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토크] 되짚어보는 나로호 실험의 의미
당장의 성패 연연하기보다 기술 국산화 주력해야

날마다 쏟아지는 새로운 과학 기술 용어, 따라가기가 힘겨우신가요? 팔로우가 뭔지, 증강현실이 뭔지, 소형위성발사체가 뭔지... 포털사이트에서 지식 검색을 해봐도 도대체 뭐가 뭔지 '외계어' 처럼 느껴지신다구요?  이젠 테크토크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어려운 기술용어를 알기 쉽게, 재밌게, 친절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당신의 TQ(기술지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드리겠습니다. <편집자>

1961년 11월 29일, 침팬지 에노스가 우주선을 타고 지구궤도를 두 바퀴 도는 데 성공했다. 미국이 우주선에 사람을 태워 보내기 전, 지구궤도를 3시간 21분간 돌고 귀환하는 실험에 침팬지를 먼저 태웠던 것이다. 다음날 미국의 한 신문은 에노스가 마중 나온 침팬지에게 말을 걸면서 우주선을 떠나는 가상의 장면을 만화로 실었다.

“우리가 러시아 사람들보다는 조금 뒤졌지만 미국인들보다는 앞섰군!”

▲침팬지 에노스가 마중 나온 친구와 걸어 나오는 장면을 그린 만화 / <우리는 이제 우주로 간다>에서 발췌

냉전시기였던 1960년대,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개발 경쟁은 치열했다. 러시아는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린 뒤, 다시 4년 만에 유리 가가린을 태운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해 첫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조바심이 난 미국은 1958년 10월 5일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설립하고 닷새 만에 인간을 우주에 보내겠다는 ‘머큐리(Mercury)계획’을 발표했다. 침팬지 에노스가 궤도비행에 성공한 후, 1962년 2월 우주비행사 존 글렌이 ‘프렌드십’ 7호에 타고 드디어 지구 궤도를 도는 데 성공했다. ‘누가 먼저 쏘아 올리나’ ‘누가 최초냐’로 미국과 소련이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2010년 현재 우주 개발은 더 이상 체제간의 경쟁 영역이 아니다. 더 이상 미국과 러시아가 독점하고 있는 산업도 아니다. 60년대 당시에는 꿈조차 꿀 수 없던 우리나라도 우주개발강국의 모임인 스페이스클럽(Space Club) 가입에 도전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학기술위성 2호를 실은 인공위성발사체 나로호는 두 번의 발사 실험에 실패했지만, 해양통신기상위성 천리안은 발사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나로호와 천리안 실험은 우리나라의 우주 도전 역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국산 기술로 자국 기지에서 발사해야 스페이스클럽 가입

스페이스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조건은 ‘순수한 국내기술로 인공위성과 발사체를 만들 것’, ‘자국의 발사기지에서 쏘아 올릴 것’ 등이다. 나로호 발사에 성공했다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10번째로 스페이스클럽 가입국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나로호가 성공했다고 해도 솔직히 우리가 충분한 토종기술을 갖췄다고 보기는 힘들다. 나로호는 러시아와 우리의 ‘혼혈’이기 때문이다. 나로호의 아랫부분 1단 로켓은 러시아 흐루니체프사가 제작했다. 우리 기술로 만들어진 것은 그 다음으로 점화되는 2단 로켓과 거기 장착된 인공위성인 과학기술위성 2호다. 러시아는 우리와 발사 계약을 체결하면서 기술이전을 약속하지 않았다. 로켓발사 기술은 미사일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기술이전을 꺼리는 것이다. 1단 로켓 조립완제품을 수입해서 쓸 수 있을 뿐, 설계도는 볼 수 없다.

▲ 나로호 2차 발사장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한편 지난 6월 27일 성공적으로 발사된 천리안위성은 프랑스에서 만든 아리안 5호 발사체에 실려 남미 프랑스령 기아나 꾸루 우주센터를 떠났다. 지구의 자전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상공에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천리안은 통신, 해양관측, 기상관측용으로 쓰인다. 천리안은 ‘통신 탑재체’와 ‘해양관측 탑재체’, ‘기상관측 탑재체’로 구성돼 있어 각기 다른 역할을 한꺼번에 수행한다. 이 세 가지 중 국내 기술력으로 개발된 것은 통신 기능뿐이다. 나머지 두 가지는 외국의 기술을 들여온 것이다. 그래서 천리안 발사 성공도 우주개발 강국이 ‘됐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나로호는 발사체, 천리안은 인공위성

나로호는 KSLV-1(Korea Space Launch Vehicle-1)라고도 불리는 인공위성발사체다. 인공위성을 우주로 실어 나르는 운반체라는 것이다. 이와 달리 천리안은 인공위성이다. 천리안 위성이 프랑스산 아리안 5호 발사체에 실렸던 것처럼, 나로호에 실렸던 인공위성은 과학기술위성 2호다. 나로호 발사가 성공했다면 이 과학위성이 지구의 표면 온도를 관측해 수증기와 강우량 등을 측정하게 됐을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관한 기초 자료를 수집하는 역할이다.

천리안의 통신기능은 우리나라에서 개발 중인 고화질(HD)TV나 3차원(3D)TV의 전송기술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킨다. 고화질 TV가 연예인 얼굴의 잡티를 보여줄 정도로 선명한 화질을 자랑했다면 천리안 위성은 모공의 솜털까지 보여주는 화질을 선사한다. 라디오에 주파수가 있는 것처럼 방송도 특정한 주파수를 이용하는데, 천리안 발사로 HDTV나 3DTV보다 16배 이상 선명한 초고화질(UHD)TV 서비스에 필요한 주파수 대역을 선점하게 된 것이다. 천리안의 활약으로 ‘엉터리 일기예보’도 줄어들게 됐다. 지금까지는 일본 등 외국으로부터 30분 간격으로 기상정보를 수입해 오느라 일기예보가 잘못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우리 자체 기술로 15분 간격, 혹은 위험기상 발생시 8분 간격으로 기상정보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천리안은 어민들에게도 큰 선물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해역의 해수흐름과 적조현상을 실시간으로 관측해 물고기떼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해양연구원에 따르면 내년부터는 천리안이 보내오는 해양・기상정보를 스마트폰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뉴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구름사진과 해수흐름을 언제 어느 곳에서든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천리안의 가상 사진과 활용도 (한국항공우주연구센터)

미사일과 위성발사체는 장검과 식칼의 차이

칼은 쇠를 불에 달구어 망치로 두드린 후 식히는 작업을 통해 날카롭고 단단하게 만들어진다. 장검과 식칼은 생성 원리가 같지만 인명살상용이냐 조리용이냐로 쓰임새가 갈라진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인공위성발사체도 마찬가지다. 이 둘은 기본적으로 연료와 연료를 더 잘 태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산화제를 사용한다. 연료와 산화제를 섞은 상태로 불꽃을 점화하면, 연료가 타면서 분출하는 고온・고압의 가스가 미사일과 발사체를 밀어 올리는 것이다. 미사일과 발사체를 가르는 차이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연료의 종류다. 미사일은 보통 10년 이상 보관이 가능한 고체연료를 사용한다. 전쟁 등 비상시에 신속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다. 이와 달리 발사체는 액체연료를 주로 쓴다. 액체연료는 매번 발사 직전에 주입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고체연료에 비해 연비가 좋고, 연료의 연소량을 조절해 추진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두 번째는 로켓의 앞부분에 실리는 게 핵탄두냐 인공위성이냐의 차이다. 둘 다 로켓의 추진력을 사용한다는 점은 같지만 무엇을 싣고 있느냐에 따라 대량살상무기와 실용적 도구로서의 운명이 갈리게 된다. 지난해 4월 5일 북한이 위성발사체라고 주장한 ‘광명성 2호’가 발사됐을 때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이 바싹 긴장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광명성 2호에 핵탄두를 실었다면 핵미사일이 되는 것이다.

나로호의 조상님은 조선시대 신기전?

제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V-2로켓을 개발했다. 전후 베르사유 평화조약 체결로 전차나 대포와 같은 무기를 생산할 수 없게 되자, 이런 조약에서 취급하지 않은 새로운 무기에 관심을 쏟은 결과였다. 현대 액체추진제 로켓의 시초가 된 V-2로켓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 등 여러 유럽도시들을 향해서 2천발이 발사됐다. 아이젠하워 연합군 사령관이 “V-2가 6개월만 먼저 나왔어도 세계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신무기의 위력은 무지막지했다.

V-2로켓은 우주여행의 문도 열었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러시아의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R-7로켓과 미국의 주피터-C, 프랑스의 디아망과 중국의 장정 로켓도 모두 V-2로켓기술을 기본원리로 만들어졌다. 1단 로켓이 러시아산인 것을 생각하면 나로호도 V-2 로켓의 혼혈 후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미 로켓 원천 기술을 갖고 있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일부 역사가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이 고려 말 최무선이 만든 ‘달리는 불’, 즉 ‘주화(走火)’라고 주장한다. 화살의 앞부분에 매단 약통이 로켓 엔진역할을 하게 만든 무기였다. 약통은 종이를 말아 만든 통에 화약을 채워 넣은 것이다. 이 ‘주화’를 여러 발 동시에 발사할 수 있도록 개량한 신기전(神機箭)은 현대에도 복원 가능한 세계 최고(最古)의 로켓이라고 한다. ‘귀신같은 기계화살’이라 불린 이 로켓은 화살의 앞부분에 화약을 넣은 통을 붙여서 발사할 수 있게 만들었다. 화약통의 아랫부분에 구멍을 뚫고 작은 분사구를 만들어 로켓과 같은 추진력을 얻게 한 것이다.

 

▲화차에 실어 발사했던 신기전을 복원한 것(왼쪽)과 영화 <신기전>에 나온 발사장면

<로켓이야기>를 쓴 채연석 박사에 따르면 신기전은 조선시대 압록강과 두만강 중류지방의 군사요충지인 4군 6진에서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주로 사용됐다고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15세기에 이미 최첨단 과학 무기를 가진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액체추진제와 복잡한 기관으로 만들어진 현대의 로켓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V-2로켓의 원리나 신기전의 원리는 엇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로호의 조상은 신기전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신기전 역시 중국의 금나라가 칭기즈칸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만든 ‘날아가는 불화살’, 즉 ‘비화창(飛火槍)’을 본 딴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신기전이 개발된 지 약 600년이 지난 지금, 나로호와 천리안에 이어 순수 국내 기술만으로 개발된 두 번째 인공위성 발사체 KSLV-2호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 발사체는 앞으로 달 탐사의 발판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월드컵이나 올림픽 경기를 보듯 발사의 성패 여부에만 관심을 쏟다보면 정작 ‘우주개발의 국산화’라는 숲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우주산업은 군수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첨단의료나 신소재 개발, 위성서비스와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의 기술 원천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가 앞서가고 있는 반도체나 전자통신 기술을 우주산업에 활용하는 한편 장기적인 관점에서 발사체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대한 과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우주로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을 정치적 이벤트 등으로 활용하려는 ‘기름’은 쏙 빼고, ‘진국’ 같은 국민적 관심으로 응원할 필요가 있겠다. 

▲신기전의 원리, 발사장면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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