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에 든 한반도 물] ⑦ 산골마을 수장하려는 영양댐

‘사기극! 영양댐!’
‘안 된다, 나 죽거든 측량해라.’


지금 경북 영양군 수비면 송하리에는 온통 살벌한 내용의 현수막들이 나부끼고 있다. 장파천을 가로지르는 송하교에는 컨테이너로 만든 초소가 군부대 입구처럼 삼엄하게 서있다. 자칫 사업이 추진되면 사라질 운명인 장파천. 물 속에 가라앉은 나뭇잎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맑은 개천에는 주민들의 울분이 가득 고여있는 듯했다.

▲ 수비면 송하리 입구에 걸린 현수막. ⓒ 이문예

주민들은 기습적으로 찾아오는 수자원공사 직원을 감시하기 위해 지난해 2월부터 마을 입구에 컨테이너로 초소를 세우고 두세 명씩 돌아가며 상주한다. 국토교통부가 3000억 원을 들여 장파천에 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평화로운 일상이 무너진 것이다.

컨테이너 안에 붙은 누렇게 바랜 근무편성표에는 주민들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어 그만큼 댐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이 다수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지율 스님이 쓴 ‘흘러라 장파천’이라는 응원 문구도 보였다.

순박한 농부를 투사로 만든 일방적 개발

지난 18일 <단비뉴스> 취재진이 초소에 찾아가자 주민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영양댐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사무차장 송재웅(45)씨는 “유량이 적은 낙동강 최상류까지 와서 댐을 짓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수심이 채 20cm도 안 되는 장파천에 높이 70m, 너비 480m 이상 대형댐이 들어설 예정이다. 댐이 생기면 218만㎡(66만평)에 이르는 땅이 물에 잠기고 67가구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계획으로 이 땅의 주민들을 쫓아내겠다는 거 아닙니까? 심지어 마을을 지키려는 주민들을 업무집행방해로 연행하기도 했습니다. 5년마다 바뀌는 정부가 대대손손 살아온 사람들을 마음대로 내쳐도 되나요.”

송씨는 댐 건설로 직접 영향을 받는 주민들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거의 배제됐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이 주인 대접을 받는 민주주의 의식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송씨도 처음에는 관청, 의회, 시민단체 등에 도움을 요청했다. 선거 때는 댐 건설에 반대하는 후보를 지원하기도 했다.

송씨는 “가장 중요한 건 공동체를 지키려는 주민들의 의지”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스스로 공부를 시작했다. 정부부처에서 나오는 보고서를 읽고, 정보공개 청구를 해서 댐 관련 자료를 모았다. 법적, 행정적 제재를 통해 주민들을 압박하는 정부기관에 제대로 대항하기 위해서다. 긴 싸움은 순박한 농부를 투사로 만들었다.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순박한 사람들이라 예전에는 군청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말단 공무원 앞에서도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이제는 댐을 짓지 말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군수 앞에서도 거침이 없어요. 자기 힘을 자각했다는 게 큰 성과인 것 같아요. 함께 저항하면서 연대의식 같은 것도 느꼈죠. 살아오면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에요.”

수몰 이전에 두 쪽 난 마을 공동체

투쟁 과정에서 오랫동안 유지된 마을 공동체가 파괴됐다. 소수 주민이 보상금을 받아 부족한 농가 소득을 보충하려 댐 건설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농촌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깊은 김형중(61)씨는 이십여 년 전 송하리에 정착했다. 김씨가 자리 잡은 이십여 년 전만 해도 고추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소박하게 사는 화목한 마을이었다. 김씨는 가까운 이웃이었지만 찬반 의견이 갈려 말 한마디 안 하게 된 경우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대책위 주민들. 김형중씨가 사진첩을 넘기며 장파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이문예

“작년 같은 경우에, 영양댐공동추진위원회가 사무실을 차리고 궐기대회를 하던 날 큰 충돌이 있었어요. 댐 건설을 추진하는 수자원공사나 영양군청에서 여길 쳐들어오지 못하니까, 찬성하는 동네 주민들을 앞장세웠어요. 그러면 동네 주민들끼리 싸우는 모양이 되는 거죠. 이런 기가 막힐 일이 어디 있습니까? 서로 욕하고 싸우고 삿대질하고. 그 상처가 워낙 심하게들 나서 가령 댐이 안 된다 해도, 혹은 된다고 해도, 이 상처가 치유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김씨는 “국토부와 영양군이 한 마을을 철저하게 깨부수는 것에 너무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그는 “공동체 정신이 살아 있는 시골 마을들이 존속해야 한다”며 “이런 마을 공동체들이 깨져버리면 더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동네가 완전히 절단 났어요. 여기서 평생 같이 살아오고, 아침에 눈 뜨면 정답게 인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얼굴도 안 봐요. 그 책임을 누가 집니까?”

“앞으로 귀한 것은 콘크리트가 아니죠”

▲ 가을을 맞은 장파천. ⓒ 영양댐반대대책위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갖는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수몰지역 주민 대부분은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대책위 공동위원을 맡은 조재영(49)씨는 송하리보다 상류 마을인 주파리의 토박이다. 댐이 건설되면 조씨 마을도 물에 잠긴다.

“경치 좋고 물 좋은 우리 고장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여기는 고속도로가 없어서 좋아요. 길은 차만 다니면 되는 겁니다. 구불구불하든 쭉쭉 뻗었든 상관없어요. 사방천지가 콘크리트인데, 사실 귀한 것은 콘크리트 아닌 것에 있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휘돌아나가던 실개천도, 농부가 삽을 씻던 저문 강도 이제 옛 시구로만 남게 되는 건가? 청계천에서 시작된 삽질은 4대강을 온통 파헤쳐놓더니 ‘지천(支川)정비’라는 미명으로 전국의 개천들을 콘크리트로 싸바르고 있다. 굽이굽이 흘러가며 온갖 생명을 키우는 게 하천의 역할이고 본모습이건만 ‘직강(直江)공사’라는 이름 아래 여울과 둔치를 없애는가 하면, 보를 건설해 물길을 막고 물과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친수시설’을 마구 건설해 하천을 괴롭힌다. 녹조 현상은 하천을 못살게 구는 무지막지한 개발주의에 대한 마지막 경고인지도 모른다. <단비뉴스>가 단군 이래 최대 시련에 처한 물길의 현장들을 찾아 나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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