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엄마의 노란손수건’ 등 시민들 거리로 나서다

“더 이상 울고만 있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미약하나마 작은 발걸음 하나하나가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모든 분들께 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희는 마지막 한 명의 아이가 구조되는 그날까지, 그리고 명확한 진실이 규명되는 그날까지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 '엄마의 노란 손수건' 카페 운영자 오정숙(48)씨가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 부근 공원에서 집회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 조한빛

지난 5일 오후 3시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 부근 공원. 인터넷 카페 ‘엄마의 노란손수건’ 운영진 중 한명인 오정숙(48·여·회사원)씨가 90여명의 참가자들 앞에서 집회 취지를 설명했다. 참사 발생 20일째이자 어린이날인 이날 집회에는 엄마들뿐만 아니라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빠, 홀로 나온 할아버지,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아이 등 다양한 가족 구성원이 함께했다. 이들은 머리에 노란손수건을 쓰고 스티로폼 소재로 만든 팻말이나 노란 천, 혹은 종이 위에 ‘아이들이 웃을 수 있게 진실규명 해 주세요’, ‘우리가 침묵하면 세월호는 계속됩니다’, ‘박근혜가 책임져라’ 등의 구호를 써들고 있었다. 같은 시각 화랑유원지에 설치된 세월호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에는 조문객이 1000미터(m) 가량 줄을 설 정도로 애도의 발길이 이어졌다.

엄마의 노란손수건은 지난달 28일 ‘촛불만 들 것이 아니라 행동에 나서야한다’는 생각으로 안산의 주부들이 주축이 돼 만든 온라인 커뮤니티다. 개설 8일째인 6일 카페회원수가 6500명을 넘어섰다. 공동대표 오혜란(46·여·회사원)씨는 "노란손수건은 자식을 위해 뭐라도 당당하게 나서는 ‘행동하는 엄마’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공동대표인 정세경(45·여·회사원)씨는 이날 집회 발언을 통해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구조해 줄 거라고 믿고 가만히 있었고, (사건 초기에) 부모님들은 구조된 줄 알고 가만히 있었다”며 믿음을 저버린 사회를 비판했다. 정 대표는 이어 “슬픔과 눈물을 가슴에 담아두지 말자”며 “용기를 가진 우리 엄마들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고, 국정조사 등 지속적인 진실규명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노와 슬픔에 빠진 엄마들, 이제는 행동할 때"

정 대표의 발언이 끝난 뒤 회원들은 합동분향소 앞으로 이동, 유가족 15명과 함께 ‘아이들을 부모님 품으로’라고 쓰인 종이카드 등을 나눠들고 30분간 침묵시위를 했다. 시위 도중 단원고 학생 박모군의 유가족과 친구들을 태운 조문차량이 합동분향소에 도착했고, 조문을 마치고 나온 30여명의 유가족은 박모군의 이름을 부르며 대성통곡했다. 노란손수건 회원들은 이 광경을 보며 함께 흐느끼거나 고개를 숙였다. 

▲ '엄마의 노란 손수건' 집회 참여자들이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 앞에서 유가족 15명과 함께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조한빛 박동국

‘잊지 않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라는 구호를 적은 노란 천을 아내와 함께 들고 침묵시위를 하던 이봉기(50·인천 남동구)씨는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희생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오늘로 분향소에 세 번째 방문한다는 이씨는 “피켓을 들고 행동에 나서는 일이라도 해야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미래의 학생들에게 ‘우리가 안전한 곳에서 살 수 있구나’라는 믿음을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영희(46·여·서울 강남구)씨는 “같은 엄마로서 너무 속상하고 슬펐다”며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비난했다. 김씨는 “생명이 죽어가는 데도 보고만 있는 정부를 보면서 처참한 기분이었다”며 “(해경과의 유착의혹을 받고 있는 민간구난업체) 언딘에 대해서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정부를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침묵시위를 마친 이들은 인근 단원고등학교까지 30분간 행진했다. 카페 운영진의 한명인 ‘정인맘’은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고 매일 울고만 있는 지인을 보면서 힘을 모아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며 “이런 행동이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는 “지금이 가정의 달 5월이라서 더 마음이 아프다”며 “노란손수건을 통해 서로 슬픔을 나누고 위로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보 낸 언론에도 책임 분명히 물어야

서울에서 왔다는 40대 남성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언론보도를 비판하며 “언론이 국민들의 입, 귀, 눈이 돼 진실을 위해 싸워줘야 하는데 지금 우리 언론은 그렇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명선(52·여·서울)씨는 ‘사건 초기부터 오보로 상황을 호도했다’며 현장에서 한국방송(KBS)의 인터뷰를 거절하기도 했다. 최씨는 “실종자를 구할 수 있었던 이른바 ‘골든타임’에 KBS가 중앙재해대책본부에서 잘못 알려준 정보를 그대로 보도해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줬고, 자극적인 표현을 쓰며 실종자가 다수 확인됐다는 오보를 했다”고 지적했다. 최씨는 “진상규명을 통해 언론보도에 대한 책임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날 집회 참여자들은 화랑유원지 제3주차장 부근 공원에서 출발해 합동분향소에서 침묵 시위를 가진 뒤 단원고 앞까지 침묵 행진을 했다. ⓒ 조한빛 박동국

침묵행진 맨 앞줄에서 회원들을 이끈 오혜란 공동대표도 사건발생 초기 구조상황에 대한 오보 등을 지적하며 “언론이 어떻게 이런 엄청난 오보를 낼 수 있느냐”고 질타했다. 오 대표는 “지금이라도 하루 빨리 실종된 아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도록 더 크게 소리치고, 더 크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올해 단원고를 졸업한 작은 딸이 있다. 2년 전 오 대표의 딸도 올해와 똑같은 일정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 참사가 더욱 끔찍하고 안타깝다고 한다.  

노란손수건 집회 참가자들이 30분을 걸어 도착한 단원고 정문에는 담장을 따라 희생자의 친구들이 쓴 손편지와 과자, 음료수, 과일 등이 놓여 있었다. 맞은편 가로수 사이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귀가 적힌 노란색과 검은색의 근조리본들이 빼곡하게 묶여있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멈춰 서서 쪽지의 사연을 보며 눈물을 훔치고 직접 종이에 애도하는 마음을 써 붙이기도 했다. 노란손수건 회원들은 정문 앞에서 단체로 묵념을 한 뒤 근처 올림픽 문화광장으로 이동해 각자 준비해 온 편지를 읽는 마지막 행사를 가졌다.

▲ (좌)단원고 정문에는 담장을 따라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간식과 편지들이 놓여 있었다. (우)맞은편 가로수 사이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근조 리본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 유선희

“못된 어른들만 속옷 바람으로 유유히 배를 빠져나가 버렸구나. 어쩔거나...대한민국 정부는 도대체 너희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

회원 ‘지효맘’은 떨리는 목소리로 편지를 읽다가 울음 섞인 절규를 토해냈다. 몇몇 회원들은 참았던 눈물을 다시 쏟았다. 이날 행사는 오후 5시 무렵 마무리됐다. 아침에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한모(40·여)씨는 “항상 집에서 불만만 가지고 있었을 뿐, 분노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부끄러워 나왔다”며 “인터넷 안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집회 참여자들은 안산 올림픽 문화광장에서 실종된 아이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했다. ⓒ 조한빛

전국으로 퍼지는 추모와 다짐의 물결

한편 세월호 참사에 분노하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추모집회는 전국 각지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일에는 청소년단체인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이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했다. 200여 명의 중고생들은 ‘친구들아 잊지 않을게’, ‘박근혜 대통령님 왜 살리지 못했나요’, ‘대통령님 왜 엄마아빠를 울리나요’ 등의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같은 날 저녁에는 ‘시민촛불 원탁회의’가 주최하는 추모 집회가 주최측 추산 5000여명(경찰추산 28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같은 장소에서 열렸다. 5일에도 서울 마포, 명동 등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가 열렸다. 

이에 앞서 지난 2일에는 안동청년회의소(JCI)가 경북 안동시 문화의 거리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를 열었고 지난달 30일 광주 금남로에서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광주지역본부주최로 500여명이 횃불 30여개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횃불시위’가 벌어지는 등 지역에서도 집회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오는 10일에는 안산에서 안산시민사회연대가 주최하는 ‘전국 집중 촛불집회’가 예정돼 있다. 이날 오후 3시에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인간띠를 만드는 ‘꼭 안아줄게’ 행사가 시작되고 오후 6시에는 안산문화광장에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린다. 엄마의 노란손수건도 이날을 ‘2차 오프라인 행동의 날’로 정하고 안산문화광장에서 모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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