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대한민국 노인보고서] 눈치 보는 노년의 여가와 성 <하>

지난 8월 17일 서울 종로구 훈정동 종묘공원에는 앉을 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한창 보수공사 중인 구역을 빼고 빈 공간 마다 바둑과 장기를 두는 남성들이 촘촘히 앉아 대국에 집중하거나 옆에서 훈수를 두며 옥신각신 하는 모습이었다. 그 바깥쪽 공원 입구에는 화장을 짙게 한 50~60대 여성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관리사무소 사람들 눈을 피해 서성이고 있었다.

오전 11시쯤, 야외활동복(아웃도어) 차림의 한 60대 남성이 하얀 원피스를 입은 60대 여성에게 다가갔다. “동대문에 삼겹살 먹으러 가자”고 말을 걸자 그녀는 웃으며 그를 따라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종로 4가의 좁은 골목 사이를 돌아 그들이 도착한 곳은 2층짜리 허름한 여관. 여성이 먼저 들어가고 뒤이어 남자도 잠깐 주변을 살피다 따라 들어갔다. 

노인 상대 호객하는 50~60대 여성들 

오후 1시, 종묘공원 입구의 여성 숫자는 7명에서 4명으로 줄었다. 금은방 앞에 앉아 있던 60대 여성이 까만 손가방을 챙겨 들고 일어나 지나가는 남성 노인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다른 여성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후 2시를 넘기며 햇살이 더욱 따가워지자 이들 중 두 명이 눈치를 보며 공원 안 그늘을 찾아 들어갔다. 호객행위를 막기 위해 출입을 통제하는 관리사무소 사람들에게 걸리지 않으려 조심하는 듯했다. 한 여성이 “오늘도 허탕이야”라며 연신 부채질을 했다.

▲ 박카스 아줌마들은 종로 일대와 종로3가 지하철 개찰구 근처에서 볼 수 있다. ⓒ 안형준

잠시 후 하늘색 양산을 든 짧은 머리의 60대 여성이 공원 안으로 들어오더니 신사복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화단에 앉아 있던 70대 남성에게 “같이 나가자”며 말을 걸었다. 남성은 고개를 숙인 채 “돈이 있어야지...”라며 짧게 거절했다. 여성은 몇 번이나 “이만 오천 원”이라며 채근하듯 말했다. 하지만 남성은 읽고 있던 신문에서 끝까지 눈을 돌리지 않았다.
 
매일 오전 10시쯤부터 오후 6시 무렵까지 종묘공원을 서성이는 이 여성들은 노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박카스 아줌마’였다. 이들은 대부분 박카스 등 자양강장제나 발기부전치료제를 판매하며 성매매를 하는데, 5000원에서 5만원 정도의 돈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을 대상으로 방을 빌려주는 종로 4가 주변의 허름한 모텔이나 여관들은 3시간 단위로 1만 5000원 정도를 받는다.

“요즘은 탑골공원보다 종묘공원이나 종로3가 지하철역 안에 많아. 박카스 아줌마는 두 가지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조선족이고 하나는 할머니들이야.”
 
매일 탑골공원을 찾는다는 배모(73)씨에게 이들은 익숙한 존재다. 같은 날 오후에 만난 그는 얼마 전 박카스 아줌마와 함께 여관에 갔다가 돈을 도둑맞은 노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욕실에서 씻는 사이 여성이 지갑을 가지고 도망을 쳤고, 남성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는 등 종로 일대에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고 한다. 가끔은 성매매 여성끼리 손님을 두고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고. 종로 일대의 박카스 아줌마들은 단속이 심해지면 잠시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서 호객행위를 계속한다. 11월 들어 날이 추워지면서 공원보다 종로3가 지하철 개찰구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노인 성병·성범죄 등 어두운 그늘 존재

▲ 2013년 10월 제주건강과성박물관(관장 최강현)에서 실시한 '노인의 성 의식 조사' 결과. 최강현 관장은 이번 실태조사에서 “노인들이 성에 관심이 높았으며 삶의 행복지수에 성생활이 많은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 이보람
이들의 ‘영업’은 현행법상 불법이라는 문제도 있지만 성매매를 매개로 성병에 감염되는 노인들이 많다는 점에서도 경각심의 대상이 된다. 2012년 한국소비자원이 부산, 광주, 대전 등 지방에 거주하는 60대 이상 노인 5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성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생활을 하고 있는 노인이 전체의 62.4%였고 이 가운데 성매매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46.5%, 성병감염 경험이 있다는 사람이 32.1%로 나타났다. 확인된 성병의 종류는 임질(17.0%)과 요도염(13.8%), 매독(6.4%) 등이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2007년 이후 전체 인구 중 성병 진료건수는 감소추세인데, 65세 이상 노인인구의 진료건수는 2007년 4만 4000건에서 2011년 7만 2000건으로 크게 늘었다.
 
한국노인성교육연구소 임장남(72) 소장은 “상담 과정에서 ‘성매매를 할 경우 성병에 걸릴 수 있다’고 말하면 ‘7~8년 에이즈 잠복기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게 남았다’며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내버려두라는 반응을 보이는 노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또 한국소비자원의 같은 조사에서 성생활을 하는 노인 가운데 36.9%가 발기부전 치료제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는데, 이 중 약국에서 정품을 구매하는 경우는 44.3%에 불과했다. 발기부전치료제를 구매·복용한 노인 중 67%는 혈압상승, 안면홍조, 안구충혈, 어지러움 등의 부작용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욕을 건전하게 해소할 방법을 찾지 못한 노인들이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늘어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김영주(새누리당·비례)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성범죄 현황 자료에 따르면 61세 이상 노인이 저지른 성범죄 건수가 2008년 710건, 2009년 712건, 2010년 955건, 2011년 1070건, 2012년 1104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범죄유형별로는 강간·강제추행이 가장 많았고 통신매체 이용 음란, 카메라 촬영 등이 뒤를 이었다. 노인이 성범죄의 피해자가 된 사건도 2008년 324건, 2009년 244건, 2010년 276건, 2011년 324건, 2012년 320건 등 매년 300건 내외씩 발생하고 있다.

나이 든 사람 고민, 주책없다 하지 마시고... 
 
“노인이 주책없다 하지 마시고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할 때도 있고, 창피하다는 생각도 합니다.”
 
지난해 11월 서울시의 어르신상담센터 홈페이지(www.seoulfriend.or.kr)에 김모(75)씨가 고민의 글을 올렸다. 젊었을 때 ‘잉꼬부부’라 불릴 만큼 사이가 좋았던 김씨 부부는 언젠가부터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혼자 자는 것이 편하다는 부인의 말에 그러자고 했지만, 그는 아쉬움을 느꼈다.

“50대 이후 일주일에 1~2회로 줄어든 성생활을 지금은 거의 못 하고 있어요. 막내딸이 결혼하면서 집에 부부만 남았는데, 신혼 때처럼 관계가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하던 기대는 물거품이 됐어요. 아내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면 언제나 거절당하며 방에서 쫓겨납니다.”
 
평소 그와 아내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여행도 함께 다니고 문화생활도 함께 즐긴다. 하지만 잠자리를 요구하면 아내는 아프고 불편하다며 거부하고, 자신은 욕구를 억제하기 어려워 자위행위로 해결하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머릿속에 그런 생각만 드는 자신이 비정상인가 하는 자괴감도 들고, 아내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고 김씨는 하소연했다. 
 

▲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에서는 '동년배 상담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들은 파고다 공원 등을 찾아가 방문 상담을 실시하기도 한다. ⓒ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

서울 도봉구에 사는 박모(70)씨도 부부관계 때문에 서울시의 상담창구를 두드렸다. 그의 아내도 박씨가 성관계를 요구할 때마다 “나이 들어 왜 이리 주책이 없느냐”며 거절했다. 어쩌다 잠자리를 함께 해도 아프고 힘들다며 돌아누웠다.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아도 “다 늙어서 뭘 기대하느냐”는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배우자가 없어 ‘박카스 아줌마’를 찾는 이들도 있지만 김씨와 박씨처럼 배우자가 있어도 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성적 불만족’을 호소하는 노인들 역시 많다. 지난 2012년 한 해 동안 서울시 어르신상담센터를 찾은 사람 중 200여명이 성 문제와 관련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이 중에는 배우자의 외도, 발기부전, 배우자와 사별한 뒤 만난 이성 친구 때문에 자녀와 갈등을 겪는 사례도 있었다. 2011년에 사단법인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실시한 노인 성상담 사례를 보면 김씨, 박씨와 같은 부부 성 갈등이 19%로 세 번째에 해당하는 고민이었다. 성병과 약물 등 기타 사례가 43%로 가장 많았고 성기능 상담이 21%로 두 번째였다.

성 상담과 교육의 창구 확대 필요 

서울시 어르신상담센터는 이런 고민을 호소하는 노인들에게 해결책을 조언해 준다. 박모씨의 경우 전문상담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폐경기가 지난 여성은 신체적 변화 때문에 성관계에서 고통과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아내와 평소 다정한 대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잠자리만 강요한 것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르신, 가끔 두 분이서 데이트하세요. 두 분 만의 외식, 산책, 등산 등등 할 수 있는 게 많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살아갈 날이 많으신데, 성관계에는 육체적 접촉 뿐 아니라 애정이 필요해요.”
 
상담원의 조언을 받아들인 박씨는 집에 돌아가 아내와 외식을 했다. 그리고 함께 등산도 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며 천천히 관계를 회복해갔다. 그러자 부부 사이도 가까워지고 자연스럽게 잠자리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 한국노인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이호선 교수는 "박카스 아줌마를 만나는 남성들 중에는 그저 손을 잡고 상대 여성이 발을 씻겨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따뜻한 대화와 손길'이 돈보다 절실하다는 뜻이다. ⓒ 안형준

서울시 어르신상담센터 김재범 팀장은 “상담을 하다보면 처음에 성 문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면 관계의 문제인 경우가 있다”며 “어르신들은 올바른 성 지식이나 양성평등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문제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각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노인들을 위한 성 상담과 성 교육이 확대되는 추세다. 경기도 북부청의 경우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성 인식 개선사업’의 하나로 노인 성 상담사와 성 교육사 양성과정을 통해 성교육사 54명, 성상담사 51명의 인력을 훈련시킨 뒤 지역의 복지관과 경로당 노인정 등에서 활동하도록 했다. 지난 2009년부터 노인 성 상담센터를 운영해 온 전주 양지노인복지관의 배영희 과장은 “성교육을 받은 어르신들도 아직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꺼리는 분위기”라며 “성 교육과 성 상담에 보다 개방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은 세대에 맞는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

사회 전반의 인식변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노인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이호선(한국벤처대학원대학) 교수는 “10여년 전 70대의 성과 사랑을 그린 영화 <죽어도 좋아>가 상영되면서 노인의 성에 대한 담론이 퍼졌던 것처럼 문화콘텐츠를 통해 사회인식이 개선되는 게 바람직하다”며 “노인들이 사랑하고 관계를 맺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언론도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노인을 상대하는 성매매 여성을 연구하면서 성 구매 남성 9명과 심층 인터뷰를 했는데 성적 접촉 자체보다 ‘좋은 관계’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해 성매매 여성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며 “노인들이 만족스런 이성관계를 통해 에너지를 건강하게 배출할 통로를 사회가 다양하게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파스라도 붙여 줄 사람이 있었으면"
 
인천광역시에 사는 강모(67)씨는 남편과 이혼한 지 10년이 됐다. 남편은 젊었을 때부터 바람기가 많았다. 이혼한 뒤 한 때 다시 살림을 합치려고 노력도 했지만, 폭행까지 하는 탓에 지금은 완전히 포기했다. 딸이 한 명 있지만, 이혼 당시 집을 나간 뒤 연락이 잘 되지 않아 혼자 살고 있다.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은 없지만 혼자 지내니 외로워요. 허리가 아플 때 파스라도 붙여줄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강씨는 평소 봉사활동이나 문화회관 모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외로움을 잊으려고 노력한다. 친구 소개나 인천노인종합문화관에서 시행하는 '황혼 미팅'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 보기도 했다. 이런 자리에서 이성을 만나며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관계가 진전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고 강씨는 털어놓았다. 
 
"남자들은 물질적으로만 해주면 다 되는 줄 알아요. 돈이 많아야 여자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지 계속 돈 얘기를 하고, 뭘 사주려고 하죠. 나는 그냥 마음이 잘 통하고 빚만 없는 사람이면 되는데... 그리고 여자들은 정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스킨십(신체접촉)이 되는 건데 남자들은 한두 번 만나고 바로 모텔에 가자고 하니까 만남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지요."
 
강씨는 재혼을 원하는 남녀에게 각자 자녀가 있는 것도 재산상속 문제 등을 놓고 예민한 부분이 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성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꼭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며 웃었다.
 
노인복지학을 강의하는 한성대 황진수 교수는 “우리 사회가 노인들의 이성교제를 부자연스럽게 생각하는 편견을 깨고 남녀 노인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계기를 적극적으로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지센터 등에서 노인들이 만날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하는 것도 좋고, 노인 콜라텍(콜라를 마시며 춤추는 곳)등 유흥시설을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선진국에선 자연스런 만남의 기회 다양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는 노인들이 함께 모여 휴식하고 교제할 수 있는 지역단위의 노인센터, 취미교실 등이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65년 노인복지법이 제정된 후 커뮤니티센터 등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사회적 서비스가 늘어났다. 특히 1975년 창립된 ‘엘더호스텔(Elderhostel)’은 55세 이상 중노년층을 대상으로 교육과 여행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자연스런 남녀간 만남의 기회를 제공한다. 보스턴에 있는 비영리재단이 운영하는 이 기구는 미국 전역의 대학과 박물관, 교육기관 등과 연계해 은퇴자들이 각자의 관심과 흥미에 맞는 교육과 현장학습, 사교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도 1975년 이후 지역사회별로 ‘노인클럽’을 만들어 여가를 위한 레크리에이션활동과 전문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남녀 노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도 ‘노인 휴식의 집’과 노인클럽 등 다양한 지역단위 시설을 통해 자연스러운 교제의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다. 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노인 휴식의 집은 노인복지센터보다 작은 규모의 주민 이용시설로, 노인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얻고 놀이 등 여가활동을 할 수 있다. 노인들이 자주적으로 운영하는 노인클럽은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50명 이상의 인원으로 다양하게 구성된다. 게이트볼 등 운동은 물론 환경미화나 지역사회 독거노인을 방문해 돕는 자원봉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자연스런 이성간의 만남도 이뤄진다.
 
임장남 소장은 “우리나라에서도 노인들의 만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복지관이 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며 “복지관이나 노인대학 등 노인들이 모이는 모든 곳에서 이성 교제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인천노인종합문화관은 지난해 4월부터 ‘만남교실’, ‘합독사업’ 등을 통해 남녀 교제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합독사업은 혼자 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영화관람, 유람선 데이트 등의 단체만남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다. 인천 남동구에 사는 이모(69)씨는 지난 3월부터 2개월 동안 '홀로된 어르신 행복한 만남교실'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합독사업 행사에도 나가봤다. 30여년 전 이혼한 후 계속 독신으로 살아온 이씨는 친구들의 소개를 받거나 직장에서 이성을 사귈 기회도 있었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상대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만큼 살아보니까 모든 게 조심스럽더라고요. 제가 바라는 이상형이 아닌 경우도 있고, 돈을 바라고 저를 만나는 사람도 있었고... 그나마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사람을 만날 기회가 더 줄었는데, 여기 수업을 들으러 왔더니 (만남교실 등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한다고 해서 지원해봤죠."
 
그는 이런 행사를 통해 만난 여성과 5번 정도 만남을 이어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만나는 사람은 없다. 건강관리를 위해 하루에 2킬로미터(km)씩 달리고 자기계발차원에서 영어공부도 따로 하고 있다는 이씨는 몸살감기에 걸렸을 때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에 설움이 복받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곁에 사람이 없는 게 힘들다"며 "다음 합독사업이나 다른 행사에도 꼭 참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 인천시 합독사업은 지역 내 모든 군과 구의 노인복지관과 노인문화센터에서 신청을 받아 인천노인종합문화관에서 시행한다. 2012년까지는 1년에 4회 실시했으나 올해는'만남 교실'을 운영하면서 6월과 10월, 2회 운영했다.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합독사업 등 관련 행사를 담당하는 인천노인종합문화관의 주영분 과장은 "합독사업에서 90% 정도가 일단 짝을 찾지만 그 중 50%는 오래 이어지지 못하고 헤어진다"며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6~8주 동안 정기적으로 모일 수 있는 만남 교실을 함께 운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남교실’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남녀 15명씩 30명이 모여 자신과 이성을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미술치료, 등산, 커플댄스 등 매회 2시간 씩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이성을 만나는 방법’과 같은 교육과 ‘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성격유형검사를 하는 시간도 있다. 주 과장은 “교제가 성사되는 비율은 높지 않지만 어르신들이 취미생활을 함께 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행사여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인천노인종합문화관의 합독사업은 지자체의 지원 아래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노인 만남 행사로는 전국적으로 거의 유일하다. 2011년 10월 대전시 동구에서 60세 이상 남녀 100여명을 대상으로 ‘실버 효도미팅’이 개최되는 등 단발성 행사는 늘었지만 지속적인 노력은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이호선 교수는 “노인들이 자연스럽게 이성을 만날 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심한 정책과 이를 주도해 나갈 단체, 그리고 전문가가 필요하다”며 “노인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


‘준비되지 못한’ 노후를 맞이한 우리나라 노인은 절반 가까이가 빈곤층이다. 가난은 질병과 외로움 등 노년의 고통을 증폭시킨다. 불편한 몸으로 남의 밭일을 하는 농촌 노인이나 지하철택배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 노인 등 가난한 노년은 죽을 때까지 ‘밥벌이의 구차함’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사설 요양병원에서 학대 받는 치매노인, 골방에서 혼자 숨을 거두는 고독사 등 비극적 현장도 소리 없이 늘고 있다. <단비뉴스>는 청년의 ‘가족’이자 ‘내일’인 노인의 삶에 주목했다. 그들의 현실을 생생히 드러내면서 ‘노인복지후진국’을 벗어나기 위한 과제를 점검하고, 독자와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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