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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국가 재난, 대통령 책임이다
[이봉수 칼럼]
2014년 04월 24일 (목) 22:28:51 이봉수 hibongsoo@hotmail.com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해군에서 함정 병과 장교로 복무하던 시절 들은 얘기가 요즘처럼 절실하게 떠오른 때는 없었다. “위기 때 최고의 배(ship)는 리더십(leadership)이다.” (The best ship in times of crisis is leadership) 바다를 제패한 영국과 미국의 해군이 사관을 양성할 때 쓰는 금언이라고 한다.

미국 해군사관학교 기숙사 로비에는 “배를 포기하지 말라”(Don’t give up the ship)는 구호가 새겨져 있다. 1813년 영·미전쟁 때 체사피크호 함장 제임스 로렌스가 죽어가면서 한 명령이다.

그런 리더십과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 때문인가? 리더십의 상징이라 할 만한 미국 대통령을 60년대부터는 해군장교 출신이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35대 케네디부터, 존슨, 닉슨, 포드, 카터, 41대 조지 부시에 이르기까지 40대 레이건을 뺀 6명이 모두 해군장교 출신이다. 2차대전 때 해군사관생도였던 카터를 빼고는 모두 참전해 리더십이 뭔가를 보여주는 일화를 남긴 이가 많다. 우리나라는 병역을 기피하지 않고 입대해, 탈영하지 않고 제대한 대통령이 한 사람밖에 없으니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해난사고에서 육상동물인 사람이 살아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위험’(risk)이라는 영어 단어 자체가 ‘암초’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 항해용어에서 유래했다. 영국에서 수영은 ‘국가적 교육과정’(national curriculum)에 포함돼 초·중·고교에 작은 옥외수영장 정도는 갖추게 한다. 독일 등에서도 맨몸으로 물 위에 떠있는 생존훈련을 시킨다. 해양훈련이 돼있지 않으면 공포감 자체가 ‘죽음의 신’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더욱 바다를 아는 뱃사람에게 리더십과 희생정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영국처럼 ‘뱃사람 정신’이 강한 나라의 해난사고에서 아이와 여성을 구명보트에 태워 보내고 선장과 선원들이 배와 운명을 같이하는 사례가 종종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버큰헤드호와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이 대표적이다.

세월호 침몰은 리더십과 의무감 부재의 한국사회가 얼마나 처참하게 가라앉고 있는가를 보여준 사건이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에 속하는 사람일수록 의무감이 부족하고 비리에 연루된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 선장만 예외일 수는 없다. 귀한 신분일수록 의무를 다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높은 사람일수록 빨리 위험에서 탈출하고, 유식한 사람일수록 그 지식을 자기 이익을 위해 쓰는 사회가 우리나라다.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침몰 이후 허둥대는 정부의 구조활동과 대책, 상식조차 모자라는 언론보도와 근시안적 원인진단은 앞으로도 한국에서 후진국형 대형 인명사고가 빈발할 것임을 예고하는 흉조들이다.

언론은 이번 사건 보도에서 저널리즘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았다. 저널리즘의 표준을 배우지 않은 채 기자가 되고 재교육도 받지 않으니 한국 저널리즘이 이 꼴인가? 재난보도는 인명을 다루는 건데도 추측보도가 난무했고, 오열하는 유가족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잔인한 질문으로 슬픔을 더하는가 하면 인터뷰로 유언비어를 전파하기도 했다.

언론윤리를 팽개치고 취재경쟁에만 몰입하는 한국의 사건 보도 행태는 가족을 심각한 2차 피해자로 만든다. 미국에서는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 때 연방수사국(FBI)이 범인 조승희씨 가족을 비밀장소에 보호하고 언론들도 가족에 대한 보도를 삼간 반면 우리 언론은 가족의 사생활까지 까발렸다. 런던 지하철 테러 사건 때는 영국에 있었는데, 전 세계 유수 언론들이 폭발장소 수 등을 과장 보도하는데도 BBC는 취재지침을 준수해 확인된 4곳만 정확하게 보도함으로써 국민들이 결국 BBC로 채널을 돌리게 했다.

세월호 침몰 다음 날 신문은 거의 다 사고 원인을 좌초로 보도했는데 사실 물위로 솟아있는 멀쩡한 선수를 보면 상식으로도 좌초가 아님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일부 긁힌 자국이 보였지만 녹이 슨 걸로 미루어 오래된 것이 분명했다. ‘항해사가 조타키를 잡았다’고 보도한 언론도 많았는데, 항해사는 조타수에게 지시할 뿐 조타키를 잡는 이가 아니다.

경향신문은 사고원인 분석 기사(18일자 4면)에서 ‘사고해역이 왼쪽으로 뱃머리를 돌려 가는 지점’이라며 ‘세월호가 좌현으로 기운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썼다. 그러나 왼쪽으로 뱃머리를 돌리면 우현으로 기우는 게 배인데,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다.

보수신문과 방송의 ‘박근혜 대통령 지키기’는 사건 보도마저 정파성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들 언론만 보면 ‘대통령만 고군분투’하는데 관료들이 문제이며, 대통령은 박수를 받는데 총리와 장관은 물병 세례와 야유를 받았다. 대참사에도 박 대통령 지지율은 견고하다고 보도하는가 하면, “구조작전 잘 되면 오히려 지지율이 오를 수 있다”는 정치평론가까지 등장시켰다.

박 대통령이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엉뚱한 질문을 하자, 신문들은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참모들에게 화살을 돌렸다.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게 아니라 배 안에 갇혀있다는 것은 TV를 지켜본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구명조끼는 만능이 아니다. 헤엄칠 줄 아는 사람에게는 탈출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배가 기울고 선실에 물이 차면 탈출로가 물속에 있을 수도 있는데 구명조끼는 잠수를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경향신문 김상민 기자

▲ ‘위기 때 최고의 배(ship)는 리더십(leadership)’
박 대통령 ‘제3자 화법’은 입헌군주제 ‘여왕 화법’
국민의 사고사 줄이려면 대통령이 국정기조 바꿔야

▲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위험 무릅쓰는 자본주의 사회
 거기에 제동 거는 게‘위험사회’에 대처하는 정부와 언론의 임무

박 대통령은 ‘컨트롤타워’ 부재를 질책했는데, 대통령중심제에서 최고의 컨트롤타워는 대통령 자신이다. 박 대통령의 ‘제3자 화법’은 입헌군주제인 영국의 ‘여왕 화법’이다. 여왕은 권한이 없으니 책임을 남에게 돌려도 된다.

박 대통령은 “용납될 수 없는 살인과도 같은 행태였다”고 선장을 비난했다. 선장과 불법행위자, 그리고 배임을 한 관료들도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대통령이 자신의 과오도 사과했더라면 ‘지위 불문 책임론’이 더 엄중하게 들렸을 터이다.

박근혜 정권은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꿨으나 ‘안전’보다는 ‘정치’를 더 우위에 뒀다. 초대 안전행정부 장관에 전문성도 없는 측근 정치인 유정복씨를 임명하더니 그마저 업무를 파악하자 침몰 사고 얼마 전 인천시장 후보로 차출해버렸다.

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민의 사고사를 줄이고자 한다면 국정기조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규제완화를 몰아붙이고 있는데, 이번 사고도 선박 분야 규제완화가 ‘고물선’을 들여와 증·개축하게 만든 주범이었다. 지금도 일본의 퇴역 여객선들이 페인트칠만 곱게 한 채 우리 연안항로를 누비고 있다.

세월호에 온 국민 시선이 쏠린 22일에도 국무회의에서는 3개층까지 아파트 수직증축을 허용하는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됐다. 현대건설 출신 이명박 대통령도 꺼린 아파트 수직증축을 건설경기를 활성화한답시고 허용해버린 것이다. 삼풍백화점 붕괴도 증·개축이 주범이었다.

세월호 침몰 원인 중 한국사회가 가장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부분은 한국의 노동시장을 비정규직 위주로 바꿔놓은 것이다.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대통령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도 있지만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미명 아래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바꾸는 일이 줄기차게 진행돼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은 연간노동시간과 저임금노동자비율 1위이고 비정규직비율 2위다. 10만명당 산재사망자수 1위는 그 결과일 따름이다.

선박의 안전을 위해서는 선장의 권위있는 통솔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기관에 상관이 오면 상석에 앉히는 게 관행이지만, 함정의 함장석에는 대통령도 앉지 못하게 한다. 이번 침몰에도 ‘월급 270만원짜리 1년 계약직 선장’이라는 통솔이 안 되는 고용구조가 사고 요인으로 도사리고 있었다. 선장과 선원들이 자신의 고용도 불안한데 기업주의 무리한 선적요구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경향신문이 19일자에 맨 먼저 보도한 대로 ‘안전핵심 갑판·기관부 절반이 비정규직’인데 ‘위급상황 대응 취약’은 필연이었다.

이제는 안전이 상품이 되는 시대다. 항공업계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 콴타스항공이 안전을 상표로 내세워 성공했다. ‘2013년 안전한 항공사 순위’에서도 1위를 한 콴타스는 1951년 이래 사망사고가 없었다. 콴타스는 보유 비행기의 평균연령을 6~7년 정도로 유지하면서도 안전점검과 보수를 전담하는 자회사에 매출액의 10% 이상을 지원하고, 객실승무원도 사고에 대비해 힘센 남자를 많이 채용한다.

안전에 대한 투자를 낭비라고 생각하는 대다수 우리 기업들은 산업현장의 안전관리자 70%를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안전을 책임져야 할 엔지니어링·건설·감리회사 중에는 기술사·기사들을 고용하지 않고 돈 몇 푼 주고 자격증을 빌려서 형식요건을 맞춘 회사도 수두룩하다. ‘비정규직 1000만 시대’는 안전을 염두에 두기는커녕 직업 자체에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노동자가 절반이 넘는다는 말이다. 이들이 안전점검을 하고 배와 버스를 몬다. 이런 불안전지대를 정부와 언론이 방치하고 있다가 사고가 나면 ‘애도 무드’나 조성하고 끝내는 행태를 언제까지 반복할 건가?

이번 참사의 원인을 개인과 기업에만 돌리면 사고는 또 난다. 자본주의 사회는 눈앞에 보이는 이익과 보이지 않는 위험 사이에서 위험을 무릅쓰게 돼 있다. 거기에 제동을 거는 것이 ‘위험사회’에 대처하는 정부와 언론의 임무다. 우리는 운명공동체임을 강조할 때 ‘같은 배를 탔다’고 말한다. 좋건 싫건 한국호의 선장은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의 책임이 가장 무거운 이유다.


* 이 기사는 <경향신문>과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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