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장터와 골목서 대중과 만나는 김현승 작가

경기도 수원의 벼룩시장과 안양시 관양시장, 남양주시 나눔장터 등에는 전국의 장을 돌며 판을 벌이는 ‘예술장돌뱅이’들이 종종 나타난다. 손한샘(45)씨를 주축으로 지난 2008년 결성된 프로젝트 예술가팀 ‘겸손한 미술관’에 속한 화가 10여명이 그들이다. 이 예술장돌뱅이들은 시장에서 만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대화를 모티브로 그림 등 작품을 만들고 물물교환도 한다. 이 중 화가 김현승(34)씨는 지난 2012년부터 ‘감성우체국’이란 이름으로 손님과 함께 손글씨엽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떤 생각으로 예술가들이 장터로 나왔는지, <단비뉴스>가 지난 2일과 지난 5월 23일 두 차례 김 작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 공공미술 작가 김현승씨. ⓒ 송두리

거리에서 소통하며 예술을 완성하다

“사람들과 소통하며 예술을 완성한다는 의미죠.”

김 작가는 장터에서 손님이 쓴 손편지의 내용에 맞게 그림을 그려준다.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친구처럼 서로 속내를 터놓기도 한다. 완성된 손글씨엽서는 주소를 쓰고 우체통에 넣는데, 때로는 김 작가가 직접 주소지로 전달할 때도 있다.

“그동안 만든 손글씨엽서 중 재혼하는 엄마에게 딸이 보낸 엽서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과거 투정만 부린 자신을 반성하고 어머니의 새로운 앞날을 축복하는 내용이었죠. 엽서를 보고 고민 끝에 두 개의 화분에 각각 심어진 꽃줄기가 서로 엮이는 그림을 그려주었습니다.”

김 작가는 세종대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한동안 순수미술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대중을 배제하고 작가가 가진 관점만으로 작품을 그리는 ‘작가주의’ 미술을 벗어나자는 생각에서 대중에게 가까이 가는 공공미술로 눈을 돌리게 됐다고 한다.

“공공미술을 흔히 조형물 설치나 행위예술 같은 공적인 장소에서 이뤄지는 미술이라 단정하는데요, 실제 범위는 그 이상으로 넓어요. 미술관처럼 한정된 공간을 벗어난 모든 활동이 공공미술에 포함되죠.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의미를 담고 있고 그것을 왜 하는지 이해하는 거예요.”

예술장돌뱅이에 참여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전시회를 하면 작가가 일방적으로 작품을 보여주는 형식이 되지만 예술장돌뱅이에서는 일반인들도 작업을 함께 하는 예술가가 된다. 작업의 종류도 다양하다. 집에 대해 손님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주는 ‘꿈꾸는 건축사무소’, 재활용 재료로 만든 인형들을 물물교환하거나 사람들과 함께 인형을 만드는 ‘명품인형제작소’, 작가가 손님의 사소한 고민에 귀기울여주고 사탕으로 만든 달콤한 약을 제조해 주는 ‘힘찬 도약방‘ 등이 있다. 시장을 찾는 이들은 예술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 여기 참여하는 작가들은 전시미술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관람객과 마주하면서 작품제작의 동기와 만족감을 얻는다고 한다.

▲ '예술장돌뱅이'에서는 꼬마 손님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 @ 예술장돌뱅이 공식 페이스북

‘재능 기부’가 아니라 ‘재능 나눔’이죠

김 작가는 물질을 추구하는 작품 활동보다는 자신의 재능을 사회에 나누는 활동에 관심을 많이 쏟는 편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공동체 벽화 사업이나 메세나 프로그램 등 공익적인 활동에 많이 나서게 된다.

지난 2010년에는 경기도 안양시의 지원으로 안양 5동 재개발 지역 골목 한 구석에 ‘누구나다-방’을 만들었다. 골목 일부 공간을 페인트로 덧입히고 벤치, 책꽂이 등을 설치해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다방을 만든 것이다. 영화간판을 그렸던 강천식(43), 박종호(36)작가와 함께 ‘김·강·박씨’란 팀을 꾸려 공동으로 작업했다.

▲ 안양 재개발 지역 골목을 주민들이 쉴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재탄생시킨 <누구나다-방>. ⓒ 김현승

“원래 등산객들이 쉬던 곳이었는데, 방치된 탓에 활력이 없던 장소였어요. 조금만 바꾸면 커뮤니티가 가능하겠다 싶어 다방으로 개조를 했죠. 바다 벽화도 그리고 의자도 설치하고 소식통 역할을 하는 게시판도 달았어요. 기타 연주자를 초빙해 공연도 했고요.”

죽어가던 공간이 실용적인 쉼터로 변하면서 주민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그는 “작가의 역할은 주민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문화 향유자가 문화 주체자가 되도록 자발성을 이끌어 내야한다”고 말했다.

김·강·박씨 팀은 지난 2011년 서울 중랑구청의 지원을 받아 중랑구 6곳에 영화 포스터를 벽화로 그리는 ‘2011 시네마틱 일상에 스며들고 뒤섞이다’를 작업하기도 했다. 1994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가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있는 장면을 망우동 망우사거리 버스정류장 앞 벽에 그대로 재현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그림에 마을 주민들이 일부러 구경을 나오기도 했다.

▲ 마을 공동체 벽화 사업 ‘2011 시네마틱 일상에 스며들고 뒤섞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이 벽화로 재현됐다. @ 김현승

그러나 김 작가는 공공미술이란 이름으로 무의미한 작품을 양산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이를테면 마을 재생 사업을 한다면서 꽃과 구름 등의 벽화로 마을을 도배해 놓는 것이다. 벽화도 하나의 작품인데 거기에 사람들의 삶을 조명하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과정이 없다면 예술이 지닌 공적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관에서 예산을 지원받는 경우, 마을 사람들의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벽화를 그리느라 돈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당장 급한 생필품을 구입하도록 돈을 나눠주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어요. 주민들이 정말 원하는 게 뭘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일주일에 한번 서울 상도동에 있는 보육원 아이들과 저소득층, 편부모 자녀 등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그는 이런 활동이 ‘재능 기부’보다는 ‘재능 나눔’으로 이해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어린 친구들과 나누면서 아이들의 생각에서 배우고 영감을 얻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수입 적지만 불편하지 않다

잘 알려진 것처럼 화가는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직업이다보니 미술을 전공한 학생들도 다른 생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김 작가는 어떨까. 미혼인 그는 “풍족한 삶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 때문에 고민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작품 활동을 통해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고, 돈이 더 필요하면 다른 일을 해서 벌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동시에 예술가의 길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붓을 놓는 사람들이 잘못됐다고 비판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들이 가진 예술가적 감성은 다른 직업 활동에서나 문화생활에서도 발현이 될 것이고, 나름대로 예술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예술활동 자판기>에서 주고받는 건 교감이다. 자본으로 살 수 없는 예술품을 표현했다. ⓒ 겸손한 미술관

그의 작품세계는 다채롭다. 온 몸에 검은 페인트칠을 하고 서울 한복판에 섰던 ‘그린口(구)자(2007)’, 자판기 속에 들어가 동전을 넣는 시민과 악수를 하고 대화를 나눈 ‘예술활동 자판기(2009)’, 인구 200명의 인천 이작도에서 6개월 동안 살며 섬에 서식 중인 동물들의 형상을 나무로 제작한 ‘이작도의 기별(2010)’등이 대표적이다. 늘 뭔가를 제안하고 새로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을 추구한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그림을 통해 해소하곤 했다는 김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관객과 예술가의 경계가 허물어질 때까지, ‘장돌뱅이 예술가’의 길을 계속 걸어 갈 생각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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