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 한국 언론의 현실과 해법 진단

"이 정도로까지 무너질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담한 심정입니다."

<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는 요즘의 KBS 뉴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87년 한국방송(KBS) 기자로 입사해 매체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포커스>와 탐사보도팀 등을 이끌었으나 이명박 정권 들어 각종 탄압을 받다가 지난 2월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MB 시대 해직 언론인들과 함께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KCIJ)를 설립하고 '비영리, 비당파, 독립언론'을 표방하는 <뉴스타파>의 대표를 맡았다. 또 국내 유일의 2년제 정규 저널리즘스쿨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의 교수로 부임해 탐사보도 등을 강의하고 있다.

그가 이끄는 <뉴스타파>는 지난 5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유일한 한국 파트너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에 참여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씨의 페이퍼컴퍼니 설립과 해외 비밀계좌 보유 실태 등을 폭로했다.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한 한국인 수백 명의 명단을 폭로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제대로 된 뉴스를 하기 위해" KBS에 사표를 내고 나왔다는 김 대표에게 KBS를 비롯한 현재 한국 주류언론의 상황과 언론인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 김용진 <뉴스타파>대표는 “정파성을 버리고 진실에 헌신하는 것이 언론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과 끝”이라고 밝혔다. ⓒ 이대용

"KBS, 우리 사회에서 더욱 위험한 존재 돼 가고 있다"

- 지난 9월 30일, 한국방송(KBS) <뉴스9>은 톱부터 연속 세 꼭지로 앞선 TV조선의 보도를 인용해 채동욱 총장의 내연녀로 지목된 임아무개씨 집의 가정부였다는 이씨의 진술을 보도했다. 지난 정권에 이어 완벽히 어용화 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한 때 몸담았던 일원으로서 요즘의 KBS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참담하다. KBS에서 20여 년 기자로 일했지만 여러 측면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타 매체의 보도를 KBS가, 더군다나 9시뉴스가 톱부터 그대로 받아서 베껴 쓰는 경우는 처음 봤다. TV조선의 보도 내용은 대부분 임아무개 여인 집에서 가정부로 일했다는 이아무개 여인의 주장을 근거로 하고 있다. 주장의 진위 여부를 KBS 취재기자의 판단과 내부 게이트키핑 과정을 통해 가려낸 다음 보도하는 것은 취재보도의 ABC다.

사안이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개인의 인권 문제와도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하루 이틀 보도가 늦춰지더라도 KBS는 이 여인을 상대로 당연히 직접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KBS 간부들도 취재보도의 ABC는 잘 안다. 문제는 집권세력에 타격이 될 수 있는 사안이 대두됐을 때는 보도의 기본원칙을 들먹이며 매우 신중해지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이번 경우처럼 그 원칙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KBS는 신뢰도, 영향력 조사에서 언론사 중 압도적 1위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KBS는 우리 사회에 더욱 위험한 존재가 돼 가고 있다."    

-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채동욱 혼외자식 의혹 등 최근 주요 이슈들에 대한 주요 일간지 및 지상파 뉴스 등의 언론 보도는 어떻게 보고있나?

"한국 언론지형은 권력추수적, 이윤추구적 언론모델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들은 정파적 이익, 상업적 이익이라면 눈에 뻔히 보이는 사실도 외면하며 '진실한' 팩트 보다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팩트를 찾는데 집중한다. 국정원의 정치, 선거 여론개입과 관련해선 너무나 많은 증거가 나왔다. 경찰의 사건 축소, 은폐도 내부 CCTV와 공판 과정에서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극우, 보수 신문과 방송사들은 이를 철저히 외면해 왔다. 반면 이석기, 채동욱 사건과 관련해선 논란과 의혹 차원의 사안들마저 기정사실화해서 마구잡이로 써댄다. 이건 저널리즘이 아니다. 물론 그 반대 진영도 정파성에 매몰됐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하지만 9대 1정도의 언론지형에서 양비론을 펴는 것은 무의미한 상황이다. 어쨌든 한국 언론의 진영논리는 갈수록 견고해지고, 진실을 통한 공통분모 형성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 언론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작과 끝은 정파성을 버리고 진실에 헌신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 지난 9월 16일부터 제이티비씨(JTBC)에서는 14년 만에 손석희씨가 직접 앵커를 맡은 <News9>을 선보이고 있다. 지상파를 비롯한 주요 언론이 외면한 국정원 고위 간부들에 대한 공소제기 명령,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시국미사 등을 보도하고, 일본산 수산물 수입 문제와 관련해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을 불러 식품 안전 문제를 따지는 등 참신하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한 긍정적 목소리가 높다. 어떻게 평가하나.

"형식에선 분명히 진일보한 면이 있다. 1분 20초짜리 리포트를 종합선물세트 식으로 나열하는 기존 지상파 뉴스 형식으로선 복잡다단한 사회를 제대로 보여주는 게 불가능하다. 기성 방송 뉴스가 오랜 관습과 타성, 수용자들의 고착된 시청 행태, 그리고 안정적 시청률 확보라는 측면에서 기존 포맷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반면, 손석희 뉴스가 여기서 탈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뉴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것이다. 아직 내용에서 새로운 뉴스, 제대로 된 뉴스라는 느낌은 주지 못하고 있다. 물론 지상파 뉴스들이 제대로 거론하지 못하는 사안을 다루고는 있지만 KBS, MBC 등이 워낙 망가져 있으니 그것에 대한 반사이익을 누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또 <뉴스9> 자체가 앵커의 이름값과 개인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종합뉴스에서 앵커의 역할이 중요한 건 맞지만 뉴스의 내용을 채우는 기본은 일선 기자들의 취재물이다. JTBC <뉴스9>이 개편 때 약속한 것을 제대로 실천해서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다른 종편과 지상파를 부끄럽게 만드는 자극제가 되길 바란다."   

-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200여 일이 지났다. 현 정부의 언론 정책은 어떤 것 같나?

"이 정부에 언론정책이라는 것 자체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명박 정부 때 MBC에서 10명, YTN에서 6명 등 모두 21명이 언론자유 투쟁 과정에서 해직됐다. 정직 등을 합치면 모두 4백여 명의 언론인들이 징계를 받았다. 전두환 정권 이후 최대의 언론탄압이 MB 시절에 자행됐다. 박근혜 정부는 언론 분야에서 이전 정권 때 해직된 언론인 복직 등의 문제를 해결할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

국회에선 방송공정성 특위가 설치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성과가 없다. YTN과 MBC 등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은 최장 5년 이상 해직 상태에서 신음하고 있다. MBC와 KBS 등은 정권 홍보방송, 선전방송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언론의 공공성은 갈수록 후퇴하고 있지만 이 정권은 이런 상황을 개선할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즐기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  

▲ <뉴스타파>는 지난 5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의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을 공개했다. ⓒ 오마이뉴스

- 지난해부터 <뉴스타파>를 필두로 한 비영리 독립언론의 태동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제작자 입장에서 볼 때 <뉴스타파>를 비롯한 비영리 대안언론, 독립언론만의 장·단점과 이 같은 매체가 장기적·발전적으로 커가기 위해 충족돼야 할 요건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기성 언론이 정파성, 이윤 동기에 매몰돼 언론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영리 독립언론의 출현은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본다. 기성 언론에 실망한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이라는 새로운 모델의 장점은 무엇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 규모는 작지만 중요한 사안에만 취재 역량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기성 언론보다 훨씬 더 전문성과 심층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

반면 인지도나 뉴스 유통 측면에서의 확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약점이다. 이는 앞으로 SNS와 다양한 플랫폼의 발달, 모바일과 스마트 혁명 등으로 인해 극복되리라고 본다. 권력이나 자본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비영리 매체 모델은 대세가 돼 가고 있다. 좋은 뉴스, 훌륭한 콘텐츠를 계속 제공할 수 있다면 이 모델은 장기적으로 존속 가능할 것이다."

김 대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는 대중이 존재해야 한다"며 " 예산과 정책에 대한 정보와 감시, 공직자 검증, 기업 감시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언론의 필수적 책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기성 언론매체들은 시민보다는 자본과 권력의 눈치를 보며 현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가리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제대로 된 뉴스를 하기 위해" KBS를 나와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의 간판을 달고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이끌고 있는 김용진 대표에게 기자의 책임과 역할에 대해 물었다.

"탐사보도만이 내가 기자 하는 이유"

- "탐사보도만이 내가 기자를 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처음부터 탐사보도에 관심이 있었나? 기자생활을 하면서 특별히 탐사보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다면 언젠가?

"기자 생활초기에 사건기자를 10년 가량 하면서 내가 다루는 게 너무 표피적이고, 일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복잡한데 뉴스는 너무 단순했다. 좀 더 깊이 파보자, 표면을 제거하고 이면을 들여다보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탐사보도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붕어빵' 같은 뉴스는 배격하고 생산량을 줄이더라도 깊이 있고 의미 있는 뉴스를 취재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매체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포커스>를 담당하면서 본격적으로 '탐사보도팀'을 구상하게 됐다. <미디어포커스> 시절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탐사보도의 전설인 시모어 허시나 BBC 파노라마팀, 가디언의 탐사 에디터 데이비드 리 등을 만난 것도 본격적으로 탐사보도에 전념하는 계기가 됐다." 

- 저널리즘이란 말에는 본래 탐사적인(investigative) 속성이 있다. 그러나 모든 보도를 '탐사'하기에는 취재여건상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기자로서 1분 30초 안팎의 단발성 리포트라도 최소한 이것만은 반드시 유념해야 할 보도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일까?

"'1분 30초'라는 게 복잡한 사안을 다루기에는 물리적으로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그 길이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 시간 내에 다룰 이슈에 대해 그 이전에 얼마나 치열하게 취재를 했느냐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요한 이슈를 철저하게 취재해서 기자가 사실 관계에 대해 확증을 할 수 있다면 1분 30초 안에서라도 기자는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는 팩트를 전달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방송 뉴스들이 1분 30초짜리 리포트에 걸맞게 취재에도 그 정도의 공력밖에 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 쟁점에 대해선 어느 것이 옳은가, 최소한 어느 쪽이 더 옳은가를 제시해줘야 하는데 쉽게 양측의 공방으로 처리해 버리는 게 쉽게 만드는 대표적 사례다. 언론은 1분짜리 뉴스든 1시간짜리 프로그램이든 '진실한 팩트'를 찾아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김 대표는 현재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에서 <탐사보도>, <미디어비평> 등의 강의를 하고 있다. ⓒ 이대용

김용진 대표는 "기자의 현실은 '사회의 목탁'이나 '빛과 소금'과 같은 낭만적 수식어와는 크게 다르지만 그래도 소명의식을 가진다면 이만한 직업도 없다"며 "기자는 좋은 자리보다는 늘 좋은 기사를 쓰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좋은 기사는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람들을 대변하고 권력을 감시해 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견인할 수 있는 기사"다.

그러나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공정방송의 기치와는 정반대로 실제 거대방송사엔 수직적이고 상명하복적인 기자사회 내부문화나 특유의 특권의식 등이 팽배해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정·관계로 진출한 이른바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도 유난히 많다. 그는 이에 대해 "많은 기자가 좋은 기사보다는 좋은 자리에 욕심을 내고, 자신과 권력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큰 문제고, 언론인들이 불신 받는 가장 큰 이유라는 생각이다.

"지상파, 종편, 보수신문, 진보신문 등으로 소속은 나뉘어 있지만 기자의 본질적 역할은 다를 수 없다"고 얘기하는 김용진 대표는 종편 출범 이후 넓어진 미디어 시장, 온라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하는 변화하는 언론 환경에 부합해 언론인도 융합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용진 대표는 현재 <뉴스타파> 비상임 대표와 함께 실무 중심 커리큘럼으로 언론인을 양성하는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대학원에 올해 초부터 교수로 부임해 <탐사보도 이론과 실습>, <미디어비평 실습>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충청북도 제천에 위치한 대학원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역유학해 왔다. 김 대표는 저널리스트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학생들 덕분에 "보람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감을 밝혔다.

또한 "미국 미주리 저널리즘스쿨에 있을 때 한국에도 이런 형태의 저널리즘스쿨이 있다면 경험과 취재 노하우를 언론 지망생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이곳의 학생들이 "대학원의 정규 커리큘럼과 특강, 그리고 단비뉴스라는 자체 매체를 통한 취재 실습 과정을 제대로 거친다면 한국 언론의 훌륭한 재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탐사보도는 어렵고 생경한 분야일 수 있지만 저널리스트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인내와 끈기, 열정, 불의와 부패에 대한 분노,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컴퓨터 활용 보도와 데이터저널리즘 등 과학적 취재보도방법과 더불어 체계적으로 습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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