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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훨씬 더 강화해야 옳다
[이봉수 칼럼]
2014년 04월 03일 (목) 22:34:41 이봉수 hibongsoo@hotmail.com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내가 영국에 살던 2004년 무렵 삼성은 영국인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다. 영국인들이 가전제품 매장에서 삼성·LG 제품에 감탄사를 연발할 때는 나도 덩달아 으쓱했지만, 영국 언론이 ‘삼성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식으로 보도할 때는 창피했다.

삼성은 여왕까지 초청해 거창하게 준공식을 한 윈야드 공장을 불과 8년여 만에 폐쇄해 영국인들의 반감을 샀다. 삼성은 대대적인 투자를 하겠다며 82만여㎡(약 25만평)의 땅을 확보하고, 영국 정부에서 1050만파운드의 보조금까지 받은 터였다.

이건희 회장이 “한국에 공장 지으려면 도장이 1000개나 필요할 정도로 규제가 많다”면서 영국에 지은 공장에 그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삼성은 “인건비가 동유럽에 비해 5~6배 이상 들어가 철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지만, 영국 언론은 삼성이 영국의 기업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영국은 보조금까지 주면서 기업을 유치하지만, 노사·환경·회계·공정거래 관련 기업 규제는 상당히 까다롭다. 선진국은 대부분 그럴 뿐 아니라 불법행위를 엄단한다. 법은 노사 쌍방에 엄격해 노조 설립을 방해하거나 활동을 탄압하는 일은 상상도 못한다. 윈야드 공장의 인건비 상승 역시 삼성은 노조 탓으로 돌리고 싶었을 터이다. 청와대 규제개혁회의에 초청된 영국대사가 영국을 규제개혁의 모델로만 얘기한 것은 유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를 ‘암 덩어리’로 매도하면서 규제 완화 광풍이 불고 있다. '미친 바람'의 특징은 필요한 것까지 날려버린다는 점이다. 규제개혁회의는 그동안 규제 철폐에 목을 매왔던 시장지상주의 논객과 민원인 등이 집결해 규제를 ‘악의 축’으로 단죄한 대국민 쇼였다. 물론 불필요한 규제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정부가 그냥 없애면 되는 일이었다. 회의에서 거론된 ‘액티브 엑스’도 여야 합의로 법 개정안이 올라가 있고 업계도 개편을 추진 중이었다.

요란한 쇼를 벌이는 와중에 아무런 견제 없이 슬쩍 부활한 것이 바로 보수의 ‘줄푸세’ 본능이었다. 지난 대선 때만 해도 사회 양극화와 무소불위 경제권력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박근혜 후보도 복지 확대와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역시 본능을 감추지는 못했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푸’는 쪽으로 일대 전환을 해버린 것이다. ‘공약 사기’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할 판에 오히려 남을 질책하고 나선 셈이다.

논란의 귀결은 대개 누가 이슈를 선점하느냐에 좌우된다. ‘도장 1000개’나 ‘암 덩어리’처럼 무리한 표현일수록 한번 규정되고 나면 이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 대통령이 ‘규제는 쳐부숴야 할 원수’라고 단정하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아래 ‘착한 규제’ 논리가 먹혀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정감사 대상인 산업연구원장까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황사’라고 비난했다. 한국 사회에 규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성찰이 일언반구도 나오지 않은 ‘회의(會議)’는 ‘여럿이 모여 의논하는 자리’가 아니라 ‘규제 성토대회’였고 ‘보수 부흥회’였다.

 

   
 

▲ ‘규제 성토대회’인가 ‘보수 부흥회’인가
망가지는 국토,
황폐해지는 지방, 규칙 작동 않는 시장
방치된 안전, 양극화한 사회
규제 완화보다는 규제 강화가 더 급하다

경향신문은 규제개혁회의 이후 일관되게 제동 없는 규제 완화의 문제점을 지적해왔다. 특히 회의에서 거론된 곳에 기자들이 직접 나가 보고 쓴 현장기사들은 진보언론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관광호텔을 추진하고 있는 학교 지역(3월28일자), 녹지를 공장용지로 바꾸려는 여수산업단지(3월28일자), 농가 옆에 공장이 밀집한 김포 대곶면(4월1일자), 공원을 만들기 위해 이전되는 공장들이 ‘민원’을 제기한 인천내항 지역(4월1일자) 등의 실태를 르포 형태로 보도함으로써 기업만이 아니라 주민의 목소리를 균형 있게 전달했다.

아쉬웠던 점은 ‘줄푸세’로 정책기조를 전면 수정하기 위한 대대적 선전활동인 규제개혁회의의 성격을 처음부터 제대로 짚어주지 못한 것이다. 첫 회의를 보도한 경향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 “할 수 없는 것이면 ‘손톱 밑 가시’ 선정 왜 했나, 어떻게든 되게, 창의적으로 규제 풀라”(3월21일자)는 거였는데, 얼핏 ‘국정홍보신문’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 비판은 해설이나 사설에서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회의의 진짜 의도를 간파하고 그것을 폭로하는 일도 ‘사실’ 보도에 해당하는 거 아닐까? 영국 ‘가디언’이나 ‘인디펜던트’ 등 ‘의견(opinion)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유럽 권위지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기도 하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7시간 동안 방송 3사와 종합편성채널, YTN 등 케이블방송까지 총동원해 선전전을 편 것은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도 하지 않았던 짓인데 적절한 지적이 없었다. 정부가 섭외한 중소상공인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대기업 규제 완화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려는 포석으로 보였다. 민원인의 준비된 질의에 장관의 준비된 답변이 반복되는 ‘역할극’을 국민이 7시간이나 본 셈이다.

이 국면에서 진보언론의 임무는 불필요한 규제로 지목된 것에 대한 ‘진상규명’을 넘어 우리 사회에 왜 규제가 필요하고 어떤 분야에서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하는지에 대해 공세적으로 의제설정을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한국은 어떤 사회인가?

‘가디언’은 신문 맨 안쪽에 연결된 두 면을 펼쳐 ‘이번주의 그래픽’이라는 이름 아래 각종 통계치를 보여줌으로써 힘 있게 의제설정을 한다. 기가 막힌 것은 한국이 너무나 자주 1·2등 아니면 꼴찌에서 1·2등을 한다는 사실이다. ‘가디언’ 모니터링 결과와 최근 통계들을 합한 거여서 통계연도가 다르지만, 한국이 세계에서 1등을 한 것은 너무나 많다. 인터넷 분야 1위 등 좋은 것도 꽤 있지만 나쁜 게 대부분이다. 저출산율, 자살률, 40대 암사망률이 세계 1·2위를 다투고, 1인당 증류주 소비량, 곧 위스키·소주 등 독주 소비량이 제일 많은 데가 우리나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10만명당 산재사망자, 연간 노동시간, 남녀 임금격차, 저임금 노동자 비율, 노인 빈곤율이 1위인데도, 사회복지 지출은 꼴찌 수준이다. ‘선진국 클럽’에 들었다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면서도 저임금을 받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암에 걸리거나 아니면 독주라도 마시면서 버텨야 하는 게 우리의 노동현실이다.

한국 사회가 그만큼 역동적이라는 증거도 되지만, 너무 경쟁적이고 과로하고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고, 양극화한 사회임을 말해준다. 정부에 맡겨진 책무는 이런 불안한 노동 현장에 안전을 도모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고 양극화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상당 부분 규제를 통해 달성할 수밖에 없는 정책 목표들이다.

박 대통령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투자를 늘리는 방법은 규제 완화뿐”이라는 무지막지한 말을 했는데, 규제 완화는 개인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대신 사회에 비용을 전가하는 게 많다. 환경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환경영향평가제가 형식적으로 운용돼 산허리를 허물고 하천에 콘크리트를 싸바르는 공사가 전국에서 계속 진행되고, 학교 근처에까지 러브호텔이 들어서려 한다. 우리나라 호텔 중에는 숙박업보다는 이상한 용도로 밤낮없이 돈을 버는 데가 많다. 호텔 주차장에 번호판 가려주는 천막을 드리운 나라가 세계 어디에 또 있을까?

도시의 밤을 대낮처럼 밝히는 간판과 전광판 등 빛공해와 국도변에 난립한 음식점 간판공해 역시 세계 1위일 것이다. 정부가 매사를 사적 이익 추구에 맡겨두고 공적 책무를 소홀히 한 결과다. 그린벨트와 수도권 공장입지 규제마저 대폭 완화할 태세인데 안 그래도 심각한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 황폐화를 더 부추기겠다는 건가?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강화해야 할 규제가 완화해야 할 규제보다 훨씬 많다. 환경 규제뿐 아니라, 시장 규칙을 확립하는 공정거래와 소비자 보호 규제, 골목상권을 넘보는 대기업 등에 대한 독과점 규제, 금융 규제, 안전 규제, 사회적 약자 보호 규제 등이 그런 것들이다. 진보언론은 규제를 훨씬 더 강화해야 한다는 공세를 펼 때다.


 

* 이 기사는 <경향신문>과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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