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우수, 김휘연

▲ 김휘연

"진짜 산 넘어 산이다. 왜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끝이 안 보이는 길을 걷는 걸까?" 얼마 전 친구와 나눈 대화다. 일을 하나 해치웠다 하면 또 다른 일이 생긴다. 당장 눈앞에 닥친 과제를 끝내면 시험이 다가온다. 이뿐만 아니다. 대입과 취업, 직장생활로 이어지는 전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항상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내몰고 다그친다. 당장 할 일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해진다. 

사람들이 '여유'를 불안해하고 스스로 '일'을 찾는 현상에 대해 <피로사회>의 저자 한병철은 '성과사회'의 한 증상으로 진단했다. 그는 우울증 등의 현대 신경성 질환들이 긍정성의 과잉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회에서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생긴 것이 우울증이다. 

그는 이런 성과사회에서 개인이 주체를 회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깊은 심심함'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색이 세계 속의 침잠을 가능케 한다고도 했다. 책에 제시된 것 말고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다른 예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Leisure(자유로운 시간)' 안에서 갈고 닦은 학문을 통해 인간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했다. 'Leisure'는 우리가 오늘날 부르는 'School'의 어원이기도 하다. 여유 속에서 학문이 성과를 낸다는 건데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 분위기는 정반대다. 

<피로사회>를 읽으며 나 또한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심신이 너무나 피로해졌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다. '긍정성의 과잉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걸까? 개인이 '깊은 심심함'을 갖는 것으로 성과사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한병철은 '일 권하는 개인'은 이야기하지만 그 배경을 이루는 '일 권하는 사회'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말하지 않는다. 개인을 성과주체로 만든 사회의 역할을 무시하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현대사회에 만연한 우울증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근대>에서 ‘법률상 개인’과 ‘실제상 개인’을 언급하며 이 둘 사이 괴리가 커질 때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법률상 개인은 사회의 기대에서 개인이 되어야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실제상’의 개인은 법률상의 개인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 둘 사의의 모순과 괴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우울증이다. 하지만 이 법률상 개인은 자기계발 논리와 기업의 동기유발 산업이 공고하게 만들어왔다. 그럴수록 실제상 개인과는 거리가 더욱 멀어졌다. '일 권하는 개인'에 대한 설명은 ‘피로사회’로 가능할지 모른다. 이제 '일 권하는 개인을 만든 사회'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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