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나] 누리꾼 범법자 만드는 저작권법에 “이의 있소!”

▲ 정혜승(다음 대외협력실장)
노래 잘하는 A씨. 오랜만에 노래방에서 실력을 과시했다.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찍어준 동영상이 만족스러워, 자랑스럽게 블로그에 올렸다. 인기 아이돌이 주인공인 드라마의 팬 B씨. 며칠 전 주인공들의 키스신에 설렜던 기억을 되살리며 드라마 장면을 캡쳐해서 포털 사이트에 올렸다. B씨는 ‘달달한 완소 커플’이라고 한마디 넣었고, 많은 이들이 댓글로 공감을 표시했다. B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 홍보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에 뿌듯했다.

이들은 평소 선량한 시민이라 스스로 생각했을지 모르겠으나, 저작권을 침해한 불법행위자가 됐다. A씨는 저작권이 있는 콘텐츠를 변형, 복제해 전송했다. B씨는 방송사 허락 없이 드라마 이미지를 복사해 인터넷에 게재했다. 만약 저작권자가 요청한다면 포털 등 인터넷서비스사업자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해야 한다. 다섯 살 여자아이가 손담비 노래를 따라 부른 동영상도 저작권자 요청에 따라 삭제되지 않았던가. 너무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이 같은 문제가 만국 공통 이슈라는 것이 저작권 제도의 딜레마다. 이런 법제도에 저항하면서 저작물을 쉽게 이용, 소비, 재창조하겠다는 움직임이 등장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 인터넷 저작권 침해행위에서 이름을 딴 ‘해적(pirate)’들이 스스로 법 개정을 요구하며 정치적 행동에 나섰다. 지난 2006년 스웨덴에서 세계 최초로 ‘해적당’이 출범한 것이다.

스웨덴 해적당은 2009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7.13%를 득표, 유럽의회 의석 두 자리를 차지했다. 같은 해 독일 총선에서도 독일 해적당이 원외정당으로는 최다 득표를 했다. 특히 생애 첫 투표에 나선 남성 유권자 13%가 해적당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영리 목적이라면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할 권리를 보장하자’고 주장하는 해적당의 불길은 거세게 번지고 있다. 현재 16개국에서 ‘해적당’이 정당의 모습을 갖췄으며, 32개국에서 준비 모임이 구성됐거나 논의가 시작됐다.

상업적 목적 없이 콘텐츠를 소비하고 나누는 행위가 ‘해적질’이라면 지금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 대체 누가 ‘해적’이라는 꼬리표에서 자유로울까. 노래 동영상이나, 드라마 이미지를 공유한 A씨와 B씨도 이미 ‘해적’이다. 영화나 방송 프로그램 등을 리뷰하며 이미지를 사용하는 많은 블로거들, 모두 ‘해적’이다. 모처럼 감동받은 시를 블로그나 카페에 퍼 나른 누리꾼들도 ‘해적’이 될 수밖에 없다.

국내 저작권법은 제1조(목적)에서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저작권 보호’에 주로 관심을 갖는 동안 ‘공정한 이용 방안’은 외면되어 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최근 문화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저작물을 어느 정도 제한된 조건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공정이용 가이드라인’을 각계 전문가들과 공동으로 만들고 있다.

그동안 저작권 보호에 치중해온 정부조차 균형을 모색하는데다 세계 각국에서 해적당 활동이 활발해지는데, 우리나라 누리꾼들이 무관심할 리 있을까. 인터넷을 이용하는 평범한 이용자 다수를 ‘범법자’로 만들어버리는 법 제도라면, 법 자체를 개정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국내에도 등장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세계 저작권법 강화 움직임에 대해 자본력과 로비력을 갖춘 헐리우드 거대기업을 비롯, 콘텐츠 혹은 미디어 권력들만 보호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인터넷 주인 찾기’ 모임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인터넷의 주인은 저작권자도, 포털도 아닌 이용자들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모임은 참가자들이 아주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평범한 회사원을 비롯해서 각자 다른 생업을 갖고 있는 블로거들이 인터넷 이용자의 당연한 권리를 찾겠다고 모였다. 인터넷 이용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현행법제도에 대해 대안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 5월 인터넷 실명제, 즉 ‘제한적 본인 확인제’가 어떻게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지를 주제로 컨퍼런스를 연 데 이어 오는 17일 ‘저작권-창작의 무덤’이라는 컨퍼런스를 연세대에서 갖는다. 저작권 이슈와 관련, 인터넷 주인 찾기 모임의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글(http://ournet.kr/xe/blog/6128) 은 모두가 참고할 만하다.

특히 이번 컨퍼런스에는 스웨덴 해적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인 아멜리아 안데스도터(23)가 발표에 나선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아멜리아는 해적당 활동을 토대로 지난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당선됐다. 그는 현재 대학을 중퇴하고 해적당 운동가로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방한 기간 중 ‘인터넷 주인 찾기’ 컨퍼런스 외에도 고려대 한신대 강연과 세미나, 누리꾼들과의 대화, 국회의원 간담회, 저작권 영화제 등 다양한 일정을 통해 유럽 ‘해적당’의 활동을 설명하고 토론할 예정이다.

사실 저작권 문제는 보호받아야 할 권리와 저작권자가 있기 때문에 ‘해법’을 찾기 쉽지 않다. 포털 입장에서는 보다 풍요로운 인터넷 생태계에서 이용자들이 합법적으로 인터넷을 즐기는 풍토가 정착되기를 바라지만, 저작권을 보호해야 하는 기업의 책무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정부와 마찬가지로 현행 법제도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같은 고민의 가장 직접적 당사자는 이용자다. 아마 많은 인터넷 이용자들은 본의 아니게 ‘해적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해적’으로 몰린 마당에 해적질이 왜 문제인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해적질은 어디까지인지, 해적질을 합리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은 없는지 함께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용자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에 관심을 갖자. 인터넷 세상을 즐겁게 변화시키는 노력의 중심에는 이용자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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