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 칼럼]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레지스탕스로 활약한 프랑스 소설가 카뮈는 괴벨스로 대표되는 나치의 선전선동술에 맞서 지하신문과 잡지에 ‘독일 친구에게 부치는 편지’를 여러 편 썼다. 드골 정부가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특히 언론인을 가혹하게 처단할 때 논란이 일자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증오를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그러나 정의는 기억의 바탕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청산의 기억이 아예 없어서인가? 일제와 독재정권에서 왜곡보도 경력을 쌓은 우리 언론은 그것이 하나의 전통으로 굳어진 듯하다. 수많은 공안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박근혜 정권의 선전과 일부 언론의 보도태도는 나치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미화, 전이(transfer), 단순화, 시민 가장, 과장, 선택적 정보 제시, 딱지 붙이기, 부화뇌동, 증언, 감정이입 등 괴벨스의 온갖 선전선동술이 동원된다.

박정희 대통령 탄신제에서는 ‘미화’를 넘어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신격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는 “북한 세습정권과 통합진보당 RO, 정의구현사제단은 공통점이 있다”며 ‘전이’와 ‘단순화’를 시도했다.

국정원은 ‘시민을 가장해’ ‘과장된’ 댓글을 달고, 통합진보당 RO에는 ‘선택적 정보 제시’로 재판도 받기 전에 엄청난 내란음모 집단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재판과정에서 녹음파일과 다르게 녹취록을 작성한 대목이 두 모임에서만 272곳에 이르고, ‘선전 수행’을 ‘성전 수행’, ‘절두산성지’를 ‘결전성지’, ‘구체적 준비’를 ‘전쟁 준비’로 왜곡했건만 한번 ‘부화뇌동’한 소위 애국단체 회원들의 머릿속에는 자기수정 기능이 없다.

제보자 법정진술 가운데 “국정원에서 ‘조직명이 RO인가’라고 물어서 ‘아마 RO였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한국전쟁 때 좌우익 할 것 없이 허술한 ‘증언’에 따라 처형된 수많은 비극이 떠오른다. 이른바 ‘RO’를 무조건 옹호하는 게 아니라 증거주의에 입각해서 그들의 실정법 위반 여부에 따라 처벌 여부를 결정해 진정한 법치주의를 확립하자는 것이다. 막가는 여론재판은 인민재판의 부활이다.

전주교구 강론 사건도 박창신 신부의 취지는 깡그리 무시되고 말꼬리를 잡아 정의구현사제단에 종북 ‘딱지를 붙이고’, 시국집회를 차단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 박 신부 발언 중 공격의 빌미를 만든 일부 내용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의 취지는 집권 1년도 안돼 나라를 이 꼴로 만들고 반성조차 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기도는 잘되기를 바라면서 은총을 기원하는 것인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잘되라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럴듯한 ‘감정이입’의 말솜씨지만 박 신부는 대통령 개인보다 나라와 민주주의가 잘되기를 더 바랐을 뿐이다. 그것이 대통령이 잘되는 길이기도 하다. 박 신부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는데 그 법 7조 1항에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구절이 있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야말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니 그들 기관원을 보안법으로 다스리는 게 차라리 법 취지에 맞겠다.

박 대통령은 ‘애국심과 단결’을 강조한 뒤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을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유신 시절 아버지 어법을 구사했지만 분열을 야기한 최고책임자는 그 자신이 아닐까? 용납하지 말아야 할 대상은 밝혀진 것만도 121만번이나 댓글을 퍼뜨린 국가기관들이 아닐까? 침묵하는 대상과 묵과하지 않는 대상이 편 가르기로 정해진다면 분열은 피할 수 없다.

 

▲ ⓒ 경향신문 김상민 기자

▲ 미화, 과장, 단순화
 딱지 붙이기, 감정이입 등
 괴벨스 선전선동술 총동원

▲ 집권 세력과 생각 다르면
 누구든 ‘종북’이 되는 사회

▲ 좌파 사르트르의 ‘반역’
처벌하자는 주장에 우파 대통령 드골은…

집권세력과 생각이 다르다 하여 ‘종북’이라 몰아붙인다면 나 자신도 ‘종북’이다. 백령도에서 북한군과 대치하며 해군장교로 복무했지만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까. 유신 때의 ‘총화단결’ 같은 것을 추구한다면 북한체제와 다를 게 없을 테니 정부 당국자들도 ‘종북’이 된다.

정부 요직을 공안검사와 대장 출신이 거의 독차지한 건 남북 간은 물론이고 남한 내에서도 대결국면으로 갈 때 긴요한 진용이다. 박 신부 발언도 문맥을 살펴보면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정당화한 것이 아니라 남북 대결국면이 계속되면 불행한 사태가 따른다는 지적이었다. 한·미 군사훈련이 북한에 위협적이었다 해도 민간인이 사는 섬을 포격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국민을 섬기는’ 정부라면 청년들의 희생이 아니라 정치와 외교를 통해 안보를 튼튼히 해야 했다.

박근혜 정부의 남북대결 국면과 공안정국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몸 사리는 민주당과 왜곡보도하는 언론이다. 매카시의 전기를 쓴 로버트 그리피스는 매카시즘의 득세 요인으로 당시 야당인 미국 민주당의 소극적 대처를 꼽았다. 정권의 수호천사나 다름없는 방송과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또 다른 괴벨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박 신부의 강론을 해석하는 걸 보면 거의 난독증 수준이다.

괴벨스가 세계에서 가장 값싼 ‘국민 라디오’를 보급해 나치체제 유지에 활용한 것처럼 보수정권은 보수신문사에 종편을 허가해 대부분 논조가 비슷한 21세기형 ‘국민 라디오’를 창설했다. 괴벨스의 말대로 ‘정부가 연주하는 피아노’나 다름없는 언론이 많다.

괴벨스는 “나에게 한 문장만 주면 누구든 감옥에 보낼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예컨대 “무엇을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대답하면 어떻게 될까? “뭐라고? 조국은 사랑하지 않는단 말이야!” 국가반역죄로 투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칭 ‘애국세력’들은 툭하면 이정현 홍보수석처럼 ‘조국이 어딘지’ 묻고, 박대출 의원처럼 ‘종북하지 말고 월북하라’고 말한다. 정치적 반대자를 ‘비국민’으로 취급하려는 것이다. 박 신부는 광주 사태의 진상을 알리려다 테러를 당해 장애인이 된 사람이다. 현 정권 실세 중에는 군대에 가지 않거나 평생 자신의 입신영달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많다.

윤상현 의원을 예로 들면, 민주화 투쟁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희생될 때 사교모임인 ‘서울대 걸레 클럽’ 회원이었고, 군대도 석사장교로 임관 당일 전역했다. 청와대에서 전두환 딸과 결혼한 뒤 이혼하고 지금은 재벌가 사위가 됐다. 개인사를 들추고 싶지 않지만 애국을 독점한 것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취지다.

좌파 지식인 사르트르는 드골을 사사건건 비판하며 알제리 독립운동 때는 프랑스에서 모금한 독립자금 전달책을 자원하기도 했다. 반역행위로 처벌하자는 측근의 말에 골수 우파 대통령 드골이 대꾸했다. “그냥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


* 이 기사는 <경향신문>과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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