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만능사회의 체육과외 ② 조기유학생도 방학특강
미국 애틀랜타주의 한 사립중고등학교에 2년 전 딸을 유학 보낸 김모(45·여)씨는 지난 7월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온 아이를 위해 농구코치를 섭외했다. 교내 농구클럽에서 뛰고 있는 딸(15)이 친구들에게 뒤처질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1학년까지 다녔는데 농구를 거의 해볼 기회가 없었죠. 운동선수가 될 생각이 아니라면 운동부에서 받아주지도 않잖아요. 미국 학교에선 기초가 부족한 아이도 농구클럽에서 받아줘 열심히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운동 경험이 많은) 미국 아이들에게 떨어지지 않으려면 좀 더 체계적인 농구레슨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
김씨의 딸은 약 한달 정도 주2회 각 1시간씩, 역시 조기유학생인 한 남학생(15)과 함께 2대 1로 개인지도를 받았다. 비용은 1인당 20만원. 두 학생은 세밀한 지도를 받고 운동에 좀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여름방학은 ‘조기유학생 성수기’
체육전문학원들에게 여름방학 기간은 ‘조기유학생 성수기’로 꼽힌다. 국내에서 스포츠의 기초를 다질 기회가 없이 외국학교로 떠난 중고생이 개인지도를 받기 위해 이들 학원을 찾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체육전문학원장(35)은 “외국 중학교의 방학 무렵이면 ‘개인레슨 가능하냐’는 문의전화가 3일에 한 건 정도는 온다”며 “방학 한달 동안 조기유학생을 3~4명 정도 가르친다”고 말했다.
조기유학생들은 배구나 농구 등 구기 종목을 많이 배우는데, 대개 전문코치에게 1대1로 지도를 받는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체육전문학원을 운영하는 김모(30)씨는 “미국학교의 농구클럽에서 뛰는 중고생에게 드리블과 패스기술 등을 가르쳤다”며 “유학생 뿐 아니라 국내에 있는 국제학교 학생들도 체육 과외를 꽤 많이 받는다”고 덧붙였다. 1대1 지도인 경우 교습비는 주 1회, 1시간 수업에 월 30~40만원 수준으로 시간당 10만원 가까이 되지만 조기유학생 부모들은 크게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고.
교내에 여러 종목의 스포츠클럽이 왕성하게 운영되는 미국과 유럽 등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체육이 수업이라기보다 생활의 일부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친구를 사귀고 소속감을 강화할 수 있는 활동이 스포츠클럽을 통해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평가를 위한 체육 수업’외에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해 보지 못한 조기유학생들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방학 때 체육과외를 위한 한국행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점수 매기는 한국학교 체육시간, ‘지루했던 기억 뿐’
고등학교 1학년 때 홍콩으로 유학 갔다가 다시 서울의 한 대학에 진학한 한모(19)양은 “한국 학교에서는 체육시간에 스탠드에 앉아 수다를 떨었던 기억밖에 없다”며 “홍콩에선 (경험이 없어도) 농구클럽에 들어가 남녀구분 없이 매일 1시간씩 농구를 했고 이 과정에서 친구들과 많이 친해졌다”고 말했다. 한양도 처음엔 기본기가 부족했지만 과외를 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고, 열심히 연습해서 나중엔 학교 선수로까지 뛰게 됐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사립고를 졸업하고 역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소모(21․ 여)씨는 “스페인의 학교 체육수업은 선생님과 학생이 함께 새로운 종목을 배우는 시간이었다”며 “줄넘기 몇 개 넘나, 농구공 몇 개 넣나로 평가하는 한국학교의 체육시간은 재미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성균관대 교육학과 양정호 교수는 “국내 학교에서 스포츠 활동을 제대로 못 해보고 외국에 나간 학생들이 부족함을 느껴 과외를 찾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며 “우리나라도 아이들이 원하는 운동을 다양하게 할 수 있게 학교 체육의 여건을 만들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계속)
입시학원이 학교교육을 대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 사회. 최근에는 '수행평가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체육까지 과외를 하는 초중고생이 늘고 있다. 스포츠 기본기를 다지지 못한 채 해외로 간 조기유학생들도 방학 특강을 받으러 온다는 국내 체육과외의 현장을 청년기자들이 찾아갔다.(편집자) |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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