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을 지키는 사람들 ➂ 지하철의 투명인간들

“하루에 계단을 30번쯤 오르내리는데, 저녁때가 되면 다리가 떨려서 움직이기도 힘들어. 마대걸레를 지팡이 삼아 걸어야 해. (지하철)출발지에서는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이 우리밖에 없으니까 전력낭비라고 엘리베이터 가동을 안 해 주는 거지. 화장실도 지하 1층에 있는 승객용 화장실을 가야하는데 지하 4층에서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니 웬만하면 참고 잘 안가는 편이야.”

지난달 23일 오후 2시, 서울지하철 5호선 종착역 중 한 곳인 마천역에서 만난 청소노동자 최미순(61·여·가명)씨는 계단 중턱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마대걸레에 몸을 기댔다. 종착역에 들어온 열차를 청소하고 출발지로 돌아왔다가 다음 열차를 청소하기 위해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길이었다. 계단 위에서 숨 돌리는 일도 잠시, 그녀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다음 열차 청소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걸레를 빨고 쓰레기를 정리한 뒤 조금이라도 쉬려면 계단에서 지체할 시간이 없다. 

▲ 까마득한 계단을 하루 30번쯤 걸어 오르내린다는 마천역 청소노동자. ⓒ 이청초

 
까마득한 계단을 하루 30번 오르내려야

지하철 차량 청소는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2조 2교대 근무다. 마천역의 차량청소 노동자는 모두 10명으로 하루에 5명씩 돌아간다. 월 2회 정기휴무를 사용하는 동료가 있어 4명이 일하는 날도 많다. 열차가 도착하면 다시 출발하기까지 약 6분 동안 바닥과 선반을 닦고, 광고전단지 등을 제거하고, 탈취제를 뿌린다. 출퇴근 시간대(오전7~9시, 오후 6~7시)는 배차간격이 4~6분으로 짧아 더욱 분주하게 작업을 마쳐야 한다. 이들이 하루에 담당하는 열차는 평일 104대, 주말 82대다.

이들의 휴식은 짧은 배차간격을 이용하는 게 전부다. 인원이 적다보니 밥 먹을 시간이 따로 없다. 출퇴근 시간을 피해 아침에는 9시 이후, 저녁에는 7시 이후 각자가 알아서 식사를 해야 한다. 종착역 앞부분에 있는 2평 정도의 휴게실에서 대부분 각자가 싸온 도시락을 먹는다.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시간 날 때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워낙 배차간격이 짧다보니 한 번에 다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놨다가 다음 휴게시간에 다시 먹는 경우가 많다. 청소노동자 오영숙(59·여·가명)씨는 “화장실이 멀어서 가기 힘든 것도 있지만 밥 먹고 쉴 수 있는 시간도 부족하니 화장실을 되도록 안 가려고 물도 잘 마시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하철 청소노동자의 근무시간은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다. 청소노동자 5명 중 한 명은 당직자로 오전 9시 출근해 밤 12시 47분 막차까지 담당하고, 나머지는 오전 6시 반에 출근해 밤 10시 반~11시 반에 퇴근한다. 평균 근로시간은 약 16~17시간이다.

이런 근로조건도 지난 3월 이전에 비해서는 나아진 것이다. 과거에는 지하철 첫차 시간인 새벽 5시34분(평일) 이전에 청소노동자들이 출근했지만 지난 3월 서울도시철도에서 자회사 서울도시철도그린환경(주)을 설립해 개별 용역업체 소속 청소노동자를 직접 관리하게 되면서 출근시간을 조금 미뤄줬다. 근로시간은 1시간밖에 줄지 않았지만 오씨는 “출근할 때 (지하철이 없어) 택시를 타야 했던 부담도 줄었고 아침에 좀 더 잘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오후 7시, 청소노동자 고영희(65·여·가명)씨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하철 청소 일을 10년째 하고 있다는 고씨는 “시민들 의식 수준이 높아져서 예전보다 쓰레기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의자 틈새에 쓰레기를 쑤셔 넣거나 먹다 남은 음료수를 버리고 가는 사람이 있다”며 “종일 일하다 보면 차량을 연결하는 문을 여는 것도 버거울 만큼 힘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 대걸레로 차량의 바닥을 닦는 청소노동자. ⓒ 이청초

더러운 걸 치우는 사람이지 더러운 사람 아니다

“더러운 걸 치우는 사람이지 더러운 사람들이 아니에요. 청소한다고 하면 사람을 우습게 아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이런 일을 한다고 다 못 배운 사람들이 아닌데···”

근무 조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서경실(51·여·가명)씨는 일하면서 느끼는 서러움을 토로했다. 서씨가 얘기를 꺼내자 옆에 있던 동료들도 한두 마디씩 거들었다. 최미순씨는 “간혹 기관사 중에 청소노동자들이 먼저 인사해도 투명인간 취급하고 그냥 지나쳐 가는 분도 있다”며 “(그 분도) 피곤해서 그런 것이겠지 이해하고 넘어가려해도 속상한 마음은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고영희씨도 “지하 1층에 있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고 싶지만 승객들에게서 꺼려하는 시선이 느껴져 괜스레 위축된다”고 말했다. 지하철 청소를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월 150만원 정도의 낮은 임금이나 긴 노동시간보다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라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밤늦게 막차까지 정리하고 나면 집에 갈 대중교통편은 택시밖에 없다. 남편이 마중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집이 같은 방향 사람끼리 모여 택시를 탄다. 그러나 집이 멀어 택시비가 부담스러운 사람은 휴게실에서 새벽 첫 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왕십리에 산다는 고씨는 집이 멀어 다음날 새벽 5시33분에 운행하는 첫차를 기다린다.  

▲ 지하철 구내에 있는 두 평 남짓한 청소노동자 휴게실. ⓒ 이청초

“그래도 마루바닥이 따뜻해서 괜찮아. 첫 차 운행시간까지 춥지 않은 곳에서 기다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지. 4시간만 눈 붙이고 있으면 되는데 뭘···.”

2평 남짓한 휴게실에서 작업복을 갈아입는 공간을 빼면 노동자들이 발 뻗고 쉴 수 있는 공간은 1평이 조금 못된다. 하지만 한 명이 하루 밤을 보내기엔 충분하다고 고씨는 말했다.  특히 싱크대와 냉장고밖에 없었던 휴게실에 지난 4월 민주노총 여성연맹이 정수기와 전자레인지를 마련해 줘 편리하게 쓰고 있다고 고씨는 덧붙였다.

청소 인원 늘리고 3교대 등으로 근무시간 줄여야

그러나 전문가들은 하루에 16시간 이상 일하고 야간 근무가 많은 이들의 작업조건이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근로 중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인아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철도차량 청소노동자의 근무형태는 장시간 근무와 야간 근무가 혼합돼 있어 흔히 ‘과로사‘라고 말하는 심혈관질환이 발생하거나 이로 인해 사망할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생물학적 리듬이 깨지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근무 중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이 인류에게 대재앙을 준 사건들도 새벽에 일어난 경우가 많은 걸 보면 장시간·야간 업무의 위험성을 결코 간단하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장시간 노동과 야간노동을 이중 부담해야 하는 교대제는 근무시간을 줄이고 조원을 많이 배치해 휴식시간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며 “한 조가 제대로 쉴 수 있는 3조2교대나 4조2교대 등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또 “외국의 많은 가이드라인은 주간근로자가 8시간 일하는 경우 야간근로자는 더 짧게 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한꺼번에 인력 충원이 어렵다면 제대로 쉴 수 있는 휴게실이나 수면실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의 발이 되는 기차와 지하철. 그러나 이를 이용하는 이들은 ‘쾌적한 열차’를 위해 누군가는 밤잠을 포기한 채 땀 흘려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열악한 근로환경과 저임금 속에서도 묵묵히 종점을 지키는 미화 노동자들을 단비뉴스의 청년기자들이 찾아갔다.(편집자)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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