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학교폭력 대책 ① 속수무책 교사들

초·중·고등학교 교실 안팎에서 벌어지는 주먹질과 집단따돌림 등 학교폭력은 아이들의 영혼에까지 상처를 내고 때로는 탈선이나 자살 등의 비극으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일찍부터 입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대다수 교육현장에서는 인성과 인권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교육당국의 대책도 실효성 없이 겉돌고 있다. 아이들이 폭력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청년기자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담았다.(편집자)   

 ‘대신 욕해드려요.’

전라남도 광양시의 중·고등학생들 사이에 잘 알려진 페이스북 페이지 이름이다. 상대방의 이름과 하고 싶은 욕설을 ‘쪽지’로 보내면 운영자가 그 내용을 페이지에 대신 게시해준다. 각 게시물 아래에는 그 욕설을 지지하거나 반박하는 댓글이 달린다. “손OO 살기 싫으면 나가뒤지던가”라는 게시물에는 “저 XX 믹서기에다가 갈아버려야 돼” 등 갖가지 막말이 포함된 75개의 댓글이 달렸다. 반복적으로 공격당하는 이름도 있고 학교명과 학년, 실명까지 다 드러나는 글도 있다. 게시물이 뜸해지면 운영자가 “제보가 많이 없네요 ㅠㅠㅠ 많은 제보 부탁드릴게요”라며 독려하는 글을 올리기도 한다. 현재 페이스북에는 ‘대신 욕해주는’ 페이지가 광양, 홍성, 아산 등 지역별로 5개가 있고 그 중 3개는 수백명이 ‘팔로우(구독)’하는 등 적지 않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발달이 만들어낸 ‘신(新) 학교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 '대신 욕해드려요' 페이스북 페이지. 학교명과 학년은 물론 실명까지 드러나는 글도 있다. 학교폭력 유형 중 최근 SNS상에서 일어나는 사이버괴롭힘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 페이스북

진화하는 학교폭력, 대책 없는 교육현장

지난해 교육부가 전국 17개 시·도의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학생 약 454만명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실시한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런 ‘사이버 괴롭힘’의 비중이 9.7%로 2011년 1.8%, 2012년 4.7%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신체적 괴롭힘 위주였던 학교 폭력이 이렇게 정서적 괴롭힘 등 다양한 유형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학교현장의 예방 혹은 대응책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친구를 때리는 학생 등 ‘전통적인 학교폭력‘에 대해서도 교사들은 무력감을 느낀다.

   
▲ 한 고등학생이 '학교폭력을 추방합시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지나가고 있다. 학교폭력은 다양한 유형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학교현장의 예방 혹은 대응책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 조수진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죠,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도 없고요.”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윤정현(32·여·가명)교사는 몇 해 전 중학교에 근무할 때  툭 하면 폭행 등 사고를 치는 ‘문제아’의 담임을 맡은 일이 있다. 새벽이면 학생으로부터 ‘죽고 싶다’는 전화가 20~30통씩 걸려오고, 경찰서에도 수시로 불려가는 등 일 년 내내 고생했다. 다른 업무는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한 해를 보내다보니 ‘교사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윤 교사는 한동안 이 문제로 우울증에도 시달렸다고 털어 놓았다.

“(이전에) 문제 학생을 지도해 본 경험도 부족했고, 물어보거나 도와줄 사람도 없었던 점이 가장 아쉬웠어요. 상대적으로 중학교에는 연차가 낮고 젊은 20대 교사가 많거든요. 중학교가 고등학교보다 학교 폭력이 심한 이유 중 하나는 젊은 교사의 미숙한 대처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 '2013 학교폭력 유형조사’에 따르면, 학생 1만 명 당 학교폭력 건수는 중학교가 155.5건으로 가장 높았고 고등학교는 55.7건, 초등학교는 5건이었다. 전문가들은 중학생 폭력건수가 높은 이유를 신체와 정서의 성장속도 차이와 신체 성장에도 개인차가 큰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조수진

경기도교육청 의뢰로 한신대 산학협력단이 분석한 ‘학교폭력 유형조사’에 따르면, 2007년 3월부터 2013년 6월까지 학생 1만 명 당 학교폭력 건수는 중학교가 155.5건으로 가장 높았고 고등학교는 55.7건, 초등학교는 5건이었다. 중학생 사이에서 폭력이 특히 많은 것은 신체와 정서의 성장속도에 차이가 있고, 신체 성장에도 개인차가 큰 시기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경기도교육청 학교인권지원과 강인식 장학사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신체가 급격히 성장한다"며 "신체가 빨리 발달한 학생들은 발달이 느린 학생을 무시하기 쉽다"고 말했다.

입시 치중하는 학교, 전문상담교사도 진학지도에 몰두 

“상담선생님이 있으면 뭐하나요, 고민 대신 성적을 말해야 하는데…”

윤 교사는 같은 반 친구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했던 그 학생을 지도하기 위해 당시 학교의 전문상담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했다. 상담교사가 주로 하는 일은 아이들의 진로나 진학 상담이지, 고민 상담이 아니었다. 중학교에까지 진로진학상담이 확대되고 있는 이유는 고등학교가 인문계, 과학고, 외고, 국제고, 자율형사립고, 특성화고, 예술고, 마이스터고, 체고 등 매우 다양해져 고입제도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윤 교사는 “대부분의 중·고등학교에는 전문상담교사가 있지만 그들의 역할은 진로진학상담에 집중돼 있어 결국 학교폭력 문제는 온전히 담임교사의 몫이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윤 교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통해 경험 있는 교사를 수소문하고, 학교폭력을 다뤄본 교사들이 교류하는 온라인 카페에 가입해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 학교폭력 전문 상담의 필요성은 증가하고 있지만, 전국 학교에 배정된 상담사는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이다. ⓒ KBS뉴스 화면 갈무리

“주먹구구로 해결책을 찾아다니면서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이 학교폭력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느꼈어요. 성적이나 진로 대신 학교생활, 따돌림 등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쓸데없는 일처럼 여겨지고 있는 한, 학교폭력 문제를 예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경북의 한 중학교에서 가르치는 신모 교사도 “대부분의 학교에는 아이들이 폭력 문제 등을 상담할 전문교사가 없거나 많아야 1~2명에 그치고, 전문상담교사가 아닌 교과과목 선생님이 돌아가며 보직만 변경한 경우가 태반"이라며 "전문상담인력을 학교당 최소 5명 이상 두고 이들이 상담과 함께 학교생활과 교우관계 전반에 관한 인성교육도 맡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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