것보다 수준 높은 안목을 가진 시민들이 많아지는 게 중요하며 지금 하는 일들이 그 기초를 닦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리, 뮤직 페스티벌’은 1년에 한 번, 단 한 시간 열리는 ‘원데이 페스티벌’로 이어졌다. 이후 지방 공연이 활발해지면서 올해부터는 매주 전국 공연장에서 ‘대한민국 공연장 습격사건’이라는 이름으로 하우스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