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을 지키는 사람들 ① 제천역의 6인조
매일 수많은 사람들의 발이 되는 기차와 지하철. 그러나 이를 이용하는 이들은 ‘쾌적한 열차’를 위해 누군가는 밤잠을 포기한 채 땀 흘려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열악한 근로환경과 저임금 속에서도 묵묵히 종점을 지키는 미화 노동자들을 단비뉴스의 청년기자들이 찾아갔다.(편집자) |
지난 10월 14일 오후 7시 25분, 충북 제천시 제천역의 승강장 부근 허름한 단층 건물에서 50~60대 남성 5명과 여성 1명이 걸어 나왔다. 형광연두색 모자에 목장갑을 낀 이들은 7시 39분에 도착하는 기차를 청소하기 위해 휴게실에서 대기 중이던 노동자들. 17년째 일하고 있다는 작업반장 이모(58)씨는 “(형광색) 이 모자가 우리에게는 작업모이자 안전모”라며 승강장으로 발을 옮겼다.
중간 정차 차량은 5분 만에 숨 가쁘게 청소
강원도 정선군 아우라지에서 온 열차는 예정된 시각에 정확하게 도착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열차에서 사람들이 모두 내릴 때까지 눈에 띄지 않게 구석에서 기다렸다. 이번 열차는 제천에 잠깐 정차했다 서울 청량리역으로 출발하기 때문에 5~10분 만에 청소를 마쳐야 한다. ‘제천역 6인조’는 서둘러 객차에 오른 뒤 각자 맡은 위치에서 숨 가쁘게 움직였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역방향 출발에 맞춰 의자를 돌려놓는 것. 6칸짜리 객차를 기준으로 210개쯤 되는 2인용 의자를 인부 2명이 맡아 신속하게 돌린다. 그 뒤를 따라 나머지 노동자들이 의자와 선반의 먼지를 털고, 커튼을 정리하고, 50리터(ℓ)짜리 비닐봉투에 쓰레기를 주워 담고, 대걸레로 바닥을 닦는 작업을 재빨리 진행한다. 마지막 순서는 내부 유리창 닦기. 노동자 한 명이 의자 사이를 몇 번이고 드나들면서 한 칸 당 18개의 큰 유리창을 물걸레로 박박 문질러 닦아냈다.
이 모든 작업을 하는 동안 열차 내부엔 불이 꺼져 있고 인부들은 승강장의 불빛에 의지해 청소를 마쳤다. 전력을 공급하는 기관차를 반대방향에 설치하느라 객차와 일시 분리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청소노동자 중 홍일점인 박모(52)씨는 “흐릿한 불빛에 작업하는 것이 익숙해서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종착하는 차량은 분뇨제거와 외벽청소까지
중간 정차가 아니라 제천역에 종착하는 기차는 분뇨제거와 외벽청소 등 보다 종합적인 작업을 해야 한다. 제천역에 종착하는 여객열차는 평일 기준 아침 8시 11분부터 밤 10시 43분까지 하루 9편이 들어온다.
청소노동자들은 차량 도착시간에 맞춰 승강장에서 대기하다가 승객들이 모두 내리면 열차를 타고 검수소로 이동한다. 기관차가 따로 분리되진 않지만 운행열차가 아니다보니 검수소로 들어가는 동안에도 열차 내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선로를 따라 이동하는 열차 안은 깜깜하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인부들은 의자의 방향을 돌리거나 유리를 닦는 등 자기가 맡은 작업을 조금씩 진행한다. 빠르게 작업을 마쳐야 조금이라도 휴식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기지에서 도착해 전력과 물이 공급되면 기차 내부 청소를 본격적으로 한다. 내부 작업이 80%정도 끝나면 인부 3~4명이 먼저 밖으로 나온다. 한 명이 검수소 앞에 설치된 수압기로 기차 외벽에 물을 뿌리면 나머지 인부들이 유리닦이로 유리창 외부와 문짝 등을 빠르게 문지른다.
외벽 물청소가 끝날 즈음엔 차량 화장실의 분뇨를 제거한다. 검수소 근처에 정화조와 분뇨를 제거하는 호스가 설치돼 있는데, 이를 이용해 열차 화장실 외벽 구멍을 통해 분뇨를 빼 낸다. 이 작업을 마치면 ‘청소 끝’을 외칠 수 있다.
이렇게 일을 마치는 데 대략 30분정도가 걸리지만 저녁 7시 이후부터는 검수소로 들어오는 열차 간격도 30분이라 쉴 틈 없이 다음 열차로 이동해야 한다. 일을 조금 빨리 마치고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추위를 녹여줄 드럼통 난로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다. 고압전선이 있는 곳이라 화재 가능성을 특히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업반장 이씨는 “한 겨울에 작업하다보면 장갑을 끼고 있어도 너무 추워 손에 감각이 없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 “외벽 청소를 위해 살수기로 물을 뿌릴 때는 정신이 아찔할 정도”라며 유난히 추운 제천의 겨울을 걱정했다.
24시간 교대로 일하지만 저임금으로 생활 어려워
제천역 청소노동자는 한 조당 6명씩 총 12명이 오전 8시 30분부터 다음날 같은 시간까지 24시간 2교대로 근무한다. 이들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아닌 용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이다. 지난 2005년 코레일이 공사로 전환하면서 승무, 역무, 차량 등 다른 직원들은 공사소속이 됐고 근무도 2조 2교대에서 3조 2교대로 바뀌었지만 미화노동자들만 유일하게 근무조건이 개선되지 못했다. 제천차량사업소의 김용하(42) 선임차량관리과장은 “(2005년)이전부터 함께 일해왔던 사람들이고 고생하는 거 뻔히 아는데 차별이 개선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들 청소노동자가 쉴 수 있는 공간도 역사 부근의 1평 남짓한 휴게실이 전부다. 인부들은 이곳에서 쪽잠을 청하고 매 끼니를 해결한다. 24시간 근무 중 조금 길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새벽 5시 25분에 출발하는 첫차를 준비하기 직전까지의 약 4시간 정도가 전부. 이 일을 5년 8개월째 하고 있다는 박모(60)씨는 “종일 근무하는 게 만성이 됐다”며 “몸이 조금 고되긴 하지만 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러나 “월 150만원이 채 안 되는 임금으로 대학 다니는 아들 등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 문제”라며 “종일 일한 다음 날은 쉬어야 하지만 조금이라도 돈을 벌려고 부업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계속)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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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부장, 청년팀
한 번 문 건 놓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