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을 지키는 사람들 ② 서울역의 여성군단

전국에서 가장 많은 열차와 가장 많은 승객이 모여드는 서울역. 승강장 16개와 선로 20개가 촘촘히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다른 역보다 청소노동자들의 일이 더 힘들고 근무환경도 더욱 열악하다.

지난 10월 25일 오후 1시쯤 서울역의 초고속열차(KTX) 승강장. 여성 청소노동자 18명이 열차도착시간 5분전에 각자 맡은 객차 위치에서 대기했다. 정각에 기차가 들어오고 승객들이 우르르 내리자 노동자들은 재빨리 차에 올라 바닥청소, 좌석시트지 교체, 화장실 청소 등을 익숙한 손놀림으로 해나갔다. 18량의 객차가 채 10분도 되지 않아 깨끗하게 정돈됐다.

▲ 서울역의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승강장에서 열차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 이슬비

도시락 먹다 숟가락 놓고 달려가야 

이들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청소를 위탁한 용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격일로 하루 16시간을 일하는데, 일하는 동안은 정해진 식사시간도 휴식시간도 없다. 승강장 계단 밑에 있는 2평 남짓한 미화원 대기실 2곳이 이들의 식당이자 휴게소다. 잠깐 쉴 때는 문 앞에 빗자루와 쓰레받기, 쓰레기통 등을 쌓아 놓고 좁은 방 안에 겨우 엉덩이만 붙인 채 앉아 있다.

박영자(가명)씨는 “열차가 이렇게 줄줄이 들어오는데 점심시간이 따로 있겠느냐”며 “보통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데, 다 못 먹으면 다음 쉬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가장 바라는 게 있다면 밥이라도 식당에서 편하게 먹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연숙(가명)씨는 “(여기는) 식사지원도 안되고 식당도 없다보니 다 도시락 싸서 다닌다”며 “밥 사먹을 시간도, 돈도 없다”고 말했다.

열차 청소가 끝나면 이들은 대기실로 잠깐 돌아왔다가 다음 열차가 들어오는 철로로 이동한다. 서울역에 있는 20개 철로는 승강기나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돼 있는데, 청소노동자들은 쓰레기통 등 청소용구를 들고 승객들 틈에서 이를 이용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박씨는 “코레일 측에서 직접 말은 하지 않지만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 눈치를 준다”고 말했다.

▲ 허름한 미화원 대기실 앞에서 한 청소노동자가 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다. ⓒ 이슬비

배차시간은 맞춰야 하고, 승강기 등을 이용하는 것은 여의치 않으니 청소노동자들은 위험한 ‘철로 무단횡단’을 감행한다. 2번 철로에서 청소가 끝난 후 바로 다음 열차가 5번 철로에 도착하면 3,4번 철로를 가로질러 이동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열차가 갑자기 들어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하지만 청소시간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일하고 이들이 받는 월급은 한달 160만원 정도. 여기서 용역회사 수당과 4대보험료등이 빠져나가면 실수령액은 116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임금이 올랐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이들의 요구사항은 더 소박했다. 정덕은(가명)씨는 “다른 건 몰라도 (편히 쉴 수 있게) 휴식공간이 넓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은주(가명)씨는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타는 데 눈치라도 안 주면 좋겠다”며 “사실 청소노동자 인원이 충분하면 시간 때문에 철로를 무단횡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기순(가명)씨는 “좁은 휴게소에서 도시락을 먹어도 좋으니 10분씩 쪼개지 않고 제대로 된 점심, 저녁시간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다음 열차가 도착할 때까지 짧은 시간 동안 승강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청소노동자. ⓒ 이슬비

“늘 필요한 업무는 정규직 채용이 원칙”

코레일 이사회가 10일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안을 의결했고, 이에 앞서 철도노조는 자회사 설립이 철도민영화의 수순이라며 9일부터 전면파업을 시작했다. 이와 관련,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노동위원장인 권영숙(서울대) 교수는 “수익성을 위주로 철도산업을 생각하다보면 안정성 문제에 소홀하기 쉽고 이는 근로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는 열차 청소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철도공사가 이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교수는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업무는 정규직 채용이 원칙인데, 차량청소는 계속 필요한 업무이므로 정규직 채용이 맞다”며 “공사가 이들을 직접 고용해 용역회사에 주는 중간 비용을 없애면 추가 재원 없이도 노동자들의 실 수령액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계속)


매일 수많은 사람들의 발이 되는 기차와 지하철. 그러나 이를 이용하는 이들은 ‘쾌적한 열차’를 위해 누군가는 밤잠을 포기한 채 땀 흘려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열악한 근로환경과 저임금 속에서도 묵묵히 종점을 지키는 미화 노동자들을 단비뉴스의 청년기자들이 찾아갔다.(편집자)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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