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서울환경영화제 장편다큐 '망대'의 문승욱 감독

 

▲ 철거를 앞두고 있는 춘천 약사동의 망대. ⓒ 영화<망대>

2037년 강원도 춘천. 과거로 여행을 떠나 현재를 바꾸려는 시도는 가장 중대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사람들은 잃어버린 첫사랑, 추억, 고향과 같은 사소한 것들을 찾아 타임머신을 탄다. 66분짜리 영화 <망대>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맥거핀(관객의 주의를 돌리는 속임수)으로 활용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한 댄서를 미래의 춘천에서 2013년 현재로 파견된 ‘시간감시관’으로 설정하고 그의 눈으로 춘천의 한 재개발 동네를 바라본다.

독특한 장치로 재개발 서글픔 담아 

“요즘 춘천이 개발되는 방향을 보면 서울처럼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춘천의 미래가 서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과정에서 타임머신이라는 도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죠.”

문승욱(46) 감독은 영화제작을 위해 서울에서 춘천으로 이동하는 게 마치 미래에서 과거로 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영화는 재개발로 곧 허물어지게 될 망대에 대한 동네 사람들의 애잔하고 서글픈 마음들을 짤막짤막한 인터뷰들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도입부에 자막으로 타임머신이라는 ‘판타지적 설정’을 담은 것을 빼면 영화 전체가 꾸미지 않은 인터뷰와 마을 전경을 담은 영상으로 이뤄져 관객의 마음에 잔잔히 스며든다.

▲ 영화 <망대>를 제작한 문승욱 감독. ⓒ 배상철

망대는 ‘watch tower’, 단어 그대로 감시탑이라는 뜻이다. 약 100년 전 화재와 죄수들을 감시하기 위해 춘천시 약사동에 지어진 망대는 등대처럼 생긴 모습 그대로 긴 세월 춘천을 지켰다. 그 사이 개발과 재개발의 바람이 여러 차례 불었지만 ‘없애는 것보다 그냥 놔두는 게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최근 인근 마을이 ‘약사뉴타운’으로 지정돼 본격적인 재개발을 추진하게 되면서 마침내 철거될 신세가 됐다. 감독은 이런 망대의 운명과 이를 지켜보는 마을 사람들의 솔직한 생각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고 한다.

문 감독은 로만 폴란스키 등 세계적 거장을 배출한 폴란드의 우츠 국립영화학교 연출과에 지난 1990년 한국인 최초로 입학한, 국내 1세대 폴란드유학파 감독이다. 그동안 <이방인>(1998), <나비>(2001), <시티 오브 크레인>(2009)등을 통해 독특한 서술방식의 영화세계를 펼쳤고 이 중 장편 극영화 <나비>로 부산영화제 평론가상, 로카르노 국제영화제 비평가상, 와인트리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등을 받았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타임머신, 불법체류자, 시간감시자 같은 극적 장치를 활용해 다큐의 주제를 보다 흥미롭게 전달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 망대와 기대슈퍼에 대해 무감각한 소녀. 휴대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리듬을 타고 있다. ⓒ 영화<망대>

망대의 시선에서 본 마을, 순응과 관조 사이 

영화 <망대>에서 발언하는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이다. 망대가 보이는 건물 옥상에서 고추를 널던 약사동 반장 이민옥 할머니는 “새파란 20대 새댁 때 여기 시집 와 80대가 되도록 살았으니 딴 데로 가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개발하기 전에 이 동네에서 그냥 죽어서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삶의 방식과 추억을 지키고 싶지만 재개발을 막을 힘은 없다. 그저 무기력하게 순응할 뿐이다. 문 감독은 젊은 사람들을 인터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20,30대들은 빨리 재개발이 되고 변화하길 바라기 때문에 망대를 둘러싼 추억이 무너지는 것에 무관심했다”고 설명했다. ‘헐리면 헐리는 거지’라는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영화에는 오랫동안 망대와 함께 해 온 가게 ‘기대슈퍼’가 등장한다. 망대와 기대슈퍼는 이 마을의 상징물과 같다. 기대슈퍼 앞에서 휴대전화와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무심하게 서성거리는 어린 소녀는 마을의 내력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를 상징한다. 잠시 서성이던 소녀는 이내 차가 앞에 와서 멎자 쌩 하니 차를 타고 가버린다. 영화 속 젊은이들은 ‘먹고 사는 문제와 별 관련이 없는 망대 따위’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망대 마을에서 살았다는 정현우 시인은 인터뷰에서 "예술이 본래 먹고 사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망대도 쓸모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지 않은가“라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망대 마을의 분위기가 마냥 암울한 것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마을의 정취가 문 감독의 발길을 붙잡았다.  

"2013년 ‘문화공작소 낭만’의 문화콘텐츠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약간의 연출료와 제작비를 받기로 하고 (영화 작업을)시작했어요. 그땐 단순히 3박4일 정도 촬영하면 되리라 싶었죠. 2013년 3월 처음 망대를 마주했을 땐, 개·보수를 많이 해서 100년의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 허름한 모습에 실망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며칠 있다 보니 마을의 고유한 기운들이 느껴지더라고요. 마을 사람들이 갖는 망대에 대한 추억도 각별하단 느낌이 들었고요. 그래서 ‘아, 그냥 탑이 아니구나. 더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고, 그러다보니 며칠을 예상했던 촬영 기간이 몇 개월이 됐어요."

그는 이런 특별한 느낌들을 영화에 과장되지 않게 담으려 노력했다. 감독의 입장에서 영화를 이끌어 가기보다 재개발을 앞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갔다. 망대 마을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망대의 시선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느낌을 담기 위해서다. 또 외부에서 온 사람의 시선으로 관조하는 의미도 있다.

▲ 망대 마을을 기억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사진을 배운다.(위)기대슈퍼 앞에서 할머니들이 사진기를 들고 촬영을 하고 있다. (아래)수줍게 웃는 망대 마을 할머니. ⓒ 영화<망대>

서울환경영화제 본선 진출, 15일까지 상영 

문 감독은 망대 마을에서 작업하는 동안 시간에 대한 감각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망대 마을에서 시간은 그 어느 곳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도시의 현대적인 생활은 시간을 욕망 충족을 위한 값싼 소비재로 치부하죠. 하지만 망대 마을에서는 애초에 시간의 개념부터 다른 것처럼 느껴졌어요. 1분 1초마저 붙잡고 사는 도시인들과는 달리 망대 마을 사람들은 시간이 흐르는 것을 여유롭게 바라보며 즐기는 것 같았죠.”

문 감독은 재개발에 대해 ‘시간을 잃어버리다’, ‘추억을 잃어버리다’라고 정의했다. 느리게 살아가던 망대 마을이 사라지면 우리는 그 추억도 함께 잃어버리게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문 감독의 영화 <망대>는 환경과 인간의 공존을 생각하자는 취지로 11회째 열린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국제환경영화 경선 장편부문 본선에 진출했다.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인디스페이스에서 선보였고 오는 15일 한 차례 더 상영될 예정이다. 지난 8일 ‘킹 오브 썸머(The kings of summer)’를 시작으로 개막한 서울환경영화제는 15일까지 씨네큐브, 인디스페이스, 서울역사박물관 등 광화문 일대에서 환경영화백일장 등 다채로운 행사와 함께 진행된다. 이번 영화제에서 국제환경영화경선에 오른 국내작품은 <망대>외에 박경근 감독의 <철의꿈>, 신성용 감독의 <우포늪의 사람들>등 3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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