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차상, 장경혜

▲ 장경혜 기자
김소진의 소설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는 밥풀떼기라는 존재가 등장해 불량한 갈등을 유발한다. 밥풀떼기는 밥그릇에 담기지 못하고 떠도는 사회적 잔여들, 곧 마을의 부랑자나 거지들을 상징한다. 민주투사들은 이 밥풀떼기들이 벌이는 온갖 열정적 행동들에 당혹해 한다. 이 소설의 묘미는, 소설 속 적대전선이 '민주투사' 대 '독재자'가 아니라, '민주투사' 대 '밥풀떼기'라는 데 있다. 대학생과 지식인 위주인 민주투사들은 이성적으로는 이 부랑아들을 민주투사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밥풀떼기들의 말투와 행동이 천하고 상스럽다. 작가는 이 ‘불편한 적'인 밥풀떼기가 진짜 '적'을 가려버리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민주투사 대 밥풀떼기의 구도가 선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지난 대선이었다. 스스로를 ‘깨시민’, 곧 ‘깨어있는 시민’이라 부르는 젊은 세대들은 노인세대를 쓸모없는 잉여, 곧 밥풀떼기로 분류하고 정치적으로 소외시켰다. 이는 대선 후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노인 무임승차 제도 폐지 청원'에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아고라에 올라온 2030의 청원은, 5060세대를 같은 위계의 국민으로 생각했다면 표출될 수 없는 적대였다. 소설 속에서 밥풀떼기가 밥이 되지 못했듯, 젊은층에게 노인은 국민이 아니었다. 애초부터 젊은층에게 노인이란 그저 할 일 없이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사회적 잉여였다.

이는 모든 가치를 시장원리에 위임하는 신자유주의의 확장과 관련된다. 시장원리로 환원할 수 없는 '가치'의 영역까지 시장논리가 들어와 지배한 것이다. 젊은 층이 노인을 보는 잣대는 '경제성'에 있다. 무임승차 폐지 주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젊은 층이 분노하는 요인은 ’쓸모없는 주제에 내가 낸 세금으로 시내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투표권과 내 투표권의 가치가 어떻게 동일할 수 있는가’였다. 일단 '무용'하다는 데 내포된 혐오는 '자기계발'과 '처세'를 내면화한 젊은층의 본능적인 것이었다. 가치의 영역이었던 '공경'마저 경제성의 논리로 해석되고 해체되는 풍조가 지난 대선에서 겪은 세대 갈등의 시발이었다.

해결은 가족시스템의 복원에 있다. 가족은 인간관계를 맺는 1차집단이다. 늘 가족과 소통할 수 있어야 그 속에서 시장가치로 평가될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을 배울 수 있다. 또 사람을 물질적인 존재로만 생각하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윤리적 감수성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부모세대와 자식세대는 각자 그들대로 극심한 경쟁에 노출되면서 소통의 기회를 잃게 되었다.

새 정부는 국민대통합을 약속했다. 그 실행은 가장 작은 집단인 가족집단부터 통합하는 생활정책들을 통해 시작될 수 있다. 소통할 수 있는 여력을 길러주는 것, 곧 따뜻한 물을 부어 밥풀떼기들을 밥과 섞이게 하는 '관용'의 정책을 기대해본다. 우리 모두는 밥인 동시에 밥풀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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