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가족단위 재활용품 직거래 ‘제천아름다운주말장터’

“아까 어떤 엄마가 1000원이라고 해서 온 거예요. 그냥 1000원에 주세요.”

“아유~ 그럼 재료비도 안 남아요. 대신 여기 스카프 같이 드릴게.”

29일 오전 11시 충북 제천시 왕암동 한방바이오엑스포 공원. 노란 수선화가 한 떨기씩 심어진 화분 판매대에서 흥정이 한창이다. 가격을 깎으려던 젊은 주부는 ‘단돈 2000원’에 수선화 화분과 스카프를 손에 넣었다. 이날 오후 6시부터 비가 내릴 것이란 예보와 달리 장이 시작되기 20분 전인 9시 40분 무렵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천시 취소’라는 공지사항은 아랑곳없이 개별 판매대 위로 각양각색의 우산과 천막이 펼쳐졌다. 손님들도 ‘빗방울쯤이야’하는 표정으로 구경을 다녔다. 노란 기린이나 빨간 사자가 그려진 우비를 입은 아이들도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 29일 시범적으로 열린 제천주말장터에서는 집에서 쓰던 물건, 취미로 만든 인형 등 다양한 물건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이청초 조수진

세금으로 만든 시민공원, 경제 교육의 장으로

봄비와 함께 시작된 ‘제천아름다운주말장터’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없이 시민들의 기획과 참여로 이뤄졌다. ‘어미모(母)’, ‘자작문화예술협동조합’, ‘제천시학부모연합회’ 등 10여 개의 시민단체가 주도했다. 장터는 각 가정에서 쓰던 물건들을 파는 알뜰시장과 취미활동 등을 선보이고 참여를 유도하는 자작예술코너로 구성됐다. 알뜰시장에서는 책과 신발 같은 중고생활용품, 어린이 내복, 엘피(LP)음반 등이, 자작예술코너에서는 코바늘 뜨개질 인형, 클레이(놀이용 진흙) 만들기, 향초 만들기 등이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한방바이오엑스포 공원이 ‘뜨거운 감자’예요. 400억원 넘게 들여 지어놨는데 공간 활용이 안 되고 있으니까요. 이번 장터 기획은 시민들이 이 공간을 잘 한 번 이용해보자 하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어요.”

이번 행사를 기획한 지역공동체 자작문화예술협동조합 엄태석(47)이사장은 제천 시내에서 곧바로 오는 버스도 없고 시간도 30분 이상 걸리는 이 공원을 굳이 장터로 잡은 이유를 “비싼 공간을 놀리기가 아깝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행사를 기획한 지 한 달도 안 됐지만 시민단체들의 높은 참여의지 덕에 성공적으로 열릴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 주말장터를 찾은 김연실(42)씨가 아들과 함께 물건의 가격을 정하고 있다. ⓒ 조수진

“점박이 씨디(CD)는 1000원으로 할까? 2000원으로 하자고? 여기 연필이랑 색연필은 학림이가 구경하러 온 사람들 중에 주고 싶은 아가들에게 나눠줘.”

붉은 점퍼를 입은 주부 김연실(42·제천 하소동)씨가 푸른 점퍼를 입은 아들 이학림(9)군과 마주앉아 물건 가격을 정하고 있다. 평상 위에는 동화책 20여 권과 작은 운동화 세 켤레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책은 어른 손님에겐 1000원, 어린이 손님에겐 500원에 팔 생각이라고 한다. 학림이는 노란색과 주황색과 보라색, 펜을 바꿔가며 스케치북에 물건 이름과 가격을 꾹꾹 눌러썼다. 김씨는 “우리 애가 한글 뗄 때 도움이 많이 됐던 책을 주로 갖고 왔다”며 “다른 아이도 이 책으로 한글 공부를 재밌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물건이 다 팔리면 저 옆에 수제 수세미를 사러 갈 생각”이라며 웃었다.

“공책 2권, 동화책 2권 고르면 얼마지? 거스름돈은 얼마 드려야 해?”

주차장 근처 평상에서는 열 살 동갑내기 두 여자아이가 물건을 직접 팔고 있다. 공책 위에는 ‘100냥’, 동화책에는 ‘500냥’이라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가장 비싼 물건은 1000원짜리 병원놀이 장난감이었다. 원인숙(48·제천 청전동)씨는 딸과 딸 친구가 계산하는 것을 지켜보며 가끔씩 “너무 싼 것 아니냐”고 한 마디씩 던졌다. 아이들이 가격을 너무 낮게 정한 게 살짝 아쉬운 표정이다. 아파트 방송을 통해 이 행사를 알게 됐다는 원씨는 “아이에게 경제 개념을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해서 나왔다”며 “집에서 안 쓰는 물건들을 가지고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재활용을 배우고 용돈까지 벌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며 만족해했다.

▲ 이날 장터에는 판매 외에도 아이들을 위한 간이 도서관이 열렸다. ⓒ 조수진

시민들의 능동적 참여가 활기 더해

먹거리 코너와 어린이 내복을 파는 주황색 천막 사이에서는 하소아동복지관 ‘내보물1호도서관’ 백영숙 관장이 40여 권의 책을 평상에 진열해 놓고 한 남자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백 관장은 “엄마 따라 나온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며 “매 행사마다 꾸준히 찾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터에는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제천 젊은 엄마들의 모임 ‘어미모’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들을 위해 미끄럼틀이 있는 약 13평 크기의 에어바운스(공기주입식 놀이터)를 준비했다.

손재주가 좋은 주부들의 솜씨도 구경할 수 있었다. 손뜨개 동호회 ‘아미구루미(코바늘인형)’ 강사인 박옥순(47·제천 화산동)씨는 회원들이 직접 만든 물건들을 판매했다. 뜨개 인형, 레이스 장식, 주머니 등이 있었는데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코바늘로 직접 뜬 알록달록한 수세미였다. 손바닥 크기의 어린이용 수세미는 500원, 어른용 수세미는 1000원이었다. 드레스, 곰, 토끼 등 다양하고 예쁜 모양에 값도 싸고 거품도 잘 나서 장을 열자마자 물건이 동날 정도였다. 박씨는 “예전에 다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갖게 된 취미가 손뜨개”라며 “물건 사러 왔다가 동호회에 가입하는 손님도 꽤 된다”고 말했다. 재봉틀로 만든 제품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 ‘두돌베베’의 운영자 박경숙(37·제천 장락동)씨는 가방과 손수건을 진열 판매했다. 캔버스가방과 아기자기한 무늬가 들어간 손수건은 많은 아이와 엄마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 손뜨개 용품 코너에는 '아미구루미' 동호회원들이 직접 만든 인형, 수세미, 모자 등이 진열돼 있었다. ⓒ 조수진

이번 주말장터에 회원들이 가장 많이 참여한 어미모의 김태린(37) 회장은 “제천은 정적인 도시라서 엄마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잘 없다”며 “장터 행사처럼 엄마들이나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주말장터가 잘 돼서 시에서 좀 더 많은 지원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10월까지 매달 두 차례 열릴 예정

한편 처음으로 열린 이번 행사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1만원을 내고 20분간 한방발마사지를 받았다는 황진선(33)씨와 남편 정선철(33)씨는 “좋은 행사인 만큼 홍보가 더 잘 됐으면 좋겠다”며 “다음번에도 찾을 생각인데 그 땐 규모도 더 커지고 물건도 더 다양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평소 벼룩시장을 즐겨 찾는다는 이모(29·제천 신월동)씨는 “비도 피할 수 있고, 해도 가릴 수 있는 천막이 (제대로) 설치돼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사 기획자인 엄태석 이사장은 이에 대해 “(시로부터) 지원금이 전혀 없고 자발적으로 자금을 모아 진행을 하다 보니 홍보나 설비 면에선 부족한 점이 있었다”며 “오늘 장이 끝나면 단체끼리 모여 의견을 나눠서 점차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서 판매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기금(수익금의 약 10%)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위한 공익적 펀드로 쓰인다고 주최 측은 밝혔다. ‘제천아름다운주말장터’는 이날 시범운영을 시작으로 오는 10월까지 둘째, 넷째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계속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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