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쓰리잡 대학생 ③ ‘주영파’의 고민

서울의 한 사립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김현성(25·가명)씨는 이번 학기에 6과목을 수강하고 있지만 학교엔 전혀 가지 않는다. 모든 수업을 온라인 강좌로 듣기 때문이다. 일주일 중 하루도 학교에 안 나타나는 그를 친구들은 ‘주영(0)파’로 부른다. 올해 초 군에서 제대한 현성씨에게 이번 학기는 3학년 2학기인데, 수업을 모두 온라인으로 듣는 것은 처음이다.  

“저도 처음에는 온라인 강의만 수강신청해도 되나 싶었어요. 그런데 교칙을 알아보니 문제가 없더라고요.”

벤처기업 인턴과 과외지도 등 ‘쓰리잡’

그는 학교를 가지 않는 대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만드는 한 벤처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서 작성과 사무 보조를 하며 월 80만원 가량을 받는다. 또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오후 6시 30분부터 3시간 동안 중학생에게 학습시간표를 짜 주고 공부 방법을 가르치는 과외를 한다. 토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3시간 동안 고등학교 2학년생에게 영어 과외를 하고 있다. 현성씨가 과외로 버는 돈은 각각 60만원씩 총 120만원이다. 그래서 월 200만원 정도의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지만, 임대보증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돈을 모으느라 생활비는 늘 빠듯하다.  

▲ 서울시내 한 대학 부근 부동산중개업소의 임대료 시세표. 대부분 상당한 액수의 보증금을 요구하고 있어 대학생들에게 부담을 준다. ⓒ 박기석

현성씨는 쌍둥이 형(25)과 서울 신촌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데, 둘이 쓰기엔 너무 작은 원룸이어서 보증금을 더 모아 이사를 갈 계획이다. 목돈마련이 시급한 현성씨에게 매일 사 먹어야 하는 밥값은 가장 부담스런 지출목록 중 하나다. 입대 전 한 끼에 4000~5000원 정도 하던 동네 밥값이 요즘은 6000원 가량으로 올랐다. 학기 당 370만원 내외인 등록금을 여전히 부모님께 신세지고 있는 것도 ‘돈을 더 벌어야 한다’ ‘밥값을 아껴야 한다’는 부담감을 자극한다.  

현성씨는 제대 직후 보증금 낼 돈이 없어 월세만 내는 방에 살다가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지난 8월에 보증금 300만원, 월세 40만원짜리 원룸으로 이사했다. 당시 형은 대학에 다니며 창업 준비에 몰두하고 있던 상황이라 현성씨 혼자서 과외지도 3개, 보습학원 강의 1개 등 4개의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보증금을 모았다.  

“수업을 몰아서 듣고 과외를 뛰면서 월 150만원 정도 벌었는데, 보증금을 위해 월 50만원씩 떼 놓고, 월세 40만원에 휴대전화요금 등 공과금 내고 나면 밥값과 교통비가 빠듯했어요. 월말엔 돈이 부족해서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운 적도 많죠.” 

삼각김밥 먹으며 월세방 보증금 마련  

이번 학기엔 학교에 안 나가고 생활비를 버는 데 집중하다보니 수업 시간에 자연스럽게 만나던 친구들과도 멀어지고 이런 저럼 모임에도 빠지는 등 인간관계가 소원해지는 부작용이 있다. 하지만 현성씨는 크게 마음쓰지 않으려 한다.  

“저도 군대 가기 전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안 그래요.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술 마실 나이는 지났죠. 제 앞가림은 제가 해야 할 때잖아요. 졸업까지 1년 정도 남았는데, 졸업 후 회사원이 되는 것 대신 창업을 생각하고 있어서 조금이라도 밑천을 모아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요.”

▲ 대학들이 다양한 온라인 강좌를 개설하면서 학교에 나가지 않고 인터넷으로만 공부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대학의 인터넷 강의를 듣는 학생 모습. ⓒ 박기석

온라인 강의는 수업시간에 제약이 없고 과목 선택의 폭이 넓다는 장점도 있다고 현성씨는 강조했다. 하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환경에서 혼자 수업을 듣다 보니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특히 10시간 정도의 강의 분량을 주말에 몰아서 듣는데, 뒤로 갈수록 잘 몰입이 안 된다고 한다. 성적평가는 과제에 달려 있기 때문에 현성씨는 수업내용을 깊이 이해하기보다 과제를 제때 제출하는 데 더 신경을 쓰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한 과목당 2주에 하나 꼴로 과제를 내는데, 인턴일과 과외로 바빠 보통 이틀 만에 뚝딱 하나의 보고서를 완성한다고 한다.  

“학교를 못 가서 아쉬운 점이요? 장학금 신청 기간을 놓친다거나 여러 가지 소식을 늦게 듣는다거나 할 때 아쉬움을 느끼죠.” 

현성씨는 공부를 깊이 있게 못하는 것도, 대학 생활의 낭만을 포기한 것도 안타까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서글프진 않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도 온라인 강의만 들으면서 주거비와 창업자금 마련 등에 주력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주거비·생활비 부담 낮추고 면학 여건 개선해야  

대학생들이 이처럼 주거비와 생활비, 등록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투잡’ ‘쓰리잡’ 등 과도한 아르바이트에 시달리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기숙사와 임대주택 확충, 교통비 할인, 장학금 확대 등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이중 삼중의 아르바이트로 시간에 쫓기고 생활비 부담에 시달리는 학생들은 편의점의 값싼 김밥과 샌드위치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다. ⓒ 손지은

대학생들의 결사체인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은 지난 2011년부터 ‘반값생활비 운동’을 통해 주거비와 교통비 부담 경감을 위한 정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대학이 협력해 기숙사를 확충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적용되는 교통비 할인을 만 24세까지 확대해 ‘대학생 정기권’ ‘대학생 할인교통카드’를 도입하는 것이 제안사항의 일부다. 또 대학교 구내의 현금입출금기(ATM)수수료를 폐지할 것, 교내에 입점한 커피숍 등 외식업체의 판매가격을 인하할 것 등 기업들이 물가안정에 협력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한대련은 또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함께 대학생 생활안정법안을 마련해 각종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에게 공약 채택을 요구하는 활동도 벌이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김재연 의원 등 정치인들도 청년주거문제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임대주택공급 확대와 임차료 지원 등의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뚜렷한 성과는 없다. 


치솟는 주거비와 생활물가는 비싼 등록금과 함께 가난한 대학생들을 괴롭힌다. 그래서 하고 싶은 공부도, 취업준비도, 대학생활의 낭만도 접어둔 채 한꺼번에 몇 개씩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많다. '투잡족' '쓰리잡족'으로 불리는 이들의 고단하고 힘겨운 일상을 청년기자들이 따라가 봤다. (편집자)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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