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인턴의 현실 ③ ‘무급’에도 몰리는 지원자

‘한국어와 영어 모두 능통할 것. 정치학과 국제관계학 등 관련 분야 전공자 우대. 리서치와 워드·엑셀·파워포인트 등 문서 작성 탁월한 자 우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3~6개월 근무. 본 인턴십은 무급이며 숙박비 및 교통비 등을 지급하지 않음.’

지난해 12월 초 미국 워싱턴의 주미 한국대사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인턴채용공고가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궜다. 쉽지 않은 자격조건을 요구하고 3~6개월간 종일근무를 시키면서, 교통비도 주지 않는 ‘무급’이란 조건을 당당히 내걸었기 때문이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몇 달을 무급으로 일하는데 교통비와 식대, 숙소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건 돈이 없으면 인턴도 못 한다는 얘기”라며 분개했다. 많은 누리꾼들은 대사관 등 젊은 층이 선망하는 공공기관들이 인턴을 무급으로 쓴다면 결국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에게만 기회가 돌아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 최근 논란이 된 주미 한국대사관의 인턴모집 공고. ⓒ 주미 한국대사관 홈페이지

탁월한 ‘스펙’ 갖춘 무급인턴, 부유층 자제나 가능

비슷한 논란이 미국에서도 있었다. 미국 방송 <씨엔엔머니(CNN Money)>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백악관의 무급인턴들이 고용주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임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과 함께 행동에 나선 ‘공정임금캠페인’ 대표 마이키 프랭클린은 “숙박비, 임금 등이 제공되지 않는 무급인턴은 결국 소수 부유층만이 누릴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해온 대통령이 백악관에 무급인턴을 두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백악관은 아직 뚜렷한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의 경우 대사관, 정부산하기관 등 공공기관과 일부 기업 등이 ‘실무를 배울 기회를 주는 것 자체가 혜택’이라는 논리로 무급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국회에서도 개별 의원실에서 입법보조원, 정책인턴, 명예보좌관 등의 이름으로 무급인턴을 채용한다. 또 이런 곳에서 인턴을 했던 청년층은 높은 만족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현재 한 대기업에서 일하는 이준섭(29)씨는 지난 2011년 7월부터 약 3개월간 주한 미국대사관 공보과에서 인턴생활을 했다. 이씨는 “업무량은 많았지만 국제교류행사의 일정을 잡거나 탈북자를 지원하는 등 평소 관심 있었던 일이고 보람 있는 일이라 무급이었지만 몇백만원은 번 느낌”이라고 말했다. 조리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의 한 특급호텔에서 두 달 정도 인턴생활을 한 김모(27)씨도 “실습비로 받은 월 20만원은 교통비도 안 됐지만 일류 호텔 인턴 경력은 취업에 좋은 조건이 되기 때문에 불만이 없었다”고 말했다.

▲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의 인턴 선발은 대부분 경쟁이 치열하다. ⓒ KBS

청년구직자 등을 가입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의 양호경 정책팀장은 “취업난에 인턴 경력도 스펙(자격조건)이 되면서 청년들이 이력서의 경력 한 줄에 의미를 크게 두고 있다”며 “그러나 노동이 있다면 대가도 반드시 지급돼야 하는 게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양 팀장은 “(인턴)교육과 노동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법에 명시하고 노동력을 조금이라도 활용한다면 인턴에게 급여를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88만원 세대>의 공동저자 박권일씨는 지난해 6월 한 언론인터뷰에서 "무급인턴제도와 관련해 가장 안타까운 이면은 당사자들의 인식"이라며 "단물 쓴물 다 빼먹는 착취를 당하면서도 자신은 착취당하는 게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턴 교육 내실화하고 ‘노동의 대가 지급’ 법제화 필요

무급인턴 문제와 관련, 국회에서도 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해 8월 무급인턴의 근로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임금을 받지 않고 업무 경험의 습득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도 ‘근로자’로 인정해 각종 보호규정을 적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당사자 격인 청년유니온은 이 개정안에 대해 '무급노동자'라는 새로운 노동자군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법이 생기면 오히려 무임금 인턴이 확대되고 무급 근로시간이 악용되며,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현실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청년구직자 등의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은 인턴의 법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1인 시위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청년유니온

양호경 팀장은 “인턴 제도가 ‘교육’이 아닌 ‘값싼 노동’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외국처럼 구체적인 기준을 (관련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8년 ‘인턴십법’을 제정한 브라질의 경우 인턴십의 목적을 '교육'이라고 규정하고 참여 학생이 정규 교육과정에 있을 것, 학생·학교·인턴십기관이 인턴 약정서를 체결할 것, 약정서 내용과 실제 활동 내역이 일치할 것 등을 의무화했다. 이런 정의에서 벗어나는 노동에 대해서는 일반 근로자와 같은 법에 따라 임금 등 근로조건을 적용한다. 

한국노동연구원 허재준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청년인턴 제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정부 지원 대신 기업과 대학이 주축이 된 협력프로그램을 우선적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의 노동자를 가르치는 대학과 그들을 고용할 기업이 유능한 인재를 키운다는 취지에서 인턴 교육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마련하고, 정부는 인적·물적 자원을 뒷받침하면서 관련법의 정비 등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극심한 취업경쟁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장차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인턴경험을 쌓는 일은 필수적인 진로준비과정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절박한 처지를 이용, 제대로 된 직무교육이나 보수도 없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기업과 기관도 적지 않다. 취업지망생들을 울리는 인턴 운용의 현실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의 청년기자들이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했다.(편집자)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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