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니] ‘라디오 스타’, 호불호 엇갈렸던 레이디 제인의 독무대

최근 종편에서 솔직하고 대담한 토크쇼들이 활개를 치고 있지만 사실 그 기원은 문화방송(MBC) <라디오 스타>가 아닐까 싶다. <라디오 스타>의 토크 내용은 방송심의 규정의 경계를 넘나들 만큼 아슬아슬하다. 실제로 지난 7월 24일 방송분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권고’를 받는 등 그동안 여러 차례 제재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라디오 스타>를 소비하는 방식을 정확히 알고 있다. 연예인들의 진실 혹은 치부를 한 꺼풀 벗겨낼 때 마다 한껏 웃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김구라가 공동 진행자로 복귀한 이후 <라디오 스타>의 본래 색깔은 더욱 분명해졌다. 그는 자신의 불량한(?) 생각을 거리낌 없이 털어놓고, 출연자의 약점도 스스럼없이 들춰낸다. 어지간한 입담과 넉살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레이디 제인, 가십거리를 역이용하다

▲ 23일 방송된 <라디오 스타 - 여가수의 은밀한 매력 편>. ⓒ MBC 공식 홈페이지
10월 23일 방송된 <라디오 스타>는 진행자인 김구라 못지않은 게스트가 출연해 화제가 됐다. 바로 힙합 랩퍼 쌈디의 옛 여자 친구로 유명세를 탔던 레이디 제인이다. 박지윤, 서인영, 권리세와 함께 등장한 레이디 제인은 초반부터 이야기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쌈디의 여자 친구, 홍대 인디씬 여성 보컬이라는 점 외에 그리 알려진 바 없었던 레이디 제인은 작심이라도 한 듯 <라디오 스타>에서 예능감을 발휘했다. 여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다져온 내공을 뽐내려는 듯 좌중을 휘어잡았다. 전 주(16일) 7.2%(닐슨코리아, 전국기준)였던 시청률은 레이디 제인의 예언대로 소폭 상승하여 7.6%를 기록했다.

이날 레이디 제인은 여성으로서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직설적인 토크를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벌였다. MC들이 그녀가 쌈디의 헤어진 여자 친구라는 점을 이용, 공세를 취하려하자 그 속셈을 간파라도 한 듯 당황하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의 연애사를 스스로 공개해 버렸다. 오히려 쌈디의 성대모사를 곁들여 연애 에피소드를 맛깔나게 전해주는 뒤끝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5년 동안 연애하다 그만둔 직후인데도 어색한 기류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지금도 쌈디와 친구로 지낸다는 레이디 제인의 활달한 모습은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어버린, 일종의 반전이었다. 이런 부분이 <라디오 스타> 특유의 강점이고, 시청자를 사로잡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입담 과시하고도 곤욕 치른 이유는?

▲ 입담을 과시하고도 곤욕을 치른 가수 레이디제인. ⓒ MBC 공식 홈페이지
이날 스튜디오엔 4명의 게스트가 출연했지만 방송은 거의 레이디 제인 위주로 진행되는 듯 했다. 이를 두고 네티즌 사이에선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 트위터 아이디 af700****는 “분량 자체도 거의 원맨쇼에 가깝고, 서인영도 병풍으로 만들어버리는 위세니 말 다 한 듯”이라며 “박지윤 얘기를 많이 듣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부정적으로 본 반면 아이디 mcst****는 “방송 분량 절반이 레이디 제인이었음. 레이디 제인이 방송 살렸음”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편집이 특정 출연자에게 지나치게 편중됐다는 게 문제가 된 것이다. 제작진 입장에선 재미있는 출연자 중심으로 편집을 하는 게 당연했겠지만, 어느 정도는 균형을 잡아줬어야 했다.

프로그램 뿐 아니라 그녀 자신도 수많은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레이디 제인한테 서인영은 까마득한 선배 아닌가? 나이가 같아도 예의는 지켜야지”, “상대 연예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여자”, “인지도는 상승시켰으나 이미지는 떨어진 듯” 등 레이디 제인의 태도를 지적하는 댓글이 많았다. ‘레이디 제인’이란 이름은 이틀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렸고, 그녀는 마침내 트윗을 통해 사과의 말까지 남겨야 했다. 이 모든 논란의 원인은 레이디 제인의 예상치 못한 활약 때문이었다. 예능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게 열심히 했을 뿐인데도 말이다.  

▲ 방송 후 레이디 제인은 트위터를 통해 사과했다. ⓒ 레이디 제인 트위터
<라디오 스타>는 주로 연예인들의 사생활과 비공식적인 활동을 이야깃거리로 삼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표현의 한계를 넘나들긴 하지만 시청자는 거기에서 웃음을 얻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지난 7년간 인기를 유지한 비결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춰 적극적으로 이야기 한 여성 연예인이 곤욕을 치렀다. 공중파 방송의 텔레비전 토크 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낮은 임계점과, 그리고 아직도 여전한 성차별 의식을 목도할 수 있는 방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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