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모두가 행복한 나눔의 공간

“대학로에 새로 생긴 레스토랑 이름이야?” 마르쉐@에 다녀왔다는 기자에게 주위 사람들이 물었다. 마르쉐@혜화는 2012년 10월 시작된 도시형 장터다. 시장이라는 프랑스어 ‘마르쉐’에 ‘@(장소 전치사 at)’와 지명을 이어붙인 이름이다. 매달 둘째 주 일요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옆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평균 3000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명소가 됐다.

▲ 마르쉐@ 2월의 테마는 '콩'이었던만큼 직접 재배한 콩을 가져온 출점팀이 눈에 띄었다. ⓒ 최선우

어떤 매력이 있기에 1년여 만에 이런 성공을 거뒀을까. 지난 2월 9일, 올해 첫 마르쉐@가 열린 대학로를 찾아가봤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2번 출구를 나서자 노란색과 파란색의 장터 표지판이 기자를 반겼다. 노랑과 파랑은 마르쉐의 상징색이다. 매서운 바람에 눈발이 흩날리는 날씨였지만 장터로 향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장터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콩으로 만든 요리 등을 맛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마르쉐@은 다른 시장과는 달리 물건만 사고 바로 돌아가는 손님은 거의 없다. 장이 서는 아르코미술관은 사방이 마당으로 트여 여기저기 사람들이 어울려 수다를 떨 수도 있고, 자리를 깔고 앉아 구입한 음식을 나눠 먹을 수도 있다. 주차장 옆에 마련된 요리팀 부스에서는 그날의 재료로 즉석에서 만들어 내는 빵, 나물 떡볶이, 호박죽 등의 냄새가 한 데 어우러져 식욕을 자극한다. 마치 축제 현장 같다.

▲ 이날 열린 농부워크숍에서 장흥농부 김혜경 씨가 콩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최선우

이날 장터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농업워크숍이 열렸다. 이번 달 주제는 콩. 장흥 농부 김혜경 씨의 콩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직접 생산한 토종 콩을 보여주며, 콩 자급률이 1% 대로 떨어진 한국 농촌의 현실도 지적했다. 워크숍이 끝나면 항상 테마 공연이 펼쳐진다. 2월의 특별 게스트는 인디 뮤지선 김거지 씨. “아, 김거지 씨라니 떨려요. 시장 둘러보고 꼭 노래도 듣고 갈 겁니다. 사고 싶었던 콩도 샀고 원래 좋아했던 김거지 씨 노래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한 주말이에요” 친환경 재활용 컵에 담긴 글루바인을 마시는 김연경 씨(22, 경기도 고양시)의 눈이 반짝거렸다.

▲ 이번 마르쉐@의 특별 게스트는 외롭다고 노래하는 김거지씨였다. 공연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 최선우

“모두에게 유익한 시장은 없을까”에서 시작

▲ 장터를 찾은 사람들 모두 마르쉐@의 매력은 사람들 간의 소통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 최선우

마르쉐@는 도시농부와 요리사, 예술가, 그리고 소비자 간의 지속적인 나눔의 장소다. 2년여 전, 마르쉐@을 준비하기 위해 모인 도시농부,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들은 많은 사람들이 먹거리를 매개로 대화하고 경험을 나누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을 지낸 이보은 씨는 지난 3년간 홍대텃밭다리를 비롯해 서울 합정동·문래동에 옥상 텃밭을 일구는 활동을 주도했다. 보은 씨는 “도시농사는 투입이 많아 지속가능한 농사를 위해 다함께 나누어 먹고 소비하는 마당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농부들이 피땀 흘려 열심히 재배한 결과물들을 잘 먹고 잘 쓰이게 하고 싶었다.”며 마르쉐@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설명했다. 재일동포 김수향 씨가 대안적 삶의 공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보은 씨와는 좀 다르다. 그는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직접 경험했다. 그 이후 전력 낭비와 각종 환경 재해를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소비’의 문제점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이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먹거리 문제로 이어졌다. “재앙를 직접 체험해 보니 내가 먹는 먹거리 역시 어디서 왔는지, 안심하고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2011년 4월 보은 씨와 함께 도시형 장터 사업을 추진했다. 홍대 앞 ‘서교 365번지’를 거점 삼아 가난한 예술가들과 자급자족의 삶을 실험해오던 송성희 씨(십년후연구소 대표)가 합류했다. 그는 재작년부터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열었던 장터 ‘봄장’의 기획 경험을 살렸다.

마르쉐@는 소통과 나눔의 공간

그렇게 시작된 마르쉐@는 농부가 친환경 방식으로 재배한 농산물, 예술가들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 그리고 요리사의 손맛이 담긴 요리 등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나눔의 과정에서 생긴 대안적 문화와 상상력은 환경을 생각하는 행동으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마르쉐@에는 쓰레기, 비닐봉투, 일회용품이 없다. 또 마르쉐@는 식기 대여 사업을 운영한다. 시민들이 보자기, 컵과 접시, 젓가락과 냅킨용 손수건 등으로 구성된 ‘마르쉐 렌탈식기세트’를 보증금을 내고 빌려갔다가 사용 후 반납하는 시스템이다. 쓰레기와 일회용품을 최대한 줄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마르쉐@에 왜 오냐구요? 일단 정말 즐거워요. 저와 제가 열심히 기른 한라봉을 기다려주는 손님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거든요. 얼굴을 보며 판매하니 제 정성을 전할 수 있고 소비자들과 교감할 수 있다는 점이 제주에서 굳이 비행기를 타고서라도 서울에 올라와 마르쉐를 찾는 가장 큰 이유죠.”

▲ 제주도에서 무농약, 무비료로 천혜향과 한라봉을 키운다는 '귀한농부 차차로' 팀의 윤순자씨의 모습. ⓒ 최선우

제주도에서 무농약, 무비료로 키운 천혜향과 한라봉을 가져온 ‘귀한농부 차차로’ 팀의 윤순자(제주 서귀포시) 씨가 기자에게 천혜향을 건네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선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는 가장 행복할 때가 지난번 장터 고객이 다시 찾아와 “저번에 산 귤이 참 맛있었어요”라고 말해줄 때라고 했다. 이처럼 마르쉐@의 가장 큰 특징이자 강점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소통’이다. 윤 씨는 판매대를 찾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천혜향의 껍질은 버리지 말고 차 재료 등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소비자들은 농사와 관련해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본다. 천혜향과 한라봉의 차이가 무엇인지, 어떻게 농약과 비료 없이 재배할 수 있는지, 질문이 쏟아지고 윤 씨는 전문가답게 술술 궁금증을 풀어준다. 마치 농업 강의가 열린 듯 했다.

▲ 직접 재배하고 판매한 수익금으로 나눔을 몸소 실천하는 '꿈꾸는 고래'팀 ⓒ 최선우

‘나눔’ 역시 마르쉐@의 특징이다. 농사를 통한 나눔을 실천하는 ‘꿈꾸는 고래’ 팀은 이번에  커피원두를 가지고 나왔다. ‘꿈꾸는 고래’ 팀은 로스터 김미소 씨가 직접 볶은 원두커피를 판매해 2012년부터 유기견 보호소를 후원을 하고 있다. ‘강정평화상단협동조합’은 소비자와의 직거래로 감귤과 옥돔 등 제주 특산물을 판매해서 그 수익금을 생명평화활동사업에 후원하기 위해 지난해 설립됐다. ‘강정평화상단협동조합’은 제주해군기지 반대와 강정마을 지키기를 위해 타 지역과의 연대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장터엔 제주 한라봉을 내놨는데, “강정마을 파이팅”이라는 응원과 함께 한라봉을 사가는 손님도 눈에 띄었다.

믿고 사는 장터,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상생

“내가 직접 키웠으니 팔러 나왔지, 뭘 물어?” 밤 아저씨 우제송(58, 충남 청양군) 씨의 시큰둥한 대답에 주변 농부들이 까르르 웃었다. 굳이 마르쉐@에서 밤을 파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 때야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일반 시장에선 (밤이) 무조건 싸야하고 무조건 커야해. 알이 무조건 커야 값을 쳐줘. 작거나 못생긴 밤은 쳐주지도 않아. 제 값도 못 받아. 하지만 여기, 얼마나 좋아. 중간과정도 없으니 소비자들은 좀 더 싼 값에 정말 질 좋은 밤을 먹고 나는 제 값을 받을 수 있어. (일반)시장에서 팔기 위해서 대부분 농부들은 작은 밤을 더 키우려고 유도제나 영양제를 과잉으로 막 투여해. 그런 걸 먹는다고 생각해봐. 못써”

▲ 마르쉐@은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교감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이다. ⓒ 최선우

소비자들도 좋은 물건들을 믿고 살 수 있다는 점에서 마르쉐@를 찾는다. 단골도 많다. 마르쉐@ 출점자들과 정다운 인사를 나누는 서영숙(44, 서울시 행당동) 씨는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 때문에 이곳에 온다고 한다. 그는 “<아빠맘두부>를 가장 좋아한다며 <아빠맘두부>를 먹은 후로는 일반 마트에서 두부를 절대 사지 않는다”고 했다. 일반 시장에 비해 비싼 편이지만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농부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마르쉐@만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반짝 이벤트가 아닌 ‘생활 밀착형’ 장터로 거듭나야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마르쉐@이 좀 더 ‘생활 밀착형 시장’이 되길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일부 품목의 부담스러운 가격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소비자들은 지적했다. 특히 빵 종류가 일반 빵집보다 너무 비싸 살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유기농 국산 밀 등을 사용해 가격이 높은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반면 생산자들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수익구조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날도 일부 출점자들은 매출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서로 만족할 수 있는 구조가 확립돼야 마르쉐@이 ‘자립형 장터’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마르쉐@이 끝나면 농부들과 예술가, 요리사들은 그날의 장터를 평가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뒷풀이 시간을 늘 가진다. ⓒ 최선우

이른 아침부터 장이 파하는 오후 5시까지 마당을 누비며 출점팀들을 일일이 챙기는 이보은 씨에게 마르쉐@의 목표를 물었다. 주저 없이 대답이 돌아왔다. “생활형 장터요” 보은 씨는 현재 한 달에 한 번 여는 마르쉐@을 한 달에 두 번, 세 번으로 횟수를 늘려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장터로 만들어 나가는 게 꿈이라고 했다. 그는 “비록 지금은 마르쉐@에 단순히 놀러오는 사람이 많지만 소비자들이 도시 농부들이 출점한 신선한 식재료로 음식을 직접 해 먹는 게 더 맛있다는 경험을 많이 공유해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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