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반올림’과 함께 하는 김종영 경희대 교수

"노동자의 편에 섰다기보다 연구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논리가 설득력과 정당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 등 ‘삼성백혈병’ 희생자들에 대해 최근 삼성 측이 유감을 표하고 대화에 나서는 등 오랫동안 산업재해 연관성을 부인했던 태도를 바꿨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약속’ 등 이 사건을 다룬 영화의 파장도 작용했지만 이에 앞서 줄기차게 진실규명을 요구해 온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환자와 가족, 인권운동가, 노무사 등과 함께 반올림 투쟁을 함께 해 온 김종영(42)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자편에서 싸우게 된 계기에 대해 ‘공부해보니 그들의 주장이 옳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24일 서울 회기동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 교수는 “과학기술사회학과 지식사회학을 세부 전공하는 학자로서 삼성백혈병 문제가 학문적으로도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 '삼성백혈병의 지식정치'를 연구한 경희대 김종영 교수. ⓒ 계희수

작은 힘이 모여 삼성의 변화 이끌어내다

김 교수는 박사과정 학생인 김희윤(33)씨와 함께 삼성백혈병 문제로 싸우고 있는 이들을 18개월간 현장에서 만났다. ‘반올림’이 작성한 재해 경위서, 환자 질병에 대한 의사소견서, 환자 및 환자가족의 진술서, 행정소송에 제출된 법정자료 등을 소상히 살폈다. 그 과정에서 연구자로서 확인한 진실을 기자회견 등을 통해 사회에 알리고, 진상조사와 피해노동자에 대한 보상을 촉구했다. 지난 2010년 12월 21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사회인사 선언'에는 김 교수를 포함한 보건의료전문가·법조인·학자 등 536명이 참여했다. 이와 함께 정치권 및 국제운동조직과의 연대, 거리투쟁, 과학 투쟁 등 다각적인 활동을 펼쳤다.

이런 투쟁은 조금씩 변화를 이끌어냈다. 지난 2007년 이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후 회사 측과 근로복지공단 등으로부터 ‘근무환경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수없이 문전박대를 당했던 고 황유미씨 가족 등 일부 피해자들이 2011년 법원에서 산재판정을 받아냈다. 또 다수의 시민이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대는 ‘클라우드펀딩’ 방식으로 ‘또 하나의 약속’이 만들어졌고 지난 2월 개봉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 삼성백혈병 문제를 대중에게 알린 영화 <또 하나의 약속>. ⓒ (주) OAL 배급사

"(사회적 압력이 커지니)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삼성이 태도를 바꿨어요. 앞으로 보상 또는 배상의 정도와 범위를 어떻게 타협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인데, 결과를 쉽게 예단할 수 없으니 끝까지 지켜봐야 하겠죠.”

삼성은 현재 협상에 참여한 8가족만 보상하고 나머지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보상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하자고 제안한 반면, 반올림 측은 산재신청자 전원에 대한 사과와 보상,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 합의의 전망은 보이지 않지만 양측은 2주마다 회의를 여는 등 지속적으로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삼성 대 반올림' 토론한 학생들 산재 심각성 공감

김 교수는 반올림과 함께 대외활동을 하는 한편으로 ‘사회연구입문’, ‘질적연구방법론’ 등 자신의 사회학 수업에서 삼성백혈병 사례를 다루고 있다. 학생들에게 이 사안과 관련한 논문·보고서·책·영화 등을 보게 한 뒤 삼성과 한국산업안전공단 등 기업 및 정부 입장, 반올림의 입장에 각각 학생들을 세워 토론하게 한다. 통계숫자와 현행 법규 등으로 무장한 삼성측 대변인들과 산재피해자 가족 및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반올림 대변인들은 강의실 안에서 팽팽하게 대립한다.

“삼성백혈병 사태로 죽은 많은 사람들이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였습니다. 게다가 학생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입니다. 사회학은 현실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관심과 고민이 필요한 학문이죠. 이런 점에서 교육을 위해 좋은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학생 들은 각종 통계와 보고서, 법원 판결문 등을 살펴본 후 토론을 통해 산재 문제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처음에는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과 정부의 완강한 태도에 영향 받아 반올림의 주장을 의심하고 시작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양측 주장의 근거를 모두 공부한 후 학생들은 이내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기껏해야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이 전부인 학생들이지만 자신들과 비슷한 나이의 젊은 노동자들이 일하다 불치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은 현실에 분노하기도 했다.

“처음 연구를 시작했던 때와 지금은 변한 것이 많아요. 수업에서 처음 ‘삼성백혈병’ 문제를 다뤘을 때와 현재는 학생들 반응도 다릅니다.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한 덕분에 수면 아래 있었던 문제가 국민들에게 알려졌죠. 사회적 압력의 증가, 과학적 증거의 증가, 정부의 전향적 태도, 포기하지 않는 투쟁, 삼성 내부의 사정 등 여러 복합적인 상황이 이런 변화를 낳았다고 봅니다.”

혼자 해결 어려운 문제, '연대의 힘'으로 풀자

그는 앞으로 삼성을 포함한 국내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안전과 복지에 대해 체계적이고 제도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정부는 피해를 입은 노동자의 안정적 치료와 생계보장, 작업장 환경개선에 산재보험이 실질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가입대상 확대, 신청절차 간소화 등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지난 2009년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산재 피해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백혈병이 산재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 반올림

김 교수는 갈수록 산재문제처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의료와 법제 등 전문지식이 개입되는 사안들이 쟁점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시민지식과 전문지식의 결합을 통한 연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환경, 의료, 노동, 정보와 같은 영역들은 우리 일상생활에 이미 깊숙이 개입되어 있고 다양한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스스로 풀어나가기 힘들다면 여러 사회세력들과 연대를 해야 합니다.”

이런 연대를 직접 경험한 김 교수 자신은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의 반대편에 서서 압박이나 갈등을 경험하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김 교수는 자신이 곤란한 상황을 겪지는 않았으나 질병에 고통 받았던 피해노동자들과 그 가족, 이들을 현장에서 도왔던 운동가들은 어려움이 컸다고 답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으로 일하다 2008년부터 경희대에서 가르치고 있는 김 교수는 앞으로도 제자인 김희윤씨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삼성백혈병에 대한 논문과 책을 계속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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