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울도시농업박람회 국제컨퍼런스, 각국 경험 공유

도시와 농업.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는 이제 ‘도시농업’이란 합성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친근한 사이가 됐다. 도시농업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상추나 토마토 같은 채소를 기르는 수준을 넘어, 이제 계란과 고기에 꿀까지 생산하는 ‘만물농업’이 되어가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해답으로 ‘도시농업’이 제시되고 있는 지금, 세계 8개국 ‘도시농부’들이 정보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열렸다. 지난달 30일, 제3회 도시농업박람회 국제컨퍼런스가 ‘도시농업과 먹거리혁명’을 주제로 서울시청 신청사 다목적홀과 시민청에서 개최됐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로 박람회가 취소돼 컨퍼런스만 진행됐다. 

▲ 지난달 30일, 제3회 서울도시농업박람회 국제컨퍼런스가 열렸다. ⓒ 서울그린트러스트 홈페이지

먹거리를 외부에만 의존하는 도시는 존속할 수 없다

이날 행사는 안철환 도시농업시민협의회 상임대표의 환영사로 시작됐다. 안 대표는 “도시농업은 일종의 에어포켓”이라며 “텃밭이야말로 역동적인 생태공간과 공동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라고 말했다. “먹거리를 외부에 의존해야 하는 도시는 지속가능할 수 없다”며 서울이 자급과 순환이 작용하는 생태도시가 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양병이 서울그린트러스트 이사장도 “도시농업을 통해 서울이 건강하고 자급자족적이며 아름다운 도시가 되길 바란다”고 환영사를 했다. 

“현재의 식량체계는 글로벌 산업화해 있습니다. 우리 먹거리는 ‘맛과 영양’보다는 ‘운송이 용이한가’, ‘효율적 생산이 가능한가’를 기준으로 생산되고 있죠.”

첫 번째 기조연설은 캐나다의 푸드저널리스트이자 <푸드 앤 더 시티>의 저자 제니퍼 코크럴킹의 날카로운 지적으로 시작됐다. 식료품 소비가 대형마트의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현실은 산업형 농업의 단면을 보여준다. 소수 지역에서 대규모로 식량을 생산해 다른 지역으로 운송하는 것을 우리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러한 식량체계는 지속 불가능하다.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환경오염을 초래할 뿐 아니라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하지도 못한다. 그녀에 따르면 공장식 축산으로 미국의 항생제 70%가 가축에 사용되고 있으며, 지난 100년간 농업부문의 생물다양성은 유럽에서 75%, 미국에서 93% 감소했다. 

다행히 전 세계적으로 ‘도시농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코크럴킹은 “도시농업은 전세계적 움직임”이라며 “도시농업을 통해 지역사회와 공동체가 탄생하고 기아 문제가 해소되며, 짧은 식량사슬이 형성돼 안전한 식량체계를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공원, 가정, 학교 뜰, 유휴지, 옥상 등에 텃밭을 만드는 움직임은 서울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코크럴킹은 자신이 직접 방문한 세계의 도시농업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 푸드저널리스트 제니퍼 코크럴킹이 기조연설에 앞서 한국 첫 방문 소감을 말하고 있다. ⓒ 김연지

“프랑스 파리는 90년대에만 해도 ‘녹색도시’라고 할 수 없었죠. 1900년대 초반 도심에 남아있던 8500여 도시농부들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고 파리는 녹색을 잃어버렸어요. 하지만 최근 도시농업이 소규모로 되살아나면서 파리에는 현재 100여개에 이르는 공동체 텃밭이 관리되고 있습니다.” 

5㎡ 베란다에서 83kg 채소 생산

영국 런던의 사례도 놀랍다. 런던은 산업화가 최초로 이루어진 도시이면서 대표적인 녹색도시이기도 하다. 도시농업을 정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활발한 시민참여가 있기 때문이다. 런던의 도시농부 마크 스미스는 불과 5㎡의 주택 베란다에서 83kg의 신선한 식품을 생산한다고 한다.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큰 수확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유휴지를 이용한 임시텃밭도 활발하다. 2012년 런던올림픽 공사를 앞둔 황량한 땅에 이동 가능한 상자를 이용해 텃밭을 조성했다. 도시경관도 살리고 ‘노는 땅’도 줄이는 좋은 아이디어였다. 미국 시카고에서도 탈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버려진 공장과 땅에 농장이 들어섰다. 산업시설을 녹색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공장 건물을 개조한 한 농장에서는 물고기와 수경작물을 함께 키우기도 한다. 

부동산 가격이 비싸고 땅이 부족한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텃밭을 운영할 부지를 얻기 어렵다. 이에 밴쿠버 정부는 유휴지를 녹색기업에 임대해주면 부동산 세제혜택을 주는 정책을 폈다. 임시로라도 공간 사용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밴쿠버의 사회적 기업 ‘Sole Food’ 는 이런 정책을 이용해 유휴지에서 20톤 가량의 농작물을 생산했다. ‘Sole Food’는 2만2천불어치 작물을 지역민에게 기부하고 소외계층 지역에서 농업교육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최근 밴쿠버에서는 소구획 집중농업이 인기인데, 청년들이 땅을 임대해 텃밭을 가꾸고 임대료로 수확물 일부를 낸다고 한다. 이들은 호텔, 레스토랑, 파머스마켓 등에 직거래로 납품해 1년에 5만~10만달러의 수익을 낸다. 

‘섹시’한 도시농업이 우리의 미래 

코크럴킹은 대표적 도시농업국가인 쿠바를 소개했다. 1990년대 초반 경제대란을 겪은 쿠바 시민들은 1년만에 평균 15kg의 체중이 감소했을 정도로 큰 식량 위기를 겪었다고 한다. 해외 교역이 중단되면서 쿠바인들은 어쩔 수 없이 직접 먹을 것을 경작할 수 밖에 없게 되었는데, 이것이 쿠바 도시농업의 시작이었다. 쿠바에는 도심 곳곳에 협동조합이 있으며,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식료품점이 동네 곳곳에 있다. 

“도시농업은 섹시합니다. 도시농업은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지만,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면 흥분됩니다.”

코크럴킹은 도시농업을 “섹시하다”고 표현하며, 최소한 북미지역에서는 청년들이 ‘도시농부’를 ‘섹시한 직업’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소개했다. 도시농업이 유망한 직종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코크럴킹은 “도시인들이 가정에서 토마토를 키우는 기쁨을 재발견하고 있다”며 도시농업이 도시의 미래에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로컬푸드에 대한 수요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라며 “다양한 방식의 도시농업이 시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추 파동’으로 본격화한 서울의 도시농업 

두 번째 기조연설은 김완순 서울시립대학교 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서울시 도시농업의 실태와 미래 비전에 대해 발표했다. 

▲ 김완순 서울시립대 교수가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최선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한국은 현재 세계 경제 11대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한국의 수도 서울은 녹색 삶을 잃게 되었죠.”

압축성장과 빠른 산업화는 여러 문제를 낳았다. 가장 큰 문제는 도시화다. 한국 인구의 절반이 서울에 집중돼있다. 마구잡이식 난개발도 문제다. 현재 서울 면적의 91.9%는 이미 개발됐거나 개발 중이다. 그가 보여준 서울의 지도에 녹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별로 없었다. 김 교수는 도시화와 개발 위주 삶이 국민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삶의 만족도도 36개국 중 26위로 하위권에 머물러있다. 기대수명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는 대안적 삶의 모습으로 도시 텃밭 가꾸기를 제시했다. 

“2010년 배추 값이 폭등하면서 김치가 ‘금치’가 된 적이 있었죠. 배추 값이 너무 비싸니까 직접 키워서 먹자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이게 도시농업이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였어요.”

배추 파동을 겪으면서 서울에서도 도시농업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시민들이 직접 배추를 심어 재배하는 풍토가 확산된다면 갑자기 파동이 발생해도 완충 구실을 할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후 서울시는 상자텃밭을 만들어 보급하고 유휴지에 텃밭을 조성해 도시농업 교육을 진행했다. 지난해 3월 13일 서울시는 도시농업을 법제화했고 공원 안에서도 작물 재배가 가능하도록 법률적 지원책을 마련했다. 

그는 모든 가정이 1평의 텃밭을 가지고 그 텃밭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면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점점 사라져가는 문화공동체의 회복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텃밭 이름에 공동체라는 말이 들어가 있죠? 이건 서울시가 도시 텃밭을 통해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서울시의 텃밭들은 모두 함께 살아감과 나눔을 기본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냄새 나고 지저분할 거라는 선입관 

서울시의 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만나 재작년부터 서울시에는 다양한 텃밭이 등장했다. 서울시의 텃밭은 가족, 마을, 학교 등 여러 주체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져 운영되고 있다. 그는 창동, 강동구 상일동, 마포구 상암동 등에 있는 공동체 텃밭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가 시립대학교에서 직접 학생들과 꾸려가는 ‘시대텃밭’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만든 시대텃밭에 대해 “처음에는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여기저기서 구박을 받았지만 하고 나니 칭찬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은 많다. 2012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도시농업 원년’을 선포한 뒤 도시텃밭이 점점 활성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서울시민 4.3%만이 도시농업에 참여하고 있다. 나머지 95.7%는 도시농업에 반대하거나 참여하지 않는다. 조사 결과 반대하는 사람들은 “냄새가 나거나 지저분할 것”, “미관상 깔끔하지 못할 것” 이라는 등의 답변을 했다. 김 교수는 반대여론을 설득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도시 텃밭이 전체 도시와 공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서울의 텃밭은 채소 중심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다”며 먹을 것과 볼 것이 모두 충족되는 도시농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회색으로 뒤덮인 도시 베를린의 녹색 찾기 

마지막 기조연설자는 크리스티안 율리치 독일 홈볼트대학 교수였다. 그는 ‘도시원예’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도심에서 진행되는 녹지사업을 일컫는 ‘도시원예’는 우리에게 낯설지만 서유럽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 생산뿐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환경보호 등 기능적인 요소를 포함시킨 포괄적 용어다. 

그는 베를린에서 이루어지는 도시원예의 사례들을 소개했다. 베를린은 다양한 가로수 종들을 전 세계에서 가져와 심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도시의 가장 큰 문제인 열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악조건 속에서도 잘 성장하는 가로수 종을 찾아내는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 크리스티앙 율리치 홈볼트대학 교수가 베를린의 도시농업을 소개하고 있다. ⓒ 김연지

율리치 교수는 베를린 한복판 포츠다머 광장에 있는 고층 빌딩 옥상 텃밭들을 도시원예의 성공 사례로 제시했다. 건물 옥상의 24%가 먹거리 생산을 위한 텃밭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개발로 인해 베를린 중심지에 고층건물이 빽빽이 들어서자 베를린시는 급격히 도시화를 진행한 것을 반성했다. 이에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 기업들에게 건물 옥상에 녹지를 조성하도록 지시했고, 고층 건물에 입주한 여러 기업들은 빗물을 재사용하는 루프탑(roof top)기술 등 첨단 시스템을 사용해 도시원예 사업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베를린 역시 많은 인구가 사는 대도시다. 그러나 서울과 달리 베를린은 전체 면적의 3분의 1 정도가 녹지로 남아있다. 2500여개 공원이 조성돼 있고 교육 목적으로 사용되는 테마형 텃밭도 많다. 자투리 공간도 놓치지 않고 녹지로 활용하려는 노력의 결과다. 첨단 기술과 시스템, 그리고 독일의 시민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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