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차상 이대경

오늘로 5만8천6백 원이다. 프라푸치노 10잔이나 세일에서 티셔츠 한 장, 또는 U2 한정판 DVD를 살 수 있었던 돈이다. 그 돈이 모두 크고 작은 사다리게임을 통해 저 얄미운 B에게 가고 말았다. 이건 불합리하다. 확률로 따져 봐도 일방적인 나의 패배는 설명이 안 된다. 더구나 B는 나처럼 쩨쩨하게 여태껏 잃은 액수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넉넉한 경제력의 소유자다. 나는 녀석이 관심 없는 아프리카 어린이 후원도 하고 무엇보다 녀석처럼 여자를 많이 울리고 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사다리는 나에게 더 많은 돈을 토해내라 한다.

단 한 골이 문제였다. 나에게도, 이동국에게도. 오늘 내기는 한국-우루과이 전이었다. B는 우루과이 승에, 나는 90분 무승부에 걸었다. 애초 둘 다 한국승리에 걸고 싶었기에 사다리로 결정한 내기였다. 이동국의 막판 슈팅이 골키퍼 가랑이를 맞고 골라인 바로 앞에 멈췄을 때 나의 행운도 거기까지였다. 빌어먹을 가랑이.... 그 순간 토크쇼에서 본 황선홍의 얘기가 떠올랐다. “스페인전 승부차기는 실축이었어요. 그런데 운 좋게 카시야스 겨드랑이를 맞고 들어가더라고요.” B와 나의 차이는 바로 그런 겨드랑이와 가랑이 차이다. 무슨 말이냐고? 그냥 밑도 끝도 없는 복불복이라는 얘기다.
 
이동국도 마찬가지다. 그는 작년에 22골을 성공시키고 득점 순위 맨 위에 자신의 이름을 올린 남자였다. 하지만 월드컵에서 단 한 골이 부족해 그 스물 두 번의 성공이 빛을 잃고 말았다. ‘1>22’ 같은 부등식이 성립하곤 하는 게 수학책 밖의 현실이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선가 고약한 사다리게임에 올라타버린 이동국이 불쌍해졌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운명에 관한 흥미로운 비유를 남겼다. 로마신화에서 운명은 포르투나(fortuna)라는 여신의 모습으로 표현되는데, 마키아벨리는 운명의 신이 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운명이란, 그 시대 여성관처럼, 밑도 끝도 없이 변덕을 부린다는 것이다. 포르투나는 디케처럼 공정하게 저울 양쪽을 가늠하지 않는다. 굳이 여유 있는 B보다 나에게서 돈을 걷어가고 똑같이 부상과 불운을 겪었던 황선홍과 이동국에게 완전히 다른 결말을 쥐어준다. 한 명에겐 월드컵의 영광을, 한 명에겐 끝내 씁쓸한 월드컵의 기억만을.

그래서 우리 개개인은 특별하지 않다. 특별한 것은 운명 혹은 바깥에서 우리를 쥐고 흔드는 불편부당한 법칙일 뿐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고, “세상은 평범한 불행 속에 나를 살게 해”라는 이소라의 노래라도 들어버린다면 보통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냉소주의자가 되거나, 염세주의자가 되거나.

하지만 이 어두운 갈림길 사이에 진정한 선택지가 숨어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운명이나 상황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것과 대면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는 선택할 수 있다. 이 선택에서부터 도덕이니 자유니 하는 것들이 시작된다. 이 선택 덕분에 염세주의의 유혹을 벗어날 수 있고 제 스스로 ‘쿨하다'며 뻐기는 냉소주의자들을 비웃을 수 있다. 마키아벨리도 변덕스러운 포르투나를 정복하는 남자가 되라고 하지 않았던가. 다시 투지에 가득 찬 눈으로 B에게 새로운 내기를 걸러 가야겠다. 이동국과, 또 각자의 1승, 1골을 위해 고군분투할 모두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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