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아르바이트 ⑤ ‘기업살인법’을 요구하는 이유

“직원들은 무서워서 못 들어갔습니다.”

지난 8월 5일 경북 문경의 회룡저수지 배수관로 공사장에서 대학생 이모(21)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여름방학 동안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일하던 이씨는 지름 150센티미터(cm)의 좁고 어두운 배수관에서 누수점검을 하다 산소결핍으로 질식한 뒤 익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래 이런 배수관의 결함을 조사하는 데는 사람이 아닌 로봇이 투입돼야 하지만 이날은 장애물에 막혀 로봇이 전진하지 못하자 이씨가 대신 투입됐다고 한다. 하청업체 직원은 사고조사 과정에서 자신들은 무서워서 못 들어갔다는 말을 했다고 민주당 관계자가 언론에 전했다. 반면 이씨는 마스크 등 최소한의 안전장비도 없이 투입됐다는 것이다. 이씨의 죽음에 대해 사업을 발주한 한국농어촌공사도, 현장공사를 맡았던 용역업체도 사과와 보상책을 내놓지 않아 가족이 약 3주간 장례를 거부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결국 농어촌공사 대신 용역업체가 사과하고 보상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 지난 8월 노동건강연대와 알바연대, 정당 관계자들이 국회에서 문경 아르바이트생 사망사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농어촌공사의 공식사과와 사고 재발방지 대책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알바연대

지난 2011년 7월에는 경기도 일산의 이마트 탄현점 기계실에서 터보냉동기 보수작업을 하던 인부 4명이 냉매가스 유출로 질식해 숨진 일이 있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황모(22)씨도 희생자 중 하나였다. 이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마스크 등 안전장비도 없이 일하다 냉매로 쓰이는 프레온 가스에 질식, 사망했다. 이 사고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고발된 이마트 탄현점장은 약식기소로 벌금 100만원을 무는 데 그쳤다. 

원청은 하청에게, 하청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위험 전가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자를 대변하는 알바연대의 이혜정 대변인은 기업들의 왜곡된 하청관계에서 일용직, 아르바이트생 같은 약자에게 최종적으로 위험이 전가되는 구조를 비판했다. 

“위험한 현장은 원청이 하청업체에 맡기고, 하청은 이 일을 힘없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 서울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모씨의 근로계약서. 점심시간 외에 오전 오후 각 30분간의 자유로운 휴식을 보장하고 있지만 공사기일에 쫓기는 현장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일을 재촉한다. ⓒ 박다영

▲ 비정규·불안정 노동자를 대변하는 알바연대의 회원들이 지난 28일 울산에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인권침해 실태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알바연대

노동건강연대의 박혜영 노무사는 기업들이 툭하면 노동자들에게 ‘안전불감증’이란 혐의를 씌우며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철저한 안전장치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짜 ‘안전’은 프레스기에 손가락이 빨려 들어가도 다치기 전에 기계작동이 멈추도록 조치를 해놓는 겁니다. 기업과 관리자는 안전장치를 제대로 마련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데도 안전을 위한 비용은 투자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10만원짜리 안전펜스가 없어 추락사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산업재해통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0년 서울대병원 신상도 교수팀이 응급실을 찾은 직업성 손상자 수를 연간 약 21만 명으로 추정했는데, 실제 산재신청자수는 이의 10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해도 산재처리되지 않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현장노동자들은 산재보상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일용직들이 신청을 못하는 경우가 많고, 산재신청기록이 있는 사람은 기업이 채용하길 꺼린다는 이유로 자비로 치료받는 사람도 꽤 있다고 증언한다. 

사람 죽이는 기업을 엄벌하라 

사실 우리나라에는 아르바이트생 뿐 아니라 정규직, 비정규직을 통틀어 모든 노동자들에게 위험한 작업장이 많다. 그래서 노동계와 야당에서는 ‘기업살인법’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노동자가 산재사고로 숨졌을 때 책임자 구속수사와 징벌적 손해배상 등으로 엄벌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범죄의 단속 및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혹은 ’산재사망 처벌강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산재사망사건을 일으킨 기업관계자에게 대부분 벌금형이나 무죄선고가 내려지고, 한 작업장에서 노동자 40명이 숨져도(2008년 이천 냉동창고화재) 2천만원의 벌금만 내면 그만인 현실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 지난해 4월 26일 국제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맞아 양대 노총이 참여한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 캠페인단'이 노동자의 상징물인 안전모와 장갑, 조끼 등에 헌화했다. ⓒ 노동건강연대

기업살인법은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는데, 오랜 사회적 논의 끝에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이란 이름으로 제정됐다.  이 법에 따른 첫 유죄판결은 2011년 한 노동자가 시험광구에서 샘플을 채취하다 웅덩이에 빠져 숨진 사건에서 총 35만5000파운드(약7억원)의 벌금을 기업에 부과한 것이다. 회사 연매출액의 250%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기업살인법 시행 후 영국의 산재사망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기업들이 바싹 긴장해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와 호주도 ‘산업살인법’ 등 비슷한 취지의 법을 도입했다.

박혜영 노무사는 “위험한 업무는 하청과 약자에 전가하는 구조에서 그 책임을 사회와 기업에 묻지 않으면 모든 기업이 안전비용은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며 “산재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최고 수준, 영국의 약 14배라는 현실에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악순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비와 생활비 등의 경제적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짧은 기간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고위험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대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숙련 임시직인 '청년 알바'는 작업장 안전조치가 허술한 여러 산업현장에서 가장 쉽게 사고에 노출되고, 종종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이처럼 위험한 아르바이트의 실태를 청년기자들이 생생한 현장체험과 심층취재를 통해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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