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아르바이트 ① 골재선별 작업장의 하루

학비와 생활비 등의 경제적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짧은 기간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고위험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대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숙련 임시직인 '청년 알바'는 작업장 안전조치가 허술한 여러 산업현장에서 가장 쉽게 사고에 노출되고, 종종 목숨을 잃기까지 한다. 이처럼 위험한 아르바이트의 실태를 청년기자들이 생생한 현장체험과 심층취재를 통해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지난 11일 오전 6시 경기도 시흥시의 한 인력사무소. 40대 여직원에게 “일하러 왔다”고 말하자 대뜸 “힘든 일 해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신분증을 복사하고 돌려주면서, 긴 의자에 앉아있던 중년 남자 셋을 가리켰다. 어디로 가는지, 무슨 일을 할지도 모르는 채 세 남자를 따라 나섰다.

일행 중 한 명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전 7시쯤 도착한 곳은 한 화력발전소 부근의 함바집(현장식당). 된장국과 나물 등 아침식사가 나오자 30대로 보이는 김모씨가 “일할 때 쓰는 장갑은 따로 주지 않으니 미리 사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안전장비와 작업수칙은 ‘각자 알아서’

근처 편의점에서 손바닥이 빨갛게 코팅된 1000원짜리 목장갑을 산 뒤 발전소 입구에서 신분증 검사를 받고 공장에 들어갔다. 세 남자는 휴게실로 불리는 33㎡(10평) 크기의 조립식 건물에서 전날 두고 갔던 각자의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휴게실 한쪽 벽면에는 노란 고무소재의 방진복 한 벌과 안전모 몇 개가 걸려있는데, 끝단마다 고무줄 처리가 돼 있는 방진복은 골재회사 직원들만 입을 수 있다고 했다. 기자는 입고 간 검정 바지와 티셔츠 차림 그대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 골재회사 야적장에 쌓여있는 인공골재 무더기들. 바닷바람이 늘 불고 있어 근처 작업자들에게 분진이 날아간다. ⓒ 김태준

일행에게 맡겨진 일은 화력발전소의 석탄재로 만든 인공골재(콘크리트 속에서 골격 역할을 하는 고체재료) 중에서 불량품을 골라내는 일이었다. 골재회사 소속의 40대 직원이 골재선별기 앞에서 간단한 시범을 보여줬다. 하지만 작업하는 동안 지켜야 할 안전수칙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르르르르륵’ 쉬지 않고 선별기에서 떨어지는 골재 때문에 귀가 아팠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뒤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일종의 환청이었다. 귀마개를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구할 수도 없었고, 있다 해도 착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골재를 옮기기 위해 쉴 새 없이 오가는 ‘로더(삽처럼 짐을 싣는 데 쓰는 중장비)’를 피하려면 경고음에 신경을 써야 했다. 성인 남성 키의 두 세배 높이나 되는 중장비가 지나갈 때마다 ‘혹시 나를 못 보고 사고를 낸다면?’하는 섬뜩한 생각이 들어 절로 긴장이 됐다. 

코와 입을 틀어막아도 참을 수 없는 분진  

▲ 골재선별기가 석탄재를 주성분으로 하는 인공골재를 토해내는 과정에서 많은 분진이 발생한다. 일용직 작업자들은 마스크 등 보호장구도 없이 유해 분진을 들이마신다. ⓒ 김태준

▲ 골재선별기를 거친 인공골재를 컨베이어 벨트가 한 곳에 쌓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많은 분진이 발생한다. ⓒ 김태준

야외 작업장에서 바닷바람을 타고 날리는 희뿌연 분진이 쉴 새 없이 코와 목구멍을 파고들었다. 일을 시작한지 3시간 째, 목이 너무 따가워 가래를 뱉자 좁쌀 크기의 누런 덩어리들이 섞여 나왔다. 석탄재의 일종인 ‘플라이애쉬(Fly Ash)’에는 발암성분이 있는 중금속 등의 유해성분이 섞여있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래선지 10미터(m) 거리에서 폐기물 처리를 하던 골재공장 직원들은 방진복과 함께 플라스틱 소재의 방진 필터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때서야 덜컥 걱정이 돼 휴게실로 뛰어갔다. 하지만 방진 필터가 달린 마스크는 없었다. 대신 다른 사람이 썼던, 입부분이 새카만 일반마스크만 뒹굴고 있었다. 아쉬워서 그거라도 써봤지만 여전히 입안은 까끌했고, 가래는 계속해서 끓었다.

덜덜거리며 작동하던 골재선별기는 낡아서 그런지 자주 멈췄다. 그럴 때마다 기계를 살피고 작동스위치를 다시 켜는 것은 신참의 몫이었다. 전원이 꺼진 것을 보고 장갑 낀 손으로 '꺼짐(off)'에서 ‘켜짐(on)’으로 스위치를 올렸다. 그런데 누전차단기가 자꾸 내려가 직원을 부르자 직원은 손을 대지 않고 플라스틱 끈을 동그랗게 말아 스위치를 움직였다. 감전을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손으로 스위치를 만졌던 걸 생각하니 뒤늦게 아찔했다. 

▲ 낡은 골재선별기는 툭하면 작동을 멈춘다. 이를 다시 작동시키는 과정에서 감전 위험도 있다. ⓒ 김태준

“이런 일은 웬만하면 하지 마소.”

4시간 작업을 마친 뒤 함바집에서 배달해준 점심을 함께 먹다가 40대 초반의 이모씨가 기자에게 말했다. “나이 든 분들도 하는데 젊은 사람이 못할게 뭐 있냐”고 받아 치자 이씨가 정색을 했다. 
 
“여기 눈에 보이지 않는 골재 분진이 얼마나 많은지 압니까. 당장 병이 안 나도 나중에 골병들게 뻔한데. 학생처럼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한테는 (회사가) 신경도 안 써요. 마스크랑 옷만 봐도 알지. 여기가 위험하니깐 방진복을 입히는 거 아냐. 그런데 우리는 평소 입는 작업복으로 일하라니까 어이가 없지.”

오후 작업시간에는 마스크 대신 코와 귀에 휴지를 돌돌 말아 넣고 일했다. 작업이 끝난 후 보니 코를 막았던 휴지에 시커먼 분진이 묻어 있었다. 오후 8시, 12시간의 노동을 끝내고 인력사무소로 돌아가 받은 일당은 10%의 소개료를 떼고 12만원. 아르바이트생에게는 큰돈이었지만 다음 날 또 일해야 한다면 너무 괴로울 것 같았다. 여전히 귀는 웅웅대고 목은 따끔거렸다. 눈도 이물감 때문에 몹시 불편했다. 늦은 밤이 되자 웅웅거리던 환청은 사라졌지만 목이 아프고 가래가 끓는 증상은 2~3일 이어졌다. (계속)  


 * 이 기사는 KBS와 단비뉴스의 공동기획 '청년기자가 간다' 시리즈로 <KBS뉴스> 홈페이지와 <단비뉴스>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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